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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회 궁금한 이야기 Y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방송일 2010.09.03 (토)
· 뺑소니 미스터리, 진실은 무엇인가?
· 미달이는 그녀에게 무엇인가?
·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578억 원과 맞바꾼 꿈





1. 뺑소니 미스터리, 진실은 무엇인가? 
- 한 가족의 삶을 파괴한 뺑소니범 추적기 

지난 7월 19일, 밤 9시 경기도 화성. 도로변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엄청난 굉음을 들었다.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가 보니 오토바이와 운전자 이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씨는 뇌출혈로 인해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 지금도 출혈이 계속 돼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4년 전 치킨가게를 시작하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일 해온 이씨. 사고당한 그 날도 어김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배달을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씨를 친 가해 차량이 사라졌다. 뺑소니였다. 다행히 사고 당시, 현장에는 목격자들이 많았다. 도로변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박씨, 때 마침 삼거리의 건널목을 지나던 최씨. 그리고 피해자 이씨의 오토바이를 뒤따라오던 또 다른 오토바이 운전자 정씨. 이들은 용의차량으로 한결같이 사고 현장에서 트럭 한 대가 급하게 사라지는 걸 봤다고 했다. 이들의 기억을 조합해 밝혀낸 용의차량은 19**번의 1톤 트럭. 경찰은 차량번호를 조회해 사고발생 4시간 만에 용의자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용의자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실제로 그의 트럭에는 사고 흔적이 전혀 없었다. 정황은 확실한데 증거가 없는 것이다. 사고 발생 4주 후, 국과수의 차량 감식 결과가 나왔다. 트럭 적재함 안쪽에서 페인트와 흠집 등 오토바이와 충돌한 흔적들이 발견된 것. 그날 밤 오토바이와 트럭은 분명히 충돌했던 것이다. 그런데...

“꽝 소리는 들었지만 오토바이를 친 줄은 몰랐어요. 난 모르는 일입니다.”

결정적 목격자와 국과수 결과까지 나왔지만 용의자가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일선 전문가들에 의하면 용의자 본인이 누군가를 쳤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 시에는 뺑소니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처벌 또한 가벼워진다고 하는데...
정말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순간, 트럭 운전자는 아무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처벌을 피하기 위한 거짓된 진술일까?


2. 미달이는 그녀에게 무엇인가?
- 최근 성형, 노출 화보 논란으로 새롭게 등장한 미달이 김성은의 자기 고백

십여 년 전, 시트콤에서 ‘미달이’라는 톡톡 튀는 캐릭터로 7살에 스타덤에 올랐던 김성은. 한꺼번에 쏟아지는 관심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린 성은은 홀연히 브라운관을 떠났고,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충격적 소식이 전해진다. 자신을 ‘미달이’라 부르는 사람을 칼로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그 이름이 싫다는 것. 그렇게 남다른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다시 ‘브라운관’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장장 9시간에 걸친 성형으로 ‘미달이’ 얼굴을 지워버린 채 말이다.

“미달이는 지워버리고 싶은 그림자에요.”

안면비대칭, 눈매교정, 광대뼈, 하악골, 무턱성형까지... 그녀가 과감히 얼굴 전반을 성형한 이유는 기존의 미달이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최근 오디션을 위해 준비한 작품들도 여성스럽고 섹시한 이미지의 배역! 연극무대를 도전한 이유도 ‘아역 미달이’가 아닌 ‘여배우 김성은’으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달이라는 꼬리표는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활동을 재기하기 위해 소속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몸도 마음도 훌쩍 자란 스무 살 김성은인데, 사람들의 기억은 여전히 ‘7살 꼬마 미달이’에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달이가 아닌 나는 그 어디에도 없어요.”

‘미달이’로 살던 시절, 카메라에 빨간 불이 깜빡일 때의 그 떨림을 그녀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희열을 잊지 못해 다시 그곳으로 가려는 것이다. 평범한 꼬마 성은이가 ‘미달이’로 갈채받던 화려한 시절.... 어쩌면 이것이, 지금 그녀가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민한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자신을 마냥 아이를 보는 듯한 대중의 시선을, 그것을 딛고 배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그래서 10년 만에 다시 ‘미달이’를 떠올린다. 그토록 부정하고 벗어나고 싶어 했던 ‘미달이’를 말이다. 

대대적인 전면성형, 섹시 화보 촬영으로 끊이지 않는 논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한데...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만을 원하는 그녀.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가 드러내지 않던 속내를 최초로 들을 수 있었다.

 
3.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578억 원과 맞바꾼 꿈
	- 578억 원을 기부하고 발명가로 제2의 인생을 사는 85세 류근철 박사의 이야기

당신은 꿈을 위해 얼마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이공계 최고 지성들이 모여 있는 대전의 카이스트 캠퍼스. 이곳에 자신의 꿈을 위해 무려 578억 원을 포기한 한 남자가 있다. 대한민국 한의학 박사 1호, 1972년 세계최초로 침 마취 맹장수술에 성공한 원로 한의학자 류근철 박사. 유명 한의사로 수만 명의 생명을 살려낸 류박사의 손에는 지금 청진기나 침 대신 망치와 공구가 들려있다.

“80년 만에 찾은 꿈...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겁니다.” 

그의 나이 85세. 기력도 의욕도 모두 쇠할 나이. 하지만 지금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순간이다.  하루 종일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인류를 구해낼 과학기술 발명! 미래의 국가경쟁력은 오로지 과학기술에 달려있다는 생각 때문에 남은 인생 모두를 이곳에 던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578억 원을 기부했다. 왜일까?

“돈에는 귀신이 붙어 있어요.”

지독한 가난. 벗어날 길은 의사라고 생각했다. 한의사가 되었다. 일류 한의대 교수로, 유능한 한의사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더니 운 좋게 엄청난 돈이 따라왔다. 그런데 통장에 돈이 100억이 되고 200억이 되고 다시 300억이 넘자 덜컥 무서워졌다. 돈에는 귀신이 붙어 있어 그 돈이 정해진 자리로 가지 못하면 큰 화를 일으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2008년 4월, 빌딩과 임야, 아파트, 수백 점의 골동품 등 평생 힘들게 모은 재산을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578억, 우리나라 개인 기부액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그러자 잊고 있던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내 평생의 꿈은 발명이었습니다.”

기부의 인연으로 카이스트 특훈 교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류 박사. 젊고 패기 넘치는 과학기술 인재들 사이에 자신 또한 과학자로 새로운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수백억 자산가였던 류 박사는 지금 구멍난 양말을 신고, 자기 손으로 직접 이발을 하면서도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데. 남은 시간이 적은 것 같아 더 많이, 더 부지런히 연구에 매진해야 할 뿐이다. 평생 모은 수백억을 포기했지만 대신 꿈을 다시 얻었다는 류 박사. 그는 대체 무엇을 위해 꿈을 찾으려 애썼을까? ‘꿈’은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