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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회 SBS 뉴스토리

형제복지원, 가려진 국가 폭력 30년

방송일 2017.07.08 (토)
형제복지원, 가려진 국가 폭력 30년


1975년 부산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부랑인 임시보호소가 설립됐다. 바로 형제복지원. 그곳에는 실제 부랑인도 있었지만,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소년, 소녀, 청년들이 감금생활을 했다. 그들은 폭행, 노동착취를 당하며 생활했고, 그 중 사망한 이들도 500여 명이나 된다. 

9살에 영문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에 들어가 5년 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손정민 씨. 트라우마까지 생겨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의 일들이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죽기 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14살에 아버지의 폭력을 못 이겨 가출을 했다가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된 이향직 씨는 87년 형제복지원이 해체될 당시에 풀려나왔다. 당시의 충격과 고통이 너무 커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다. 그는 과거를 숨기려 했지만 이제 역사의 증인이 되기 위해,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기 위해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피해 생존자들은 사람이었지만 사람답게 살 수 없었던 이유를 묻고 있지만, 그 누구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 이들이 원하는 국가의 진실 된 사과와 왜 잡혀 들어가야 했는지에 대한 진상규명 또한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후 30년, 이제 국가가 답을 해야 할 차례이다.

이번 주 는 이들을 만나 긴 세월 동안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아픈 과거를 듣고, 그들이 바라는 것과 알리고 싶은 진실은 무엇인지 들어본다.





신중현 60년, 한국 록을 노래하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그의 이름을 빼고 한국 대중 음악사를 말할 수 없다.
올해로 데뷔 60년을 맞는 신중현, 그는 이제 한국 록의 전설이 되고 있다. 
신중현 데뷔 60년을 맞아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에서는 
인디밴드 후배들이 뜻깊은 헌정 공연을 열었다.
신중현은 대중음악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신중현의 음악 인생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다. 
당시 대중문화의 집결지이자 실력파 가수만 모인다는 용산 미8군 무대에서
신중현은 천재적인 기타 연주로 ‘히키신’이란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다.  
모두가 서양음악을 흉내 내고 기껏 번안가요 정도에 열광할 때, 
그는 서양음악인 록을 우리 전통 5음계로 재해석해 독창적인 한국 록을 만들었다. 
‘키보이스’와 더불어 국내 최초의 록밴드로 불리는 ‘애드 포(Add 4)’를 결성한 
신중현은 1964년에 이미 한국적 록의 원형질이라 할 수 있는 명곡 
‘빗속의 여인’과 ‘커피 한 잔’을 발표한다. 
이후 펄시스터즈와 김추자, 박인수, 바니걸스, 장현 등을 잇따라 발굴해 
톱스타 반열에 올리면서 가요계에 ‘신중현 사단’이라는 신조어를 낳게 했다. 

그리고 1974년 발표된 ‘신중현과 엽전들’의 은 
우리 전통음악의 5음계로 서양음악을 표현하는 파격적인 곡으로 평가되고, 
이를 통해 신중현 음악은 최고의 절정기를 맞는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듣게 되는 ‘미인’은 3천만 명의 애창곡이 됐고, 
갖가지 에피소드를 낳는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중현은 1년 뒤 정권에 의해 모든 활동이 금지되며 
사실상 음악인으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당시 대통령 찬가를 만들라는 청와대의 제의를 거절한 것이 화가 됐다. 


는 데뷔 60년을 맞은 신중현의 음악 세계와 
그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당시 정권에 의한 문화탄압 등 시대상을 
본인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집중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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