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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36)몰수게임 소동 OB, ‘팀 해체’ 폭탄 발언 전말

SBS Sports
입력2013.09.27 10:08
수정2013.09.27 10:08

//img.sbs.co.kr/newsnet/espn/upload/2013/09/27/30000319372.jpg 이미지1985년 7월 16일, MBC 청룡과 OB 베어스의 경기가 열렸던 잠실구장. 6회 말 수비에 들어간 OB가 MBC 1루 주자 박흥식의 3피트라인 이탈 문제로 심판진의 판정에 불복, 선수단을 철수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5-5로 팽팽하던 6회 말 1사 1, 3루에서 김재박 타석 때 사단이 났다. 1루 주자 박흥식이 2루로 뛰었으나 OB 포수 조범현이 2루수 김광수에게 정확히 송구했다. 박흥식이 태그를 피해 1루로 귀루 하는 과정에서 1, 2루 선상에 있던 김양경 2루심을 피해 뛰면서 3피트 라인을 벗어났다는 게 OB쪽의 주장이었다. 박흥식이 런다운에 걸린 사이 MBC 3루 주자 유고웅이 홈을 파고들었다. OB 1루수 신경식이 황급히 홈으로 공을 던졌으나 세이프, 점수는 6-5로 MBC가 한 발 앞섰다. 

그 대목에서 OB 김성근 감독이 득달같이 덕 아웃에서 달려 나와 김양경 2루심에게 강하게 따졌다. ‘주자가 태그를 당하지 않으려고 3피트(91.4센티미터) 라인을 벗어났을 경우 주자는 자동 아웃’ 조항(야구규칙 7.08)을 들이댔다. 그 때가 밤 9시 10분께. 김 감독은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5, 6분 뒤 선수들을 덕 아웃으로 불러들였다.

이근우 주심은 5분 안에 경기에 임하지 않으면 김성근 감독을 퇴장시키겠다고 박기철 기록원을 통해 장내 방송으로 알렸다. 기다리던 이근우 주심은 별 반응이 없자 9시 23분께 감독 퇴장을 선언했고, 장내방송으로 다시 5분 안에 감독대행을 내세워 경기에 임하지 않으면 몰수게임을 선언하겠다고 발표했다. OB 선수단이 그래도 움직이지 않자 9시 28분에 몰수게임을 선언했다.

OB는 “심판이 감독에게 직접 퇴장이나 몰수게임을 선언하겠다는 통보를 하지 않고 장내 안내방송을 한 것은 잘 못된 절차”라고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빨리 몰수게임을 선언할 줄 몰랐다”며 황당해했다.

프로야구 첫해인 1982년 8월 18일, MBC 청룡이 대구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몰수게임을 당한 데 이어 사상 두 번째 불상사였다. 규정에 따라 그 경기는 MBC의 9-0승으로 처리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7월 17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몰수게임 사태를 빚은 김성근 감독에게 출장정지 4게임과 제재금 50만 원, 이근우 주심에게는 출장정지 5게임과 제재금 20만 원을 매겼다.

KBO는 ‘김성근 감독이 선수단을 그라운드에서 철수시켜 결과적으로 몰수게임에 이르게 해 제재 규정 외에 가중 처벌금 30만 원을 부과했고, 이근우 심판은 규칙에만 너무 집착, 성급한 몰수게임을 선언해 경기를 원활하고 신속히 진행해 팬을 즐겁게 해야 하는 프로야구 목적을 배신한 최악의 사태’라고 정리했다.

KBO는 1985년 8월 27일 각 구단에 ‘경기진행 속행과 경기장 질서 확립 등을 위해 선수단 철수를 금지시키고 감독, 선수 퇴장 및 몰수게임 선언을 강력히 이행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야구규칙 4.15에는 ‘주심이 일시 정지 후에 플레이를 선고하고부터 1분 안에 재개치 않을 경우’ 몰수게임을 선언할 수 있도록 돼 있긴 하다.
//img.sbs.co.kr/newsnet/espn/upload/2013/09/27/30000319373.jpg 이미지OB 구단은 “주심이 구간 측에 통보도 없이 장내방송을 통해 일방적으로 몰수게임을 선언한 것은 경기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처사”라고 항변했다.
 
애초 시비의 발단이 됐던 김양경 2루심은 아무런 제재 조치를 받지 않았다. 아울러 오심 및 몰수게임 선언 절차의 부당성을 들어 제기한 OB의 제소는 묵살됐다. OB 구단은 자체 촬영한 VTR 필름과 MBC-TV의 녹화 필름을 증거로 제출하고 제소했다. 하지만 KBO는 3피트 이탈여부와 아웃, 세이프는 심판원의 판단에 의한 고유의 재정은 최종적이라는 규정 9.02를 들어 제소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칙을 앞세운 주심은 지나친 판정을 내렸다고 제재를 가하고, OB의 이유 있는 항변은 묵살한 이상한 처사였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시각이었다.

정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그날 입장했던 1414명의 관중들. 5회를 넘겨 정식경기가 성립되는 바람에 입장료를 환불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팬들은 “제멋대로 경기를 끝내면서 사과방송 한마디 없으니 팬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다. 서울 팀끼리 경기서 이 게 무슨 꼴이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근우 심판은 사태가 벌어진 뒤에 “김성근 감독과는 절친한 사이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가질 수 없다. 도리어 엄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전에 김 감독한테 ‘너무하지 않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우리 심판들이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 규정대로 퇴장, 몰수게임을 선언했다.”고 해명했다.

김성근 감독은 “여러 가지 금지사항을 알고 있다. 스트라이크 볼 판정 불만을 표시해서는 안 되고 만일 감독이 나가서 항의하면 무조건 경고를 내린 뒤 두 번 항의하면 퇴장시킨다더니, MBC 김동엽 감독이 그 문제로 쫓아 나갔을 때는 아무런 경고가 없었다. 그래서 말썽이 났을 때는 2루심 오심에만 신경을 쓰느라 장내방송에 유념하지 못했다. 몰수 게임을 당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 사건 이전까지 1986년에 경기 도중 30분 이상 중단된 사례만도 11게임에 이를 정도로 그 즈음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과 실랑이가 잦았다. 그 때마다 감독들은 심판이 부당한 판정을 내리며 권위만 앞세운다고 꼬집었고, 심판들은 심판들대로 경기를 원활하게 이끌려고 인내로 임했는데도 경기운영 미숙의 오명을 씌운다며 한탄했다.

이 몰수게임 사건은 이튿날 KBO가 당사자에게 징계를 내린 다음 느닷없이 불똥이 장외로 튀었다. OB 베어스 박용민 단장이 한 사석에서의 발언이 일파만파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스포츠 서울>은 7월 18일치 기사에서 ‘OB 구단 대표이사 겸 단장 박용민 씨가 17일 KBO가 김성근 감독에게 내린 제재조치는 부당하고, OB측의 제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주말 경기(7월 20일 동대문구장, 해태-OB)부터 불참하는 것은 물론 팀 해체까지도 불사하겠다.’는 내용�� 보도를 한 것이다.

그 기사에 따르면 박 단장은 그날 오후 한양대 구장에서 팀 훈련이 끝난 뒤 선수단 전체회의를 소집, 주말 경기 불참과 팀 해체 불사의 구단 결정을 미리 알리고 이용일 KBO 사무총장에게도 전화로 그 같은 사실을 사전에 통보한 뒤 저녁에 서울 신라호텔에서 박용곤 구단주, 김성근 감독과 만나 동의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 발언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박 단장은 저녁 식사자리에서 홧김에 “말썽의 시초인 김양경 2루심은 아무런 제재를 않고 우리의 제소를 KBO가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우리에게만 최악의 사태를 빚었다는 KBO의 지탄은 억울하다”면서 “다시 제소를 할 작정인데 그래도 KBO가 심의하지 않으면 감독이 출장 정지된 4게임은 불참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OB가 우승에 구애받지 않고 게임에 성실하다는 말을 팬들로부터 듣고 싶다. 지금 기분은 팀을 해체하고 싶은 심정이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일간스포츠> 7월 19일치 ‘OB 팀 해체는 와전, 심판 장난 너무 심해 푸념으로 말했을 뿐’ 제하의 기사에서 발췌 인용)

사태가 엉뚱하게 번지자 박 단장은 7월 18일 “17일 저녁에 사석에서 심판 장난이 심해 차라리 팀을 해체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견이었고, 일부 보도에서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 겸 물러섰다. 박 단장은 “그때 흥분한 상태에서 얘기한 것이 확대됐다. 아직 KBO의 제재 결과에 대한 공식 공문을 접수하지도 않았고 구단에서도 공식적으로 그런 논의조차 없었다.”고 발을 빼 결국 그 파동은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사태는 심판과 감독, 구단과 KBO가 이를테면 ‘심정적 3피트라인’을 한꺼번에 벗어나 홍역을 치른 사례로 남아 있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그런 셈이었다고 할까.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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