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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커밍쑨 ④] 손흥민-토트넘, 또 한 번 '대박'칠까?

SBS Sports 이은혜
입력2017.08.11 16:52
수정2017.08.11 16:52

손흥민과 토트넘의 2016/17 시즌은 소위 '대박'이었다. 우선 손흥민은 2016/17 시즌에 총 47경기에 출전해 21골 10도움을 기록했다. 한 시즌 20골은 프리미어리그는 물론 유럽 유수 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탑클래스 공격수를 상징하는 지표다. 종전까지 아시아 선수가 가지고 있던 유럽 내 최고 기록은 차범근 전 감독이 현역이던 1985/86시즌에 넣은 19골이 최고였다. 잉글랜드 무대 2년 차를 맞은 손흥민은 리그에서 14골, FA컵 무대에서 6골,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1골을 기록하며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아시아를 넘어 유럽 축구사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미 2016/17 시즌 활약만으로도 손흥민이 유럽무대에서 어느 정도의 '성취'를 얻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증명서도 충분하다. 우선 앞서 언급한 '한 시즌 아시아선수 유럽 무대 최다골(21골)' 기록은 당분간 쉽게 깨지기 힘들어 보인다. 후배인 황희찬이 무서운 상승세로 올라오는 모양새지만 손흥민이 활약 중인 무대가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들만 모이는 프리미어리그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치가 퇴색될 가능성은 향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현저히 낮아 보인다.

1992년 7월 8일생, 올해로 만 25세인 손흥민은 지난 2015년 약 400억원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기록하며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레버쿠젠에서 프리미어리그 팀 토트넘으로 둥지를 옮겼다.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첫 시즌에는 잉글랜드 무대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센세이셔널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 기복과 부상을 겪으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400억원이라는 숫자가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2016/17 시즌에 넣은 21골을 보태 EPL 무대에서 통산 29골을 기록한 손흥민은 박지성이 2005년부터 7년 동안 넣으며 세운 아시아선수 EPL 통산 최다골인 27골을 두 시즌만에 단숨에 넘어섰다. 물론 미드필더와 공격수라는 포지션 차이에 의한 단순비교에 모순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두 시즌만에 넘어서기에 쉬운 기록도 아니다. 아시아 선수 한 시즌 EPL 최다골(14골), 아시아 선수 최초 FA컵 득점왕(6골), 아시아 선수 최초 EPL 해트트릭 기록 등 깨알 같은 '최초'의 기록들까지 더하면 손흥민이 2016/17 시즌에만 갈아치운 업적들은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런 성과들에 압축적으로 '방점'을 찍은 사건은 손흥민이 2016/17 시즌에 EPL 사무국이 공식적으로 선정하는 '이달의 선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일이다. 역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중에, 아니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했던 아시아 선수가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한 것은 손흥민이 최초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한 선수가 한 시즌에 '이달의 선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것도 지금까지 총 25회에 불과했다. 지난 시즌 보여준 손흥민의 활약이 수치상으로나 그 순도에 있어 토트넘의 순항을 견인하는데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손흥민의 팀 기여도를 설명하기 위한 수치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토트넘은 2016/17 시즌에 리그에서 총 86골을 넣고 26골 밖에 실점하지 않았는데, 이는 리그 실점 최소, 득점 역시 단연 최다 기록이었다. 우승을 차지한 첼시가 85골을 넣기는 했지만 실점이 33골로 득실차가 52골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골득실 부문(60골)에서 단연 우위를 기록한 토트넘의 공,수 밸런스가 얼마나 탄탄한 전력을 자랑했는지 알 수 있다. 역대 프리미어리그 2위 팀들 중에서도 최고치였다.
리그 득점왕이 토트넘에서 나왔고(해리 케인, 29골), 구단 역사상 수 많은 최초 기록이 쓰여졌다. 토트넘 창단 이래 최다 승점 기록은 물론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에 동시에 3명(케인, 알리, 손흥민)이나 20골 이상을 기록하는 '대박'도 터졌다. 1부인 EPL은 물론 4부 리그까지 포함해도 20골 이상 득점자가 한 팀에서 3명이나 쏟아진 것은 토트넘이 유일했다. 2016/17 시즌은 손흥민 개인에게나, 소속팀 토트넘에게도 그만큼 특별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토트넘은 출전한 모든 대회를 통틀어 단 하나의 트로피도 가져오지 못했다. 다른 팀들이 체력고갈과 전력 난조로 허덕이던 시즌 막판까지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했던 리그는 물론이고 챔스는 조기 탈락, 유로파도 탈락, 컵대회에서도 중도에 탈락했다. 리그 6위에 그친 맨유가 컵대회인 EFL우승 트로피를 챙긴 것에 이어 시즌 막판 유로파리그 우승컵까지 가져가며 당당히 2017/18 시즌 UEFA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복귀하고 이적시장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펑펑쓰는 것과 비교하면 리그 2위 성적표를 받아든 토트넘의 존재감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난 시즌 우승 문턱 가장 가까이까지 갔던 첼시와의 FA컵 준결승전에서 손흥민 윙백 카드를 꺼내 들었던 포체티노 감독의 '악몽'은 다시 꺼내들기 무안할 정도다.

물론 손흥민 개인적으로는 두 차례나 받은 '이달의 선수상' 트로피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팀의 일원으로 우승 시상대에 올라 가 받은 메달보다 더 가치가 크다고 보기는 힘들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고, 언제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우승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운영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다 하더라도, 끝내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팀들이 축구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갔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여름 내내 용광로 처럼 들끓고 있는 이적시장에서 마치 자신들은 지구 반대편에 서 있기라도 한 듯 냉혈한 같은 행보를 유지했던 토트넘 내부에서 서서히 균열음이 들리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과 다르지 않다. 토트넘 수비 전력의 핵이었던 카일 워커는 이미 잉글랜드 수비수 이적료 역대 최고액을 경신하며 '갑부구단'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을 들고 새로운 인증샷을 찍었다. 포체티노 감독이 자랑하는 견고한 포백 수비라인의 또 다른 축 대니 로즈는 연봉 상한선이 10만 파운드(약 1억 5천만원)인 구단 정책을 대 놓고 비판하며 언론을 통해 '허탈함'을 알렸다. 일부 영국 언론들은 로즈가 자신의 영입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맨유나 첼시에 일종의 'SOS'를 보냈다는 해석까지 내놓고 있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훨씬 떨어지는 기량에도 오히려 자신들보다 월등히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즐비한 프리미어리그에서 비싸고 좋은 선수를 사 오는 것은 둘째치고, 안에 있는 유능한 선수들마저 조금씩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토트넘. 설상가상일지, 금상첨화일지 클럽은 직전 시즌에 창단 이래 역사상 최고의 성적(승점 86점, 리그 2위)을 올린 상태다. 2017/18 시즌, 토트넘은 결국 그 어떤 라이벌도 아닌 자신들 스스로의 한계와 싸워야 하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실현 불가능하고 어려운 목표와 마주하게 된 셈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한 번도 가져오지 못한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토트넘의 'No.7'인 에이스 손흥민의 숙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7/18 시즌부터 손흥민이 넣는 한 골, 한 골이 아시아 선수 EPL 최다골, 유럽무대 통산 최다골을 경신하는 새로운 역사가 된다. 하지만 그만큼 큰 부담감, 압박감과 싸워야 한다. 지난 시즌보다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기록 경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자칫 손흥민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인 빠른 템포의 공격과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흐트릴 수 있는 최대 적이 될 수도 있다.
시즌 초반 골 폭풍을 몰아치다 연말 이후 리그 막판이 되면 부상과 기복에 시달리며 임팩트를 잃곤 하던 선수. 부담과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며 종종 경기장 안팎에서 불안과 신경질적인 모습을 감추지 못하던 20대 초반의 선수. 그랬던 손흥민이 이토록 놀랍게 진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감독의 전술에 녹아들기 위해, 동료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 흘려 가며 달려 온 덕분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어쩌면 지난 시즌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지난 시즌에 그 누구도 손흥민이 이렇게까지 잘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었으니까. 하지만 2016/17 시즌의 결과들을 통해 증명된 것도 분명히 있다. 어떤 팀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니며, 어떤 시련은 누군가에게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진부하지만 분명한 사실들. 2부 리그로 임대갔던 케인은 몇 년 뒤 친정팀에 돌아 와 득점왕이 됐고, 모국 팬들에게조차 '400억짜리 유니폼'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손흥민은 2년 만에 자신의 몸값을 700억으로 끌어 올렸다.

그렇기에 전망이 아주 나쁜 것도 아니다. 8월 중순 개막을 앞둔 현재 주전 수비수 카일 워커가 우승 경쟁팀 맨시티로 이적한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추가적인 '전력누수'는 없고, 공격수 케인을 주축으로 한 알리-에릭센-손흥민으로 이어지는 토트넘의 공격 4각 편대는 리그 내 상위권 팀들 중에서도 최강의 공격력과 호흡을 자랑한다. 자원이 재편된 맨유, 첼시 등의 경쟁팀들이 시즌 초반 적응기를 보내야 하는 사정을 감안하면 오히려 초반부터 더 응집력 높은 전술로 나설 수 있는 토트넘에게는 일찌감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유리한 측면도 있다.

또 포체티노 감독이 지난 몇 년 동안 유스 출신들을 명민하게 키워 발탁해 온 만큼 새 얼굴과 팀 내 경쟁 체제 유지만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면 현 전력의 상당 부분을 지킨 것 만으로도 토트넘은 가장 위협적인 우승 후보 중 한 팀인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영국 '스카이스포츠'나 'BT 스포츠' 등 주요 중계 채널의 축구 해설자와 패널들 대부분은 2017/18 시즌에도 토트넘이 빅4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즌 초반 관건은 부상에서 돌아 온 손흥민의 실점 감각이다. 지난 6월 말 출전했던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 원정에서 팔 골절 부상을 입었더 손흥민은 현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실전 경기 투입이 거의 가능해질 정도로 회복이 마무리 된 상태다. 토트넘은 오는 13일 우리시간으로 일요일 밤 9시 30분, 뉴캐슬의 홈인 세인트제임스파크 원정으로 2017/18 시즌 첫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개막전을 약 일주일 앞두고 손흥민의 출전여부를 막판까지 고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대선배인 차범근, 박지성에 이어 유럽에 진출한 아시아 축구선수의 도전사에 새로운 족적을 남기고 있는 손흥민. 그리고 이제 명실상부 한국 내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제2의 '국민구단'이 된 토트넘. '억'소리가 예사인 유럽 축구 이적시장에서 무서우리만치 돈을 쓰지 않는 팀과 아시아 축구사를 새로 쓰고 있는 리얼 타임 레전드. 손흥민과 토트넘이 2017/18 시즌에 과연 어떤 활약과 성적을 기록할 수 있을지 우리 축구팬들은 물론 잉글랜드 현지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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