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회 현장 21
현장 21
방송일 2012.10.23 (수)
ㆍ정치와 강남스타일 ㆍ그들만의 산재보험 ㆍ『안나푸르나』그 후 1년 정치와 강남스타일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열풍!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의 정치권에서도 '강남스타일‘이 언급되며 ’정치인 스타일‘패러디 영상이 연일 화제다. 사회 지도층 인사라 불리는 정치인까지 강남스타일 열풍 대열에 합류한 까닭은 무엇일까?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B급 가사와 제대로 망가지는 ‘말춤’에 그들은 왜 열광하고 있을까? 단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단지 좋아서라고 보기엔 무언가 불편하다. * 대중음악과 정치. 그들은 왜 강남스타일을 선택했나? 정치인들이 일반 대중음악을 선거나 정치활동에 이용한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일이다. 대표적인 예로 1997년 ‘DOC와 춤을’ 이란 노래를 개사해 선거판을 뒤흔들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와 춤을’. ‘오빠만 믿어’라는 노래를 개사한 이명박 대통령의 ‘명박만 믿어’ 이러한 선거로고송에는 정치인들이 강남스타일에 열광하는 이유가 숨어있었다! 정치 도구로서의 강남스타일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 강남스타일과 감성 정치. 그리고 싸이의 교훈 정치인들이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과 함께하는 방식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패러디는 광범위한 사람들과 접촉하며 다중의 대중을 동원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순 자신을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 차원을 넘어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열광하는 정치인들의 속내와 역으로 강남스타일이 그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현장21》에서 취재했다. 그들만의 산재보험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 최고다. 근로자 10만명 당 18명으로, 영국의 0.7명에 비하면 30배에 가깝고 산재 사망률 2위인 멕시코의 10명에 비해서도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이제 산재 승인율을 보자. 우리나라는 0.71%로 미국4%, 독일 3%등과 비교해 턱없이 낮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산업재해로 인정받기엔 벽이 높다는 얘기다. 특히 업무와의 연관성을 피해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 “업무상 질병”의 경우는 산재로 인정받기가 최근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고 한다. 산재 판정의 공정성을 높이겠다며 지난 2008년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까지 도입됐지만 이후 오히려 승인을 받지 못한 비율이 높아졌다. 법 개정 전인 2007년의 경우 뇌심혈관계질환의 산재 불승인율이 56.3% 근골격계질환은 25.9%였는데 반해 2011년엔 80.2%, 38.8%로 오른 것. 근로자들은 “재해자 답변 무시, 현장조사 부재, 자문의 소견만으로 불승인을 남발”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4월, 당시 35세의 건장한 청년이었던 한 회사원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뇌출혈이 왔다고 산재 신청을 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과거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며 불승인 판정! 8년간 마트에서 상자를 나르고 제품을 진열하다 허리 디스크가 왔다는 직원 역시 퇴행성 질환이라며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하다 다쳤지만 회사도, 정부도 자신들을 외면한다고 눈물짓고 있는데... 그런데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산재승인 현황을 보면, 이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산재율은 유사업종 근로자에 비해 몇 배로 높았는데.... 일반 근로자는 산재 신청단계부터 좌절하게 만드는 높은 진입장벽을 방치하고, 까다로운 승인 기준을 들이대면서, 자신들의 권리행사엔 적극적인 근로복지공단!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산재를 인정받지 못해 눈물짓는 근로자들을 통해 현 산재제도를 둘러싼 문제점과 그 대안에 대해 취재해본다. 『안나푸르나』그 후 1년 10월 18일이면 영원한 전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한국의 대표 산악인 고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다. 박 대장은 지난해 10월 18일 오후 4시경 안나푸르나 남벽을 하산하는 도중 마지막 무전을 끝으로 2명의 대원과 함께 소식이 끊겼다. 이후 대한산악연맹을 중심으로 두 차례 구조대를 파견했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하고 거대한 눈사태에 휘말려 5600~5700m 빙하지대에 묻혔을 것이라고 추정한 뒤 수색을 중단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안나푸르나의 빙하가 가장 많이 녹는 시기인 수색에 적기인 것으로 알려진 지난 8월! 실종된 산악인 고 박영석 대장과 대원들의 시신을 찾기 위한 수색대가 다시 안나푸르나로 향해 출발을 했는데..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ㆍ강기석 대원의 원정대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던 최종 목격자이자 안나푸르나 원정대원인 이한구, 김동영 대원.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수색대원으로 참여해 이들의 흔적을 품에 안아 보기를 고대했지만.. 안나푸르나를 다시 찾은 수색대원의 촬영 영상에는 그 어디에도 박영석 대장 일행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평생을 사랑한 히말라야 설벽에서 길고도 고통스러웠을 싸움을 끝내고 조용히 여장을 내려놓았을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대원이 남긴 정신은 여전히 전해지고 있는데...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대원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이한구, 김동영 원정대원이 기억하는 실종 전 마지막 모습과 실종 후 지난 1년을 맞는 심정. 그리고 실종 후 10개월 만에 수색을 위해 다시 찾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이들을 통해 결코 잊혀 지지 않는 그리운 박영석 대장과 두 동료들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