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국 ML 추억, “A-로드 맞힌 게 가장 기억”
SBS Sports
입력2013.02.07 08:39
수정2013.02.07 08:39
류제국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1년 졸업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다. 당시 16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은 류제국은 팀 내 정상급 유망주로 주목 받았고 착실하게 한 단계씩 밟아갔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과 수술로 결국 풀타임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10년 귀국했다. 귀국 후 류제국은 2년 동안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지난 1월 30일 LG와 입단 계약을 체결한 류제국은 현재 진주 LG 2군 캠프에 임하는 중이다. 류제국은 6일 오전 훈련을 소화한 후 미국에서 보낸 환희와 좌절의 순간을 털어놓았다.
2001년 당시 류제국은 그야말로 초고교급 투수였다. 건장한 체구와 150km를 상회하는 직구로 고교무대를 평정했다. 이때 만해도 수많은 고교선수들이 제2의 박찬호를 꿈꾸며 메이저리그 무대를 노크했었다. 류제국 역시 큰 꿈을 안고 한국 프로야구 무대 대신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었다.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를 놓고 선택하는 데 있어 갈등은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콜이 오는 순간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구단 에이전트와의 만남은 아버지가 하셨다. 아버지는 고민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고생하지 않고 LG로 가자고 하셨다. 근데 나는 막연한 꿈을 꿨던 것 같다. 그저 에이전트 이야기만 듣고 거기에 심취되어 미국에 갔다.”
꿈을 안고 미국에 진출했지만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기까지 우여곡절이 반복됐다. 한국에선 항상 주목받았지만 미국에선 그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마이너리그 선수 중 하나였고 문화차이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한 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2002년 이 맘 때 컵스 마이너리그 선수 소속으로 첫 스프링캠프에 임했다. 덕수고에 있을 때만해도 주목받고 관리 받았었는데 정작 미국에 가니까 나정도 되는 투수, 나보다 잘하는 투수가 너무 많아서 충격을 먹었다. 100명이 넘는 캠프 인원도 적응이 안 됐다. 그러다보니 처음 스프링캠프는 그저 멍하니 있다가 끝났다. 당시 (최)희섭이 형은 메이저리그 캠프에 있었기 때문에 따로 말할 사람도 없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작다는 것을 느꼈다.”
출발은 불안했지만 차차 적응해나갔다. 루키리그와 싱글A에서 호성적을 올리며 팀에서 주목받는 유망주가 됐고 마이너리그 올스타로도 뽑혔다. 150km를 상회하는 강속구를 뿌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오른쪽 팔꿈치 부상이란 미국 생활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2003년과 2004년까지 순조롭게 메이저리그를 향해 올라가다가 팔꿈치 통증이 찾아왔다. 팔꿈치 통증으로 4개월을 쉬었는데 그 때 정말 힘들었다. 컵스 팀 닥터가 수술과 재활에 대한 선택권을 내게 줬다. 재활로 다시 마운��에 오를 수는 있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수술하는 게 낫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수술했어야 했다.”
팔꿈치 부상으로 상승세가 한 풀 꺾였지만 류제국은 재활을 마치고 다시 액셀을 밟았다. 투구 패턴을 수정하며 효과적인 투구를 펼치는 데에 중점을 뒀다. 당시 아시아 최고의 선발투수로 활약했던 뉴욕 양키스의 왕젠민을 바라보며 땅볼을 유도에 신경 썼다.
“2004년에 재활을 마친 후 당장 구속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부상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투구 패턴과 타자를 상대하는 마음을 바꿨다. 이닝을 많이 먹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컨트롤을 중시했다. 당시에 왕젠민이 워낙 잘 던져서 영향을 받았다. 나도 싱커를 많이 던져 땅볼을 유도하려고 했었다.”
2006년 5월 마침내 류제국은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5월 15일 샌디에이고전에서 8회에 불펜 등판한 후 5월 28일 애틀란타를 상대로 생애 첫 빅리그 선발 등판을 치렀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홈런 4방을 얻어맞으며 1⅓이닝동안 6실점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류제국은 당시를 뚜렷하게 기억하며 미국 생활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라고 했다.
“그 때를 돌아보면 내가 참 못났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 날 바보처럼 긴장만 했다.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급하게 공만 던졌다. 사인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나는 코너워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다 가운데였다. 메이저리그 타자 중 91마일짜리 가운데 공을 못 넘기는 타자는 없다. 그래서 홈런을 4개나 허용했다. 언제 생각해도 후회만 남는 순간이다.”
“탬파베이에 함께 뛰던 많은 선수들이 이제는 스타가 됐다. B.J. 업튼, 에반 롱고리아, 칼 크로포드 등 동년배가 많았는데 그래서 더 편했다. 정말 즐겁게 메이저리그 생활을 했었다. 컵스는 규정도 엄격했는데 탬파베이는 어린 선수들을 자율적으로 대했다.”
당시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강타자와 대결했던 일은 류제국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류제국은 탬파베이와 같은 디비전에서 속한 양키스와 보스턴의 타자들과 수차례 상대했는데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승부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웃었다.
“아무래도 같은 디비전이다 보니 양키스나 보스턴 타자들을 자주 상대하게 됐다. 호르헤 포사다는 삼진으로도 잡았었다. 근데 가장 생각나는 순간은 삼진을 기록했을 때가 아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맞힌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맞으라고 던진 건 아니고 안 맞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쪽으로 강하게 던졌는데 97마일이 나왔고 로드리게스가 옆구리에 내 공을 맞았다. 로드리게스가 맞고 옆걸음질을 치는데 나는 나한테 달려오는 줄 알고 긴장 많이 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겁먹었다. 로드리게스의 덩치가 엄청난 만큼 다가왔으면 계속 뒷걸음질 치지 않았을까.”
현재 류제국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완전히 접고 한국에서 야구인생 2막을 준비 중이다. 류제국은 자신의 20대를 바친 메이저리그 도전에 대해 한편으로는 후회만 남지만 어떻게 보면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순간이라고 했다. 2003년 미국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됐던 물수리 사건도 지금 생각하면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한 공부가 됐다고 밝혔다.
“고등학생 때 메이저리그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고 덕분에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도 많이 겪을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있어선 좋은 일이었다. 물론 야구로 한정했을 때는 안 좋은 선택일지 모른다. 물수리 사건도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긴 일인 것 같다. 당시 천연기념물인줄도 몰랐고 타 팀 선수들이 맞아도 괜찮으니까 던지라고 해서 맞출 생각도 없이 공을 던졌는데 맞았다. 실수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 때 일로 인해 행동하는 데 조심해질 수 있었다.”
[OSEN]
ⓒ SBS & SBSi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많이 본 'TOP10'
-
undef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