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SBS 뉴스토리
서해5도 어민들, 뿔났다
방송일 2014.12.02 (수)
[서해5도 어민들, 뿔났다] 지난달 26일, 대청도, 소청도와 백령도 등 서해5도 어민들은 어장이 아닌 서울로 배를 몰았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이 기승을 부리자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해상시위에 나선 것. 꽃게잡이가 한창이어야 할 11월. 어민들이 시위에 나서게 된 사정은 무엇일까? 11월 4일, 그 날은 꽃게 철을 맞아 어민들이 ‘통발’이라고 부르는 어구를 설치한 상태였다. 그런데 중국어선 700여 척이 나타나 꽃게를 비롯한 고기는 물론, 어구까지 ‘싹쓸이’해갔다. 이날의 싹쓸이로 서해5도 어민들은 올해 꽃게잡이를 포기해야 했다. 사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은 서해 5도만의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십수 년째 전국 해상에서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어선은 그 규모만 연간 20만 척, 그로 인한 피해액도 연 1조 3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최근에는 40~50t 이상의 철선으로 무장한 수백 척의 대규모 선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과 인접해 있는 서해5도의 야간조업이 금지를 악용해 밤에 들어오거나, 풍랑주의보로 해경의 단속이 느슨한 틈을 타는 등 점점 수법이 대범해지고 있다. 해경이 지속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게릴라전을 방불케 하는 중국어선에는 속수무책이다. 취재진은 직접 대청도로 건너가 어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3남매의 아빠인 한 어민은 섬을 떠나 육지로 나갈 것을 고민하고 있었고, 다른 어민은 작년에 빚을 내서 산 어구를 몽땅 도둑맞아 꽃게잡이 대신 낚시 조업에 나섰다. 해상에서 중국어선을 만났을 때 우리 어장을 눈앞에 두고 도망쳤다며 어구, 어장뿐 아니라 나라까지 뺏겼다고 울분을 토하는 어민들.. 무기고라도 털어 중국어선에 맞서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어민들의 분노는 상당했다. 서해5도 어민들은 정부에서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언제든 배를 몰고 서울로 간다는 선전포고까지 한 상태인데.. 우리 바다를 위협하는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는 서해5도의 총성 없는 전쟁을 취재했다. [어린이집 원장이 신생아 매매...‘사라진 아기들’] 지난 8월 5일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신생아를 6억 5천만 원에 매매하려던 어린이집 원장 김씨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김씨가 데리고 나온 아기는 피부병 때문에 온몸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빨갰고 군데군데 심하게 물집이 잡혀있었다. 3.37kg으로 태어난 아기는 발견당시 2.62kg까지 몸무게가 줄었고 심각한 세균성 패혈증과 감염성 피부병으로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한 달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돈을 받고 갓난아기를 팔려고 했던 사람이 어린이집 원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린이집 원장 김씨는 어떻게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취재진이 김씨와 처음 연락이 된 건 지난 7월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신생아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 하던 중 인터넷을 통해 개인 입양을 하고 싶다는 김씨를 알게 되었다. 취재진이 개인 입양에 관심을 보이자 김씨는 갑자기 브로커로 돌변했다. 그때부터 신생아 매매를 둘러싼 김씨와 취재진의 한 달여간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김씨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수차례 매매가격을 높였고 아기를 매매하기로 한 당일에는 10억까지 요구했다. 현장에서 검거된 김씨는 11월 초 아동복지법위반으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뉴스토리의 후속취재 결과 김씨의 범죄 사실은 이것 뿐 만이 아니었다. 김씨가 2013년 8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자신의 셋째 딸로 출생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셋째 딸을 실제 양육하고 있는 것처럼 속여 보육료 및 양육수당 350여 만 원을 부당 지원받았다. 하지만 김씨의 셋째 딸을 실제로 봤다는 주변 어린이집 관계자들의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 원장 김씨의 셋째 딸은 과연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일까? 17회 뉴스토리에서는 대전 신생아매매 사건의 전말과 사건의 중심인 김 원장의 셋째 딸을 둘러싼 또 다른 의혹에 대해 단독 취재했다. [9회말 2아웃 서건창의 인생역전] 올해 프로야구 MVP(최우수선수)에 넥센 히어로즈의2루수 서건창(25)이 선정됐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 쓴 2014년. 그 중심에 선 선수 서건창. 서건창은 타격왕(타율 3할 7푼) 득점왕(135득점) 최다 안타왕(201안타)에 올랐다. 특히 안타 수 201개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한 시즌 최다 안타이자, 첫 200대 안타로 기록됐다. 역대 프로야구 MVP는 주로 홈런 타자나 다승 투수의 몫이었다. 홈런 타이틀 없이 MVP에 오른 선수는 장효조(1987년 삼성) 이종범(1994년 해태)에 이어 서건창이 세 번째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작 서건창 선수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난 뒤에도 서건창 선수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특이한 배꼽타격,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201안타. 2014년은 서건창의 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빛났던 그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시작부터 좌절이었다. 야구명문 광주일고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유망주로 손꼽히던 선수였지만, 예상과는 달리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이후 고려대학교의 입학 제의도 있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남매의 뒷바라지를 하고 계신 홀어머니의 부담을 하루빨리 덜어드리고자 '신고선수‘로 입단해도 좋다는 LG트윈스의 제안을 택했다. ’신고선수‘란 계약금 없이 최저연봉만 받고 입단하는 프로구단의 연습생 신분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부상과 성적부진을 이유로 이듬해 방출되는 좌절을 겪어야했다. 그 후 곧바로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지만 서건창 선수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2년의 군복무를 마친 뒤 2011년 말 현재 소속팀인 넥센 히어로즈의 문을 두드렸고 두 번째 ’신고 선수‘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 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던 서건창 선수는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에 대비해 성실히 노력한 결과 넥센 히어로즈 입단 3년 만에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시즌 201안타의 기록을 세우며 최우수 선수로 우뚝 섰다. 서건창 선수는 경기장에서 유니폼이 가장 더러운 선수로 통한다. 그만큼 부지런히 경기장을 누비며 과감히 몸을 던진다는 증거다. 장갑 유니폼 허리띠 등을 다른 선수들보다 두 배로 많이 소모한다는 서건창 선수. 모교인 광주일고를 방문한 서건창 선수를 만나 그의 드라마 같은 야구 인생에 대해 들어보았다. 에서는 좌절과 눈물을 이겨낸 서건창 선수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