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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심판도 잘해야 K리그가 산다

SBS Sports 강청완
입력2015.07.31 17:05
수정2015.07.31 17:05


● 오심은 상처를 남긴다

신성한 K리그를 논하기에 앞서 잠시 동네축구 얘기 좀 하자. 여느 축구 담당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기자 또한 축구를 좋아한다. 대학 시절 몸과 마음을 바쳐 학과 축구 동아리 활동에 전념했다. 많은 추억이 있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으니 바로 '오심'과 관련한 기억이다.

당시 하위권을 전전하던 '우리 팀'은 유례없는 상승세로 1년에 한 번 열리는 교내 대회 8강까지 올라갔더랬다. (참가팀이 40개가 넘었다) 과장 좀 보태면 적어도 분위기만큼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같은 분위기였다. 8강에서는 전통의 강호였던 팀을 만났지만, 후반 중반까지 2대 0으로 앞섰다.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한 골을 따라 잡히고 다시 추가골을 넣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효로 선언됐다. 우리 팀이라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오심이었다. 그리고 추가 시간이 주어졌는데, 도통 끝나지가 않는 거다. 당시 시간을 쟀는데 한 8분 정도가 주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추가시간에 결국 동점골을 내줬고 또다시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먹고 졌다. 항의해봐야 소용없었다. 그게 동네축구니까. 숱한 뒷이야기가 많았지만 시시콜콜한 얘기는 여기까지. 어쨌든 그 이후로는 한동안 운동장 근처에도 가기 싫을 정도로 상당히 아프고 괴로웠던 걸로 기억한다.

아시아 최고의 리그를 논하면서 동네축구 얘기를 꺼내 지극히 송구스럽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스포츠에서 '오심'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프로스포츠에서는 특히 그렇다. 선수와 감독, 심판과 팬, 나아가서는 종목 자체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특히 한 골이 승부를 가르고 '한 발짝'이 그 한 골을 만드는 축구에서 판정이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축구의 역사에서 오심 또는 석연치 않은 판정이 역사를 바꾼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다. K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꽤 지난 사례지만 승부를 가른 오심으로 심판이 장문의 사과문을 SNS에 올린 적도 있었고 판정에 항의해 징계를 받은 전북 최강희 감독을 위해 팬들이 벌금을 모아주기도 했다. 지난해 하반기 K리그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는 성남 구단주 이재명 시장이 제기한 판정 논란이었다. 사건 자체야 이재명 시장의 쇼맨십이 어우러진 해프닝 성격이 컸지만 동영상까지 들고나와 '차라리 나를 제명하라'는 이 시장 앞에 연맹이 쩔쩔맸다. 이게 다 판정 때문이다.

● K리그도 칼을 빼 들었다

K리그도 판정의 중요성에는 분명히 공감하는 것 같다. 올해 단단히 칼을 빼 들었다. 덜 알려진 감이 있지만 올 시즌 처음 전담심판제를 도입하면서 여러 가지 큰 변화를 꾀했다. 변화의 핵심을 요약하면 '공정한 배정'과 '엄격한 평가'다. 프로축구연맹과 계약한 심판만 쓰는 게 아니라 1급 자격증을 갖춘 심판 전체로 대상을 확대해 가용 인력을 지난해 46명에서 70명으로 늘렸다. 학연, 지연까지 고려해 자동 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엄격한 사후 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오심이 일정 수준 이상 발생할 경우 1부 리그 심판을 볼 수 없게 하는 식으로 승강제도 도입했다.

그에 따른 전반기 심판 판정 통계도 공개했다. 프로축구연맹이 30일 개최한 'K리그 심판 운영 설명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시즌 K리그 전반기 경기당 평균 오심은 4.06건(클래식 3.57건, 챌린지 4.64건)이다. 사례별 정확도를 보면 오프사이드와 파울의 판정 정확도는 각각 93.3%와 90.8%로 양호했지만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페널티킥과 퇴장 관련 판정의 경우 79.8%와 57.1%로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이례적으로 오심 사례 동영상도 함께 공개됐다. 설명에 나선 조영증 심판위원장의 표현을 빌자면 '부끄러운 민낯'과 같은 결정이었다. "이건 이래서 오심이고, 저건 저래서 오심이었다", 영상 하나하나 기자들도 잘 모르고 지나치는 상황을 두고 꼼꼼한 설명도 이어졌다. 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에도 두 차례 심판 설명회를 개최했지만 이렇게 여러 편의 오심 동영상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설명회를 진행한 조영증 심판위원장과 신명준 리그운영팀장은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다 공개하고 공유하면서 발전시키자"고 말했다. 연맹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나름의 노력과 의지 덕분일까, 올 시즌 K리그 전반기만 놓고 보면 잘못된 판정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부 리그인 클래식 1라운드에서 11라운드까지 경기당 평균 4.03건에 달했던 오심은 12라운드부터 22라운드까지는 3.15건으로 21.8% 감소했다. 2부 리그인 챌린지 역시 같은 기간 오심이 24.9% 감소했다. 리그 통틀어 평균 23.3% 이상 줄어든 셈이니 나름 괄목할 만한 변화다. 전반적인 판정 정확도를 따지자면 90% 정도다. 이 정도면 나름 합격점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세계 최고 수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경우 95%의 판정 정확도를 보이고 있다. 판정에서 5%의 차이는 크다.

판정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심판들도 받아들이는 흐름이다. 설명회에 참석한 K리그 이동준 심판은 "(판정에 대한 사후 평가가 강화되는 것에 대해) 참 수치스러운 부분도 있다"면서도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많은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고충도 토로했지만, "더 나은 리그를 위해서는 심판으로서 따라가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연맹 또한 앞으로 심판에 대한 징계와 시상을 강화할 계획이다.


● 더 나은 K리그를 위해

언제나 위기라고는 하지만 K리그는 이제 나름의 위상을 구축했다. 세계 유수의 빅리그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해 가고 있는 과정이다. K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국제무대에 나가서도 안정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축구팬들은 이제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를 국가대표로 뽑으라'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선수 유출을 걱정하지만, 꾸준히 좋은 선수가 나오고 또 유입된다. 최근에는 스페인 등 양질의 외국인 선수들도 주저 없이 K리그 행을 택하고 있다. 중국과 중동으로 진출하는 발판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관중 부족 현상도 걱정할 것 없다고 본다. 지난 주말 수원 전에 3만 관중을 불러 모은 전북의 사례는 고무적인 예다.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인기 구단에는 분명히 팬들이 모여든다.
 
앞으로의 과제는 단점을 보완하고 리그의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타 선수도, 좋은 경기도 중요하지만 수준 높은 판정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 좋은 선수들이 아무리 좋은 경기를 펼쳐도, 잘못된 판정은 한순간에 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판정만이 더 나은 경기와 관중의 몰입을 보장한다. 더 나은 K리그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와 감독, 어느 한쪽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심판도 잘해야, K리그가 산다.


(SBS 강청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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