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회 SBS 뉴스토리
숨은 여성 독립투사 ‘박차정’
방송일 2019.03.02 (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무수한 땅의 역사를 품고 있다. 특히 외침과 항전의 근대사가 그렇다. 늘 스쳐 지나는 곳이지만 서울 골목길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친일과 항일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 북촌에 이어 한옥마을로 관심이 높아진 서촌. 하지만 이곳에 숨겨진 친일과 항일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친일파 윤덕영은 나라를 팔아먹고 받은 일왕의 돈으로 땅을 사들였다. 그가 서촌에 조성한 가옥부지는 종로구 옥인동의 54%인 2만 평에 이른다. 벽수산장, 99칸 기와집 등 그의 아방궁 가운데 지금도 원형이 잘 남아있는 집이 있는데 바로 박노수미술관이다. 윤덕영이 딸의 결혼선물로 지어준 집인데, 해방 이후 박노수 화백이 40여 년 살다가 사망 전인 2011년 자신의 작품, 소장품 1000여점과 함께 사회에 환원했다. 친일로 얼룩진 땅의 역사가 새로운 가치로 거듭난 것이다. 매국의 오욕을 벗고 다시 태어난 유산이 있는가 하면 역사를 품고 잠들어 있다가 다시 깨어난 유산도 있다. 3.1만세운동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 가족이 살던 집 딜쿠샤다. 광산업자이면서 UP통신원이었던 그는 1923년 직접 이 집을 짓고 힌두어로 ‘이상향’이라는 뜻인 딜쿠샤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미일관계가 악화되자 테일러 가족은 1942년 강제 추방됐다. 주인을 잃은 딜쿠샤는 광복과 전쟁 등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잊혀갔다. 지난 2005년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이 한국 측에 아버지에 대한 영화제작 가능성을 물어오면서 묻혔던 딜쿠샤의 사연은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된다. SBS 뉴스토리는 이 외에도 남산 통감관저 터, ‘독립운동 테마역’으로 지정된 안국역과 그 일대 마지막 임시정부 경교장 등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서울 속 친일과 항일의 역사현장을 ‘골목길 역사산책’의 저자 최석호 교수와 동행 취재했다. ‘조선에서 자란 소년들이여 가슴에 피 용솟음치는 동포여 ...눈물을 거두고 결의를 굳게 하여 모두 일어서라‘ -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가, 박차정 작사 경남 밀양 송악마을 공동묘지에 자리한 초라한 묘. 유관순 열사가 받았던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박차정 의사가 묻힌 곳이다. 영화 로 대중에게 각인된 약산 김원봉의 부인으로 중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다가 총상을 입고 34살 젊은 나이에 숨진 박차정 의사. 그럼에도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박차정 의사는 1910년 부산 동래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아버지는 일제 무단정치에 비분강개하여 자결했고 사촌 김두봉 등을 비롯해 집안이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배경 탓에 박차정 의사는 어려서부터 항일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 고교 시절 박차정 의사는 일제의 눈을 피해 노파로 분장하여 학교 간 연락책 역할을 하는 등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는데 졸업 후엔 서울 11개 여학교가 시위를 벌인 ‘근우회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모진 고문을 당한다. 고문으로 몸이 많이 상한 박차정 의사는 의열단원인 둘째 오빠를 통해 중국으로 망명했고 당시 의열 단장이던 약산 김원봉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빅차정 의사는 중국 망명 직후, 의열단의 조선혁명 간부학교 여성 교관으로 활동한다. 또 민족혁명당의 산하기관인 남경조선부인회를 결성하여 여성 해방과 민족 해방을 동일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조선의용대의 부녀복무단장으로 항일 무장 투쟁에 앞서며 실천가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1939년, 중국 곤륜관 전투에서 박차정 의사는 일본군의 총탄에 맞고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결국 해방을 한해 앞둔 1944년, 그녀는 먼 타지에서 서른넷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온 김원봉은 죽은 뒤에도 부인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본인의 집 뒤편에 있던 공동묘지에 박차정 의사를 안장했다. 일제 강점기 평생을 항일 독립 투쟁을 벌였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삶의 궤적을 SBS뉴스토리가 따라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