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회 SBS 뉴스토리
명절이 더 아픈 사람들 - 참사와 재난 그 이후
방송일 2026.09.19 (토)
[담당기자] 류란 ▶ 예기치 못한 재난, 한순간에 멈춰버린 일상 온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추석. 하지만 누군가에게 명절은 무너진 일상과 가족의 빈자리를 절감하는 날이다. 지난달 중순, 경남 거제와 통영 지역에는 100~200년 만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폭우가 쏟아졌다. 통영 곤리도에 사는 은진 씨는 결혼 후 30년 가까이 살아온 집을 이번 폭우로 잃게 생겼다. 급히 대피해 인명 피해는 막았지만, 2차 붕괴 위험 탓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마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민수(가명) 씨도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 집 뒤편 옹벽이 무너지면서 흙더미가 순식간에 어머니를 덮친 것이다. 가까스로 구조된 어머니는 병원 치료를 받고 있고, 민수 씨 역시 다친 몸으로 어머니를 돌보며 집을 복구하고 있다. 수마가 남긴 큰 상처에 곤리마을 주민들은 걱정과 불안 속에서 이번 추석을 맞았다. ▶ 가족을 앗아간 참사,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 아예 명절을 잊고 지내는 이들도 있다. 광주에 사는 성철 씨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둔 채 잠도 못 잘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성철 씨는 얼마 전 또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참사 발생 보름여 뒤 ‘잔해 수습 99% 완료’라고 발표했던 정부의 설명과 달리 기체 잔해와 공항 주변 여기저기에서 희생자들의 유해 추정물이 잇따라 발견된 것이다. 지난 4월 재수색이 시작된 이후 추가로 수습된 유해 추정물만 1,650여 점. 참사 후 2년이 다 되도록 최종 사고 원인 조사와 책임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일부 유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공항에서 텐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6월,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이순희 씨는 당시 스물네 살이던 큰딸을 잃었다. 중국에서 사범대를 졸업한 후 부모 곁에 있고 싶다며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벌어진 일이었다. 딸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는 순희 씨는 지난 4월,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아리셀 대표의 형량이 2심에서 징역 4년으로 대폭 줄어든 것이다. 검찰이 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딸을 잃은 후 순희 씨 집안에서 명절은 사라진 지 오래. 참사의 책임을 묻는 시간이 길어지며, 가족의 고통은 하루하루 더 깊어지고 있다. 여든을 앞둔 이영문 씨는 아들 재용 씨 없이 열 번째 추석을 맞았다. 2017년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 타고 있던 재용 씨는 딸 셋을 낳은 뒤 얻은 막내로, 각별한 자식이었다. 사고 2년 뒤 정부의 첫 심해 수색이 진행됐고, 선체와 항해기록 저장장치, 유해로 추정되는 대상이 발견됐지만 끝내 유해 수습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 사이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가족들은 관련 재판과 절차를 지켜보며 원인과 책임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어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아들의 유해를 수습해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들의 바람은?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평범한 일상마저 잃어버린 사람들. 이들은 복구와 수색, 철저한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며 긴 시간을 힘겹게 버티고 있다. 이번 주 SBS 에서는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아 재난과 참사 이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피해자들이 다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 사회가 끝까지 살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