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첫 승’ 여건욱, 웃음 아껴놓은 이유
SBS Sports
입력2013.04.04 11:25
수정2013.04.04 11:25
말 그대로 난조였다. 시작하자마자 세 명의 타자에게 모두 볼넷을 줬다. 공 13개를 던지는 동안 스트라이크는 번트 파울 하나였다. 여건욱의 머릿속에는 “이게 아닌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다. 무너지는 투수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여건욱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마음을 다잡고 초심을 생각했다. “공 3개로 1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는 투수가 되자”라는 다짐이었다. 그랬더니 포수 미트가 좀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김동주와 홍성흔이라는 베테랑 타자들을 모두 땅볼로 처리하며 힘겨웠던 1회를 마무리한 여건욱은 2회부터 다른 투수가 되어 있었다. 흠 잡을 곳이 마땅치 않은 피칭이었다. 최고 147㎞의 직구는 타자 구석구석을 찔렀고 슬라이더와 커브는 두산 타자들의 타이밍을 완전히 뺏었다. 그렇게 여건욱은 6회까지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팀의 시즌 첫 승에 든든한 발판을 놨다.
고려대 시절 2008년 베이징올림픽 예비 엔트리에 포함될 정도로 가능성을 높게 인정받았던 여건욱이었다. 그러나 2009년 프로 데뷔 후 첫 승을 거두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데뷔 첫 승의 기분이 남달랐을 터다. 하지만 경기 후 방송 인터뷰를 기다리는 여건욱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별로 없었다. 그저 “팀 연패를 끊은 것이 기분 좋다”라고 할 뿐이었다. 개인적인 감흥도,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투구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여건욱이었다. 여건욱은 “결과가 좋았을 뿐 내용은 좋지 않았다”고 입을 연 뒤 “스스로 제구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볼넷이 많았다”고 자책했다. 1회 난조 때는 “제발 좀 들어가라”라는 심정으로 던졌다고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래서 오히려 이 경기가 스스로에게는 소중할지 모른다. 연습경기, 그리고 시범경기에서의 상승세가 이어졌다면 자신의 문제점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고칠 점과 모자란 점을 일찍 발견한 것은 득이 된다. 여건욱에게는 1승 이상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
확실한 것은 1회 첫 타자를 상대할 때의 여건욱과 6회 마지막 타자인 홍성흔을 상대할 때의 여건욱은 다른 투수였다는 것이다. 여건욱은 홍성흔과의 풀카운트 승부에서 망설임없이 한가운데 직구를 던져 삼진을 잡았다. ‘공격적으로 던지겠다’라는 여건욱의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기도 했다. 이런 기백을 간직한다면 여건욱이 활짝 웃으며 승리를 만끽할 날이 좀 더 빨리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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