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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진화하는 손흥민, 남다른 세리머니의 '가치'

SBS Sports 이은혜
입력2017.04.19 19:08
수정2018.01.16 11:26


손흥민은 '리얼타임 레전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존재한다. 하나는 도전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이미 이룬 업적만으로도 아시아 축구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놀랍게도 손흥민의 도전은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 또 다른 의미는, 바꿔 말하면 손흥민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레전드라는 점이다. 시대가 달라졌고, 환경이 변한 만큼 레전드를 정의하는 기준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새로운 유형의 레전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손흥민의 골 세리머니 동작이다.

흔히 유럽 축구계에 도전하는 아시아 선수들은 엄격한 이중 잣대의 평가기준을 적용받는다고들 말한다. 유럽에 진출했을 정도니 자국에서는 당연하게도 대체불가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선수가 대부분이지만 그들은 동시에 축구의 수준이나 경쟁에 있어 차원이 다른 유럽무대, 즉 자신의 소속팀에 돌아가면 완전히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 유럽에서 활약하는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일상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장거리 이동, 신체적 조건 등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 불리함들까지 존재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레전드'라는 호칭까지 부여 받은 선수라면 기량 그 자체가 최고 수준인 것은 물론이고 그 이면에서 철저한 노력을 바탕으로 유럽 태생 선수들의 장점까지도 압도할 수 있는 엄청난 경쟁력을 갖췄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흔히 차범근, 박지성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강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현역 시절 세계 최고의 기량들이 모였다는 유럽에서도 쉽게 대체하기 힘든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손흥민이 두 선배의 업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또 뛰어넘고 있는 지금, 새로운 기록이 쓰여질 때마다 반드시 동반 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핸드셰이크' 세리머니다. 이번 시즌 초반부터 간간히 보여지던 일련의 흥겨운 세리머니 동작들은 올해 4월 들어 손흥민이 또 한 번 골 폭풍을 몰아치면서 잉글랜드 현지는 물론 우리 축구팬들에게도 하나의 상징적인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세리머니 그 자체에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손흥민은 평소 훈련장에서, 연습시간 등을 활용해 팀 동료들과 재미삼아 다양한 동작의 세리머니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는 흥겨운 리듬을 타며 약속된 포즈를 취하고, 악수를 나누며 마무리 하는 방식이다. 다만 동작은 세리머니를 하는 상대에 따라서 각각 다르고 또 꽤 복잡하기까지 하다.

그런 까닭인지 요즘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토트넘 선수들은 골 넣는 것 보다 세리머니 외우는 게 더 힘들 것 같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토트넘 구단 SNS도 손흥민의 이 '신기한' 셰이크 동작을 수차례 공유하며 열광하는 모습을 몇차례 이어오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과 일일히 다른 동작으로 악수 세리머니를 펼치는 손흥민의 모습을 따로 찍어 동영상으로 올린 적도 있다.

물론 이런 세리머니 장면은 사실 축구뿐만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서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토트넘뿐만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포그바 등이 팀 동료와 함께 자신들만의 약속된 핸드셰이크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등 젊은 선수들에게는 최근 골 뒤풀이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분위기다. 이탈리아 클럽 유벤투스나 레알 마드리드의 슈퍼스타 호날두 등 세계 각국의 리그에서 다양한 선수들이 골을 넣은 뒤 동료와 함께 재치 넘치는 '핸드셰이크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있다.

'그깟' 세리머니에 무슨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냐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그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옳고, 그름의 차원을 떠나 세리머니는 사실 성공의 담보이고, 더 중요한 것은 '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발한 세리머니를 개발했다 한들 경기장 위에서 실력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아무리 라커룸 분위기가 좋고, 친화력이 뛰어난 선수라도 성적과 결과가 없으면 훗날 이름조차 남길 수 없는 것이 프로의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이유는 손흥민이 그 세리머니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럽에 진출한 아시아 축구선수 중 이토록 팀 분위기를 선도하는 선수는 사실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의 설움과 마주하거나 기량상, 포지션상, 팀을 위해 희생하고 또 헌신하는 이미지가 강한 유형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걔중 일부는 스폰서 등 이런 저런 경기 외적 요인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아시아 선수가 자신이 가진 기량 그 자체만으로 팀의 중심에 섰다는 것도 놀라운데 엄청난 친화력으로 팀 분위기까지 주도하고 있는 장면은 사실 지구 반대편에서 손흥민을 바라보는 우리 팬들에게조차 '생경한' 감정이다. 일찌감치 유럽으로 건너간 탓에 1차적으로는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고, 정서나 문화에 있어서도 서양의 그것에 큰 이질감이 없는 손흥민이지만 골을 넣을 때마다 보여주는 당당하기까지한 특유의 세리머니는 지금까지 현지 팬들의 눈조차 휘둥그레 만드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특유의 '오글거림'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손흥민의 가치는 그 수치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됐고, 토트넘 팬들에게도 핸드셰이크 세리머니는 곧 승리의 상징이 됐다.

더욱이 그 이면에는 손흥민이 각종 편견과 난관들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레전드임을 보여주는 '가치'도 내재되어 있다. 축구에서 특히 공격수 포지션의 선수는 팀 동료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 없이는 팀 내 입지를 다지기가 절대적으로 힘들다. 고도의 신체능력과 천부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팀 동료들로부터 상대 문전 앞에서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임을 얻어야 비로소 최고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지금의 호날두가 된 것은 '홀로날두'의 시기를 거치며 팀 동료를 활용할 줄 알고, 나아가 팀과 함께할 줄 아는 더 영리하고 성숙한 선수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손흥민이 팀 동료들과 보여주는 세리머니는 그가 공격수로서 완벽히 팀에 녹아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얼마나 철저히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증거가 아닐까. 갈색폭격기 차붐이 그랬던 것처럼, 언성히어로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손흥민은 지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새로운 레전드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는 셈이다. 유럽 축구 리그에서 활약하는 아시아 선수가, 이토록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또 즐겁게 팀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습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그것임에 분명하다.

골을 넣고 아이처럼 활짝 미소를 짓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외우기에도 복잡해 보이는 핸드셰이크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 수 많은 편견이나 단점, 불리함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아시아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선두권 팀에서 'No. 7'을 달고 한 시즌에 무려 20골 가까운 득점을 올렸다는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손흥민의 이 '핸드셰이크' 세리머니는 오랫동안 떠오를 상징적인 장면이 될 듯 하다. 그리고 모든 레전드들이 증명하고 있는 사실. 불가능이란, 정말 없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사진=Getty Images/이매진스]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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