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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06.07.09 (월)
*기획의도  
그 집만의 냄새, 감도는 기운...우리 삶의 모든 것이 살림집 안에 집약되어 있었다. 사람은 집에서 나고 집에서 살다 집에서 죽는다. 개인사란 집의 역사와 떼낼 수 없는 한 몸이었다.
-평론가 김서령

집은 삶의 흔적이다. 집의 모습은 그 사회의 정서다. 집의 문화는 그 사회의 문화다. 우리 시대가 경제적으로 풍성해지고 외면적으로 화려해졌으면서도 어딘지 각박하고 들떠서 불안스러운 것은 우리 시대에 맞는 우리 삶의 양식, 집의 양식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건축가 김진애


집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집은 삶의 보금자리이며, 사람이 살고 가족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답한다. 비교적 최근까지 집에서는 아이가 태어나거나 노인이 삶을 마감하는 많은 가족사가 이뤄졌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집을 오랫동안 살아가며 추억을 쌓아가는 곳이라기보다는 몇 평에 얼마 하는 수치로 값을 매기고 집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렇게 규격화된 집을 사는 데 거의 평생을 바친다. 소득의 상당부분을 집 사는데 쏟아 붓고, 집을 사면 다시 늘려가기 위한 노력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는 집에 대한, 지금의 집과 다른 아련한 기억들을 갖고 있다. 기억속의 집은 삶의 자취가 남은 공간이었고 기억의 저장고였다. 큰 집은 아니어도 삶이 호흡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우리는 늘 꿈꾼다.
본 프로그램은 최근 30여 년 간 급속한 사회변화와 함께 한국인의 생활을 바꾼 집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집, 집 값, 그것을 따라잡기 위한 무한 경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돌아보고, 미래에 우리의 주거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가야할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주요 내용
1)모두가 누렸던,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라진 집의 이야기들

내 아버지가 짓고 내가 태어난 집, 학소도 
최범석 씨는 아버지가 지으신 서울의 단독 주택 집에 살고 있다. 그 집에서 그와 그의 누나가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집 주변은 아파트들이 하나 둘씩 들어섰고 결국 집은 빙 둘러싼 아파트 사이에 있는 섬이 되어 있다. 거실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지만 집은 1층집이다. 그의 아버지가 나중에 가족이 늘어나면 2층으로 올릴 거라며 계단만 만들어 둔 것이다. ‘학이 돌아오는 섬’이라는 집 이름을 함께 지어주신 아버지는 몇 년 전 타계하셨지만 최씨는 이 집에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주인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집, 네모집
평창동 산기슭에 반듯한 네모 집이 있다. 집 주인 윤명로 씨는 30년 전, 서울의 25평 아파트를 팔아 당시 평당 2만4천원에 이곳에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마당 한복판의 150년 된 소나무를 상하지 않기 위해 설계부터 네모 모양으로 집을 지었다는 그는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이곳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냈다. 집은 부부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부부도 집처럼 곱게 늙어가고 있다. 

2) 집, 2006년 현재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우리는 집만 있는 거지에요’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데 성공한 최수경 씨 부부. 이삿 날, 부부는 세상 누구보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함과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9년간 모은 모든 자산을 집값에 털어놓고도 상당히 많은 돈을 대출로 해결해야 했던 것. 이렇게 집을 사는 것이 정상일까 하면서도 분양 당첨 때보다 그새 몇 천만 원이나 집값이 오른 것을 보고 그래도 집을 사기를 잘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대출 없이 어떻게 집을 사요?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게 최선이죠’
부부가 따로 가입한 청약통장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결혼 후 3년 동안 혼인신고도 미뤘던 임경원 씨. 4년 동안 네 번을 이사 다닌 끝에 결국 신도시의 새 아파트를 분양받는데 성공한 그녀는 집값의 60%를 대출받기로 했다. 대출받은 돈만큼 집값이 오를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분양권 당첨 후 3일 만에 새로 청약통장을 만들었다. 아파트에 입주하더라도 오래 살 생각은 없으며 더 크고 좋은 아파트로 옮겨가는 것이 향후 5년 내의 목표라고 한다. 
 
3) 아파트 별곡 - 이야기가 쌓이기 어려운 집? 
전국의 집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아파트. 서울 시내, 작은 자투리땅이라도 남아있는 곳에는 모두 아파트가 들어섰고 아파트 없는 곳은 부유한 단독 주택지나 생활환경이 열악한 달동네 몇 군데, 나머지는 모두 다세대 주택지역이다. 예전의 평범했던 단독주택지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고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가구마다 주택을 보급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아파트보다 효율적인 주거형태가 없다. 그러나 구조를 바꾸거나 늘리는 것이 불가능한 아파트는 필연적으로 계속 옮겨 다녀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집. 먹고 자는 기능 말고 집에서 누렸던 것들이 아파트에서는 어려운 이유가 뭘까? 아파트를 정붙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4) 한양주택 이야기 
1998년, 조순 당시 서울시장으로부터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상패를 받았던 은평구 진관내동의 한양주택. 214가구, 대지 50평. 같은 크기의 아담한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이곳은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북전시용 목적으로 조성한 당시의 신도시 마을이다. 처음엔 모두 같은 모양의 집들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보금자리를 소중하게 가꿨고 집집마다 많은 사연을 담은 소중한 공간이 됐다. 그러나 이 마을은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 뉴타운 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집과 토지를 강제 수용 당하게 된 것. 마을사람들은 보상도 필요 없다며 마을을 지키기 위한 갖은 노력으로 2년 넘게 버텨왔지만 이제 힘을 잃고 포기하는 집들이 늘어가고 있다. 두 달 동안 지켜본 한양주택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집과 사람과 개발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5) 이야기가 숨 쉬는 집
생후 10개월 된 태영이는 집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출산을 즐거운 축제로 만들고 싶다며 다섯 살 태헌이와 세 살 지원이가 지켜보는 안방에서 태영이를 낳았다. 태헌이는 둘째 지원이와는 엄마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직접 태어나는 모습을 본 막내 태영이는 끔찍하게 예뻐한다. 15평, 전셋집인데다 그럴 듯한 아파트도 단독주택도 아닌 다세대 3층집이지만 태헌이 삼남매의 이 집은 가족들에게 더없이 특별한 곳이다. 정붙이는 집에서 가족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좋은 집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태헌이네 다섯 식구가 소리 없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