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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회 SBS 뉴스토리

고종과 대관정, 그 비운의 역사..

방송일 2016.12.17 (토)
고종과 대관정, 그 비운의 역사..

서울 중구 소공로(小公路), 조선시대 태종의 작은 딸 경정공주집이 있었다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소공로 한쪽에 대한제국 최초 영빈관이었던 ‘대관정’의 옛터가 있다. 그리고 그동안 정면 모습만 알려져 있던 ‘대관정’의 측면이 찍힌 사진이 최초로 발견됐다. 에서 단독 입수! 잊혀져가는 ‘대관정’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대한제국 최초의 영빈관, 대관정
황실 귀빈을 모시기 위한 장소로, 고종 황제가 각별히 신경 써 마련한 ‘대관정’.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해 당시 경성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이곳에는 외국 직계 왕족이 방문하기도 했는데… 조선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빗장을 열고 강대국과의 활발한 외교를 꾀했던 고종 황제. 하지만 그런 고종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고 ‘대관정’도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게 되었다.
무심코 지나치는 빌딩숲 사이에 숨겨진 대한제국 역사의 산물, ‘대관정’의 모습을 SBS보도CG팀에서 재현하며 그곳에 얽힌 잊혀진 역사를 파헤쳐본다.


대한제국 오욕과 저항의 역사, 중명전
대관정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중명전’. 원래 ‘수옥헌’이라는 이름의 황실도서관으로 사용되다가, 1904년 고종황제가 기거하던 경운궁이 화재로 전소돼 황제의 새 거처로 낙점됐다. 고종이 많은 전각 중 중명전을 고른 이유는?

이듬해인 1905년, 이곳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조약문에 서명을 거부하며 절규하는 고종 황제를 배제하고 무력으로 대신들을 압박했던 일제의 치밀한 수법, 하루 새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후 고종은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에 친서외교를 펼치고 특사 파견, 그리고 의병 활동까지 관여를 했다. 그동안 나라를 빼앗긴 군주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있었던 고종 황제, 그는 정말 나약하고 무능한 군주였나? 

일개 건축물이 아닌 그 시대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근대문화유산. 대한제국의 역사를 담고있는 대관정-중명전을 통해 우리가 역사의 현장들을 지켜나가야 하는 이유를 알아본다.





‘바당여자의 삶’ 인류유산 되다

  지난 11월 30일, 제주해녀가 드디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해녀만의 도전적인 삶과 공동체의식 등 독특한 문화가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제주해녀가 우리나라의 19번째 인류유산으로 선정돼 축제 분위기지만
정작 국내에서 제주해녀가 이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취재진이 찾아간 제주해녀들은 카메라만 나타나도 질색을 했다.
그들은 행여나 자신이 방송에 나가면,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걱정한다.
해녀라는 직업이 부끄럽고 천하다는 과거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인류유산 등재는 인류에게 가르침을 준 이를 지키고 기억하자는 인류의 각오이다.
하지만 그릇된 편견은 해마다 해녀의 수가 크게 줄어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만난 제주해녀 중 누구도 자식에게 물질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제주해녀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이 순간
무엇이 그들을 숨죽여 지내게 하는 건가?

  1930년대부터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제주도의 해녀들이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으로 원정물질을 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육지의 바다에서 새로운 어업환경을 개척하고 제주해녀의 문화를 계승했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강인한 생활력과 도전적인 개척정신이 올곧이 전승된 것이다. 
그러나 원정해녀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들 스스로가 직업과 출신을 밝히기 꺼려해 숨어 지냈기 때문이다.

  이번 에서는 인류유산 등재를 계기로, 그동안 숨죽여 살아온 제주해녀의 삶과 현실을 집중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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