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수사대] 한기범 '대걸레' 사건, "이게 다 김유택 탓"
SBS Sports 이성철
입력2012.05.17 08:20
수정2012.05.17 08:20

한기범하면 어떤 게 떠오르는지 농구대잔치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주변 사람들 10여명에게 물었다. 설문조사와 같은 거창한 프로젝트까지 한 건 아니다. 그랬더니 한기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놀랍게도 ‘대걸레’였다.
언틋 비실비실 약해보이고 순한 인상 때문에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코트에서 손해 본 것이 많을 것 같은 한기범. 특히 과거 필자는 NBA에서 은퇴한 압둘자바를 초청한 경기에서 몸 싸움에 버거워 아무리 힘껏 밀어도 밀리지 않아 ‘낑낑’대는 모습의 한기범을 봤을 때 국내 농구 센터의 서글픈 현주소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농구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 한기범 대걸레 사건이란?
1988년 2월 19일 기아산업대 삼성전자의 경기 도중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당시 기아산업의 김유택이 엉킨 발을 빼려고 삼성전자 임정명(전 고려대 감독)을 밀치자 임정명이 김유택의 뺨을 때린 것이 불씨가 됐다. 코트와 벤치에 있던 기아산업 선수들이 일제히 임정명을 덮쳤고, 삼성전자 선수들도 질세라 맞서며 코트는 순식간에 싸움판이 되어 버린 사건이다.
기아자동차의 정덕화(현 국민은행 감독)가 임정명의 등에 몸을 날리며 발길질을 했고, 한기범(한기범 희망재단 대표)은 대걸레를 거꾸로 들고 빙빙 휘둘렀다. 본부석에 있는 명패로 삼성전자 오세웅의 눈가를 때려 찢어 놓는 선수도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 선수들은 한기범과 김유택(현 중앙대 감독)에게 뭇매를 때렸다. 난투극은 3분 가량 계속 됐는데 심판은 임정명과 김유택을 퇴장시키고 경기를 끝냈고, 일부 관중은 먹던 음료수 병을 던졌는데 삼성전자 오세웅 선수가 맞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Q> 88년 2월 19일 기아 vs 삼성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A> 항상 발단은 김유택이었어요. 골밑에서 몸싸움 하고 있는데 등뒤를 돌아보니 임정명 선배와 김유택이 누워있더라구요. 너무 크게 싸우면 안 될 것 같아 말렸는데 싸움이 너무 격해졌어요. 할수없이 마핑보이가 가지고 있던 대걸레를 뺏어서 막았어요. 그냥 단순히 대걸레를 허공에 대고 ‘빙빙’ 돌렸을 뿐인데...
Q> 당시 언론은 기아 선수들이 삼성을 덮쳤다거나 기아 선수들이 명패로 오세웅을 때려 눈가가 찢어졌다는 등 삼성편을 많이 들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A> 그 당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을 듯 해요. 기아는 신생팀이었고 창단 겨우 2년 된 팀이었기 때문에 힘이 없었죠. 특히 현대, 삼성 등 대선배들과 경기였기 때문에 그런거죠. 태능에서 만나서 풀었습니다. 그냥 말로만 풀었죠 뭐.
Q> 억울했던 점은 없었나요?
A> 당연히 억울했죠. 사건발단 문제는 얘기 안하고 다친 문제만 이야기해서 억울했어요. 특히 제가 돌린 대걸레만 부각시켜서 더더욱 억울했습니다.
Q> 당시 중앙대 감독이셨던 정봉섭 감독은 뭐라고 주문했나요?
A> 원래 엄한 감독인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선배들을 깍듯이 모시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실제 경기 나가면 심판의 판정이 불리했어요. 거의 7대 5게임이었다고 봐요. 현대, 삼성 이기는 건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죠.
Q> 당시 어떤 징계를 받았나요?
A> 징계는 안 받았어요. 직접 때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Q> 예전 기록과 사건들을 살펴보니 유독 한기범 선수는 폭행과 연관이 깊더라구요. 그 이유는 뭔가요?
A> 84년 3월 13일 고대 vs 중대 봄철대학농구결승전에서 당시 두 선수에게 폭행을 당했어요. 그것도 김유택 때문이었어요. 고려대 선수 두 명이 하프라인에 있던 나를 뒤에서 가격해 저는 앞으로 꼬꾸라져 기절했어요. 너무 세게 맞았던지 울렁거려서 병원에서 1주일 정도 입원했어요.
이것도 발단은 김유택인데... (당시 이 사건으로 고려대 두 선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대한 관련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되었고. 양팀 코칭스텝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명령 및 고려대는 자숙의 의미로 국내 대회 출전 금지 명령을 내렸다.)
Q> 당시 사건 발단과 김유택이 어땠길래 그랬나요?
A> 당시 고려대에는 이신욱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김유택과 고교 동급생이에요. 그런데 두 선수는 고등학교 때 부터 치열했어요. 그 시절부터 툭탁툭탁했고 라이벌 의식이 있었죠. 이 경기 중 둘이 말싸움을 했어요. 그냥 말싸움으로 끝났죠. 그런데 분에 못 이겼던지 갑자기 달려드는 거에요. 제가 발이 제일 느려서 골을 넣고 백코트가 제일 늦잖아요. 눈에 보이는 게 저 밖에 없었는지 엄하게 저한테 달려들었어요. 가벼운 뇌진탕이었는데 속이 미식미식거리고... 당시 고려대 애들이 워낙 잘했어요. 끝까지 했으면 고대가 이겼을 텐데 못 참고 주먹질 때문에 몰수패 당해서 결국 중앙대가 우승했어요.
Q> 94년에는 김진 감독님(현 LG세이커스 감독) 에게도 맞은 걸로 나오더라구요?
A> 기억나요. 이창수(현 경희대 코치)가 그날 수비를 들들 볶았어요. 자기 팀이 공격인데도 불구하고 수비하는 나를 박스아웃을 하더라구. 열 받아서 이창수를 머리로 박았는데 이창수 코에서 코피가 났어요. 경기 후 사과하러 가는 도중에 (얌전히 끌려가는 것이었음) 김진 감독이 주먹으로 얼굴을 쳤죠. 맞은 이유는 “내가 욕을 했다”고 해서 때렸다고 하는데 거의 기절하기 일보직전까지 맞았어요. 아마도 삼성은 경기에 진데다가 기아가 우승하고, 저는 MVP 까지 받으니까 미웠던 모양입니다. (그 뒤로 김진 감독은 3개월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Q> 우리나라의 여러 센터들과 대적했는데 기억에 남는 센터와 그 성향은 어땠나요?
A> 임정명 선배는 82년에 같이 했던 걸로 기억해요. 임선배는 무릎부상으로 오래 하지는 못했어요. 승부욕이 투철했고 게임을 얌전히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당시 삼성은 서로 매치업하며 인해전술로 맞섰죠. 조동우, 중국에서 온 서지태라는 선수, 서대성, 이창수 등등.
김성욱은 그 당시 가장 수비하기 애먹었던 선수였어요. 힘도 좋은데다가 미들 슛까지 좋아서 막기 어려웠어요.
Q> 왜 매번 맞고 다녔나요?
현대 삼성 이기는 건 꿈도 못 꾸는 시절이었어요.
Q> 은퇴 후 감독제의는 없었나요?
A> 은퇴후 김태환 감독님 밑에서 중앙대 코치를 했었어요. 아시다시피 김태환 감독님은 선수들을 제압하는 분위기의 감독이셨고, 저는 순한 인상 때문에 서로 안 어울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중앙대 코치를 그만뒀어요. 그 뒤로 구로고 코치로 가자마자 춘계고교연맹전에서 준우승했어요. 그 당시 선수로는 KT 김도수가 있었어요. 당시 이쁘장하고 농구센스가 있었어요. 아! 옥범준도 있었구나?
Q> 허재 선수가 들어온 후 중앙대 전성기를 이끌었어요?
A> (이 부분에서 한기범은 강하게 부정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허재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중앙대는 우승했어요. 사람들은 허재가 들어온 후 중앙대가 우승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83년 춘계대학연맹전 결승에서 고려대를 상대로 우승하고 계속 우승했어요. 물론 허재가 들어와서 팀이 더 강해졌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허재 들어오기 전부터 우승한거라는 점이에요. 그것도 연대, 고대 다 깨고.
Q> 최근 근황은 어떠신가요?
2,00여명의 후원회비로 ‘한기범 희망재단’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난해 어린이날 ‘한기범 희망재단’(www.yeshan21.com)을 만들어 나눔과 사랑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수익금은 모두 심장병 어린이 등 소외계층을 위해 쓰고 있어요.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인터넷 쇼핑몰, 스포츠용품 판매, 한기범 농구교실 등 수익사업도 펼치고 있어요.
농구선수에서 기부의 아이콘으로 변신한 한기범 희망재단 대표는 19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2012 희망농구 올스타 나눔대잔치’를 열고 "재정이 안정되면 제3세계 어린이를 위한 구호사업에도 나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SBS ESPN 이성철 기자 prin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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