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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국 400m 계주 67년간의 저주

SBS Sports 권종오
입력2015.08.31 13:25
수정2015.08.31 13:25

미국 육상이 이번에도 400m 계주 징크스를 떨쳐버리지 못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29일 벌어진 2015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400m 계주에서 미국 대표팀은 37초 77로 우사인 볼트가 이끈 자메이카에 이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트라이본 브롬웰, 저스틴 게이틀린, 타이슨 게이, 마이크 로저스가 차례대로 뛰었는데 경기 뒤 마지막 주자 로저스가 바통 터치 존(20m)를 넘어선 뒤 바통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실격 처리됐습니다.

미국 육상의 이른바 남자 400m 계주 ‘흑역사’는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남자 육상은 전통적으로 단거리에 강했습니다. 1948년 런던올림픽 400m 계주 결승에 나선 미국 팀은 단연 우승후보였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1위였습니다.

하지만 심판들은 첫 번째 주자인 바니 이웰이 두 번째 주자인 로렌조 라이트에게 바통을 넘길 때 바통 인계구역을 넘었다고 판단해 실격 처리했습니다. 이에 따라 홈팀인 영국이 2등에서 1등이 됐고 이탈리아와 헝가리가 은메달, 동메달을 나눠가졌습니다.

시상식도 다 끝난 상태에서 미국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던지 당시 상황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중계 카메라 필름이 남아 있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3일간 정밀 조사한 뒤에 판정을 번복했습니다. 금메달은 다시 미국의 차지가 됐습니다.

이로부터 12년이 지난 1960년 로마 올림픽 400m 계주 결승전. 이때도 미국은 금메달후보 0순위였습니다. 마지막 주자인 데이브 사임이 서독을 제치고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첫 번째 주자인 프랭크 버드가 두 번째 주자인 레이 노튼에게 바통을 넘길 때 노튼이 20m의 인계 구역을 넘어서 바통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실격됐습니다. 판정이 번복된 12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꼼짝없이 실격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미국의 400m 계주 9회 연속 우승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육상 황제’ 칼 루이스가 이끄는 미국 계주팀은 최강이었습니다. 예선 4조에서 38초98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세 번째 주자인 캘빈 스미스가 바통 인계 구역을 넘어서 최종주자인 리 맥네일에게 넘겨준 것이 드러나 결승 진출이 무산됐습니다. 그 바람에 칼 루이스는 올림픽 3관왕의 꿈도 접어야만 했습니다.

미국 400m 계주팀의 징크스는 21세기에도 계속됐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계주팀은 역대 최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인 모리스 그린, 아테네 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 저스틴 게이틀린, 아테네 올림픽 200m 금메달리스트인 숀 크로포드 등 세계 정상급 선수를 모두 보유한 미국의 400m 계주 우승은 ‘떼놓은 당상’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결승에서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두 번째 주자인 게이틀린과 세 번째 주자인 코비 밀러 간에 바통 인계가 매끄럽지 못해 시간이 지체된 것입니다. 게다가 코비 밀러와 최종 주자인 모리스 그린과 바통 터치도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간발의 차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육상에서 미국은 결국 38초08을 기록했는데 이는 영국에 100분의 1초 뒤진 기록이었습니다. 영국은 4명의 개개인 실력만 본다면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환상적인 바통 인계로 미국을 은메달로 밀어내고 극적인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바로 다음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가 이끄는 자메이카와 미국이 숙명의 대결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던 상황, 하지만 미국은 어이없이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선두를 달리던 세 번째 주자 다비스 패튼이 최종 주자인 타이슨 게이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바통을 떨어뜨리고 만 것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미국 여자 400m 계주팀도 준결승에서 바통 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2번의 올림픽에서 연거푸 쓴 잔을 마신 미국 계주팀은 세계선수권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예선에서 바통 인계 구역을 벗어나 바통을 넘기는 바람에 실격됐습니다.
2년 후 열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에서는 세 번째 주자가 바통을 넘기다 뭐에 홀린 듯 중심을 잃고 넘어져 미국은 완주조차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습니다. 400m 계주는 팀당 4명의 주자가 각각 100m씩 이어 달려 순위를 매기는 종목으로 바통이라는 변수에 따라 명암이 갈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길이 30㎝, 무게 500g짜리 알루미늄 재질의 바통을 잘못 넘겨주거나 떨어뜨리면 시간이 지체돼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들은 바통 터치 구역인 '테이크 오버 존'에서만 바통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 외 지역에서 바통 터치가 이뤄지면 실격이 됩니다.

세계 육상계는 미국팀의 징크스를 단지 불운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던 한 미국 선수는 “솔직히 바통을 넘겨주고 넘겨받는 훈련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다”고 나중에 고백했습니다.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미국에는 슈퍼스타들이 즐비했습니다.

개개인의 기량만 놓고 보면 그들은 늘 최강이었지만 계주 연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은 내주기 아까웠던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이 세계 정상급 팀 중 400m 계주 연습을 가장 적게 하는 팀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내년 8월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는 미국 육상이 7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400m 계주의 저주에서 벗어날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SBS 권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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