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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전설' 토니 그윈 암투병 중 사망

SBS Sports
입력2014.06.17 14:13
수정2014.06.17 14:13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자 20세 후반기 가장 정교한 타자였던 토니 그윈이 17일(이하 한국시간) 암 투병 중 사망했다.

명예의 전당측은 17일 ‘그윈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웨이(샌디에이고 근처)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고 발표했다. 향년 54세.

그윈은 1982년부터 2001년까지 20년 동안 오직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한 팀에서만 뛰며 8차례 내셔널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15차례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그윈은 통산 타율 .338, 3,141안타의 기록으로 은퇴했다. 시즌 타율 3할에 미치지 못한 것은 데뷔 첫 해인 1982년 뿐이었고 풀타임 출장이 가능해진 1983년 이후로는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3할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1997년 기록한 .370은 풀타임 기준으로 1948년 스탠 뮤지얼의 .376 이후 가장 높은 타율이었다. (그윈은 파업으로 리그가 단축됐던 1994년 타율 .394를 기록하기도 했다. 테드 윌리엄스의 마지막 4할대 타율(.406)이 나온 1941년 이후 최고 기록)

그윈은 삼진이 적은 타자로도 유명했다. 1995시즌에는 575타석에서 당한 삼진이 겨우 15개이다. 2,440경기에 출장했지만 한 경기에서 3개 이상 삼진 아웃을 당한 것은 딱 한 차례 뿐이다. (얼마 전 타계한 투수 밥 웰치가 선발로 나왔던 경기에서 삼진 3개를 당했다)

왼손 타자이면서 밀어치는 능력 특히 3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빠지는 안타를 잘 때려 ‘5.5hole’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우익수로서 1986년 등 5차례 골드글러브를 받기도 했다.

다른 팀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고수, ‘Mr. Padre’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윈은  2001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 후 모교인 샌디에이고 스테이트 대학으로 가서 후배들을 지도했다. (이 대학에서 야구와 함께 농구선수로도 활약했던 그윈은 1981년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뿐 아니라 NBA 팀에 의해서도 지명됐다)아울러 야구평론가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2009년 침샘암이 발병하면서 두 차례의 수술을 비롯한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어야 했다. 그윈은 생전 선수시절 즐기던 씹는 담배가 암의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 3월 이후에는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교 감독직에서도 떠나야 했다.

버드 셀리그 MLB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는 가장 위대한 파드리스 선수였고 야구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타자이면서 삶에 있어서는 활기차고 온화한 성격으로 필드 위 모든 방면에서 보였던 빼어남도 넘어섰던 토니 그윈의 별세를 애도한다’고 성명을 냈다. 

그윈이 평생을 뛰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공식 성명을 통해 ‘토니 그윈이 구단과 이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이었는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그윈은  Mr. Padre가 아니고Mr. San Diego다.  그는 샌디에고를 진정으로 생각했고 우리 커뮤니티에 깊은 영향을 끼졌다’며 ‘파드리스 팬들과 함께 우리의 친구이자 팀 동료이고 전설을 잃게 된 것을 슬퍼한다’고 애도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메이저리거가 된 토니 그윈 Jr(현 필라델피아 필리스 외야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늘 나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멘토였던 부친을 여의었다. 당신을 많이 그리워할 것이다. 언제나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멘션을 남겼다.

그윈은 2007년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에서 545표 중 532표(97.6%)를 얻어 헌액이 결정되었으며 앞서  2004년에는 샌디에이고가 그윈의 백넘버 19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현재 샌디에고 홈구장인 펫코 파크 구장에는 그윈의 동상이 서 있고 펫코 파크의 주소는 ‘19 Tony Gwynn Drive’이다.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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