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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투수 보직파괴, 정말 문제일까?

SBS Sports 정진구
입력2015.08.03 16:36
수정2015.08.03 16:36

지난 2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KIA와 한화의 경기. KIA 김기태 감독은 3-2로 한 점 앞선 9회말 선발투수 양현종을 마운드에 올렸다. 전날 마무리투수 윤석민이 비교적 많은 공을 던진 상황이었지만 선발투수, 그것도 팀의 에이스를 9회에 등판시킨 것은 파격이었다. 그러나 양현종은 나오자마자 첫 타자 김경언에게 안타를 내주며 위기를 자초했고, 결국 마운드는 윤석민으로 교체됐다.

같은 날 롯데-KT전에서도 KT 조범현 감독은 8-8 동점에서 역시 선발투수인 엄상백을 구원으로 투입했다. 역시 엄상백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첫타자에게 볼넷을 내준데 이어 2루타까지 맞고 결정적인 실점을 했다.

이러한 선발투수의 '보직파괴'는 마운드의 분업화가 자리 잡지 못했던 1990년대까지 흔했던 일이다. 요즘에는 매경기가 총력전인 포스트시즌 때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 정규시즌에서 이런 파격적인 기용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감독이 그 경기를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 달 14일 롯데 이종운 감독은 청주 한화전에서 선발 레일리를 원포인트 릴리프로 내보냈다. 올스타브레이크를 앞둔 전반기 마지막 3연전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자칫 9위로 전반기를 마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종운 감독에게 어느 때보다 승리가 절실했다. 더구나 상대는 시즌 초반 빈볼시비로 미묘한 관계에 놓여있던 한화였다. 이렇듯 레일리의 구원 등판은 절박한 팀 사정과 맞닿아 있었다.

◇ 불펜피칭 대신 실전등판, 괜찮을까?

물론 선발투수의 구원 기용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제 선발 등판한 투수가 다음날 다시 마운드에 오르던 프로야구 초창기의 마구잡이식 등판은 더 이상 없다.

대다수의 선발투수는 등판 후 다음 등판까지 일정한 몸만들기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4일 휴식의 경우, ‘선발 등판->휴식->가벼운 운동->불펜피칭->휴식->등판’의 과정이 일반적이다.

위 과정 중 선발등판 이틀 전에 진행되는 불펜피칭은 불펜에서 20~30개 가량의 공을 던지는 것인데, 선발투수가 구원으로 나서는 경우는 대부분 불펜피칭을 하는 날 이루어진다. 불펜에서 20개를 던지는 대신 직접 마운드에서 투구하는 셈이다.

언뜻 생각하면 불펜에서 20개를 던지나, 마운드에서 20개를 던지나, 투구는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그 차이는 엄청나다. 불펜피칭을 할 때 대부분의 투수들은 전력투구를 하지 않고 감을 잡는 정도로만 공을 뿌린다. 실전과는 체력적인 면이나, 마음가짐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원로야구인은 “똑같이 전력투구라도 불펜에서 공을 던지는 것과 실제로 경기에 나가 공을 던지는 것은 체력적으로 3~4배의 차이가 난다. 투수들이 경기 중 받는 압박감은 상상 외로 크다. 투수 입장에서 이런 등판은 밸런스 유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일 경기에서 양현종과 엄상백 모두 제 몫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투수 모두 선발등판 때의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 투수들의 휴식일 보장이 우선

물론 선발투수의 구원등판을 무조건 혹사로 연결시킬 순 없다. SBS스포츠 최원호 해설위원은 투구수에 따른 휴식일을 더 강조한다.

최원호 위원은 “만약 선발투수가 앞선 등판에서 많은 공을 던지지 않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등판 일정이 밀렸을 경우, 구원으로 나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미국의 의학저널에 따르면 투수의 부상 방지를 위해 30~45구의 공을 던졌을 때는 하루, 45~60구는 이틀의 휴식일을 주도록 권고한다.(60구~75구는 사흘 휴식, 90구까지는 나흘 휴식) 휴식일만 보장된다면 혹사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권고에 따르면, 만약 선발투수가 앞선 등판에서 60개 이하의 공을 던졌을 경우 이틀 휴식 후 사흘 째 불펜으로 나가 30개 정도를 던지고, 다시 하루 쉰 뒤 선발로 등판하는 것은 문제 없다. 반면 100개의 공을 던진 선발투수가 사흘 쉬고 구원으로 나오는 건 혹사가 될 수 있다.

선발이 구원으로 등판하는 보직파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감독 입장에서 승부처에서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는 전략이다. 다만 등판 전후에 충분한 휴식 보장이라는 전제조건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투수들은 승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구단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SBS스포츠 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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