김천재, '들쭉날쭉' 토스에도 '한 줄기 희망'
SBS Sports
입력2012.02.20 13:42
수정2012.02.20 13:42

지난 19일 수원실내체육관서 열린 '2011-2012 NH농협 프로배구' 남자부 5라운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경기서 KEPCO45는 올 시즌 처음으로 김천재를 선발 세터로 세웠다. 이름만큼 '천재적인' 실력을 인정받아서가 아니었다. 주전 세터가 모두 빠진 KEPCO 신춘삼 감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KEPCO의 주전 세터 김상기가 승부조작 파문으로 구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17일 백업세터 최 모 선수마저 검찰에 소환됐다. KEPCO는 최 모 선수의 혐의가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검찰에 소환된 이상 당분간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주전 세터가 모두 불미스러운 일에 관련돼 빠진 KEPCO는 데뷔 2년차 김천재와 신인 김정식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김천재가 주전 세터로 나섰다. 지난 시즌 데뷔 이후 선발 출전은 처음이다. 팀 전체를 조율해야하는 주전 세터의 막중한 임무를 감당하기에 김천재는 너무나 미숙해보였다. 그래서일까, 김천재의 얼굴은 1세트 중반까지도 긴장으로 물들어 있었다.
2010-2011 신인 드래프트서 박준범에 이어 2라운드 마지막에 지명된 김천재는 192cm의 장신에 서브가 주특기다. 주전 세터 김상기가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동안 장기를 살려 주로 원포인트 서버로 기용됐던 김천재는 사실상 선수들과 손발을 맞춰볼 시간조차 없었다. 신춘삼 감독조차 "(18일)단 하루 연습했다. 본인에게도 갑작스럽고 무리한 요구였을 것"이라 인정할 정도로 촉박한 선발 데뷔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하게 팀을 조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까운 일이다. 흔히 야구를 투수놀음이라 부른다. 경기에 미치는 투수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배구는 세터놀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배구에서 세터는 공격수를 위해 좋은 토스를 올려줘야하고 상대팀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해야하는 어려운 포지션이다. 경험이 부족한 세터가 주전으로 나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모두의 우려와는 달리 김천재는 분전에 분전을 거듭했다. 첫 세트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조금씩 주포인 안젤코와 손발을 맞춰갔다. 세팅은 약했지만 팀 블로킹과 디그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주특기인 서브를 살려 KEPCO의 분투를 이끌었다. 듀스를 주고 받으며 치열하게 진행된 2세트를 KEPCO가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김천재의 이런 노력이 안젤코의 폭발적인 공격력과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
첫 선발인 만큼 부족한 면도 눈에 띄게 드러났다. 약점으로 지적되어오던 세팅 능력이 결국 김천재와 KEPCO의 발목을 잡았다. 안젤코가 때리기 좋은 타점의 토스를 올려줄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들쭉날쭉했다. 대놓고 보이게 주는 토스도 많았고 전체적인 공격력을 살리기보다 주포인 안젤코에게 토스가 몰리는 것도 문제였다.
김천재의 패턴이 읽히면서 현대캐피탈은 KEPCO를 무섭게 밀어붙였다. 고육지책으로 경기 후반부 김천재와 김정석을 번갈아 기용하며 변화를 꾀해봤지만 승부의 흐름은 이미 현대캐피탈로 넘어가있었다.
분전에도 불구하고 세트스코어 1-3 패배를 당한 KEPCO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주전 세터 없이 경기를 치른다는 것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책임감을 통감한 김천재의 어깨는 앞으로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동안 뛰지 않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오늘 활약은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라고 표현한 신춘삼 감독은 남은 경기 내내 김천재를 주전으로 기용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뗀 김천재의 과제는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은 물론, 자신의 약점인 토스도 개선해야 한다. 경기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경험을 더 쌓아야하고 실전에서 빠른 판단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 진짜 천재다. 김천재가 자신의 이름처럼 KEPCO의 진짜 '천재'가 되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천재는 승부조작 파문 속 무너지고 있는 KEPCO의 절망 속 희망 한줄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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