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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우라와가 엿볼 수 없었던 '경험'

SBS Sports 이은혜
입력2015.02.27 16:26
수정2015.02.27 16:26

수원과 우라와의 '2015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G조 조별리그 1차전 경기가 있기 하루 전 양 팀 기자회견에서 있던 일이다. 우라와의 페트로비치 감독이 가장 먼저 받았던 질문은 "2월 초 우라와 관계자들이 스페인 말라가에서 수원의 연습경기를 몰래 촬영한 사실을 알고 있냐"는 것이었다. 페트코비치 감독은 침착했다.

"스페인 훈련장면은 팬들이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나도 정확히 아는 바는 없다. 그리고 나는 비공개 훈련이란 것을 잘 하지 않는다. 40년 동안 축구를 하면서 느낀 것은 비밀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이다. 축구는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훈련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기쁜 일 아닌가? 여러분들도 원하시면 오늘 오후 우리가 하는 마무리 훈련을 보러 오셔도 좋다. 모두 공개하겠다."

답변은, 침착했지만 조금 장황했다. 그래서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승리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문장을 떠올릴 여유를 줬다. 이제 두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거니 할 즈음, 페트로비치 감독은 묻지도 않은 말을 이어갔다.

"축구는 양 팀이 정정당당 하게 싸우고, 결과는 받아들여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 해 준비했고 내일 수원과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다. 감출 것도 없다. 지금 여기 수원 관계자분들이 계시는지 모르겠다. 혹시 원하시면 꼭 오늘 우리 훈련을 보셔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페트로비치 감독은 그 뒤에도 한 번 더 자신들의 훈련을 보러 오라는 말을 반복해 스스로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페트로비치 감독은 그로인해 회견장 분위기가 굳어졌다는 것도 느꼈는지 세, 네번째 질문부터는 작정하고 '재치'를 부렸다. 한 일본 기자가 "2013년에 조 2위를 하고도 골득실에서 밀려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당신은 그 질문을 하려고 일본서 여기까지 온 것이냐"는 농담을 던졌다. 기자들을 웃게 만드는 독설은, 경험이 없는 감독이면 불가능하다.

그 날 페트코비치 감독으로부터 들은 가장 인상적인 말은 그 이후 나왔다.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경험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잘 할 수 있다"는 간단한 답이었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우라와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1-2, 후반 42분 추가 실점. 적지에서 당한 시즌 첫 경기 역전패. 얼마나 뼈 아팠을 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우라와는 일본 J리그 최대 인기 구단이다. 수원 원정경기에 3천 명의 팬이 몰려왔다. 2002년 이후 확대 개편된 ACL 무대에서 J리그 클럽 중 가장 먼저 정상에 오른 것도 우라와다. 그 해 성남과의 준결승 2차전에서 마지막 동점골을 넣으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던 하세베 마코토는 우라와가 키운 프랜차이즈 스타였고, 지금 일본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다.

페트코비치 감독이 말했던 '경험'의 여운이 강했던 건 그래서다. 우라와는 아시아에서 그 어떤 클럽과 비교해도 부럽지 않을 팬층과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수준급 이상의 감독을 데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없는 것아 있다. 바로 경험과 역사다.

수원은 2013년 ACL에서 우라와보다 더 뼈 아픈 경험을 했다. 지휘봉을 잡고 첫 시즌이었던 서정원 감독은 안방에서 가시와 레이솔에 2-6으로 대패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니 서정원 감독 역시 페트로비치 감독과 똑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는 쓴 맛을 봤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했다."

수원은 누군가를 엿보는 대신 강자와 맞붙는 쪽을 택했다. 2013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디나모 키예프와 광저우 헝다를 비롯해 브라질, 우크라이나 등의 강팀들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그만큼 수원에게도 우라와는 두려운 상대였고, 승리가 간절했다. 물론 이제 조별리그 단 한 경기를 치렀을뿐이니 한 번의 승리와 한 번의 패배로 이번 시즌 ACL 판세를 단언할 수는 없다. 우라와도 수원전 역전패로 또 한 번 '좋은'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아시아 전체적으로는 한일 팀들이 고전한 반면 중국 클럽들과 태국의 부리람이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공은 둥글고, 축구계도 헤게모니가 작용한다. 투자가 결실로 나타나고 있는 중국 팀들은 이렇게 한 해, 한 해 경험을 쌓으면 언젠가는 훨씬 탄탄해진 자국 축구 인프라를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서울 원정에서 0-7 참패를 당했지만 하노이 T&T도 지금의 경험을 발판으로 플레이오프가 아닌 ACL 본선을 꿈 꿀 수 있다.

K리그 클래식은 중국이나 중동, 일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투자도 열악하고, 자원유출도 심하다. 다만 아시아 정상급 선수와 팀을 배출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 원동력은 한국 축구가 가진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수원의 역전승은 단순한 1승이기도 하지만 서정원이라는 지도자와 선수들에게는 중요한 자산이 됐다. 경험은 훔치거나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 중요성을 안다면, 누군가를 엿보기 보다는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고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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