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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06.08.20 (월)
혈액형에 대한 관심,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당신의 혈액형은 무엇입니까?” 한국인은 유독 상대방의 혈액형에 관심이 많다. SBSi에서 7월 20일부터 9일간 남녀네티즌 1523명에게 물어보았더니 50.9%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혈액형을 물어본다고 대답했다.  혈액형을 상대방 성격파악의 중요한 정보로 생각한다.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캐나다인 David Dion(26)씨, 그는 자신의 혈액형을 모른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학생이 혈액형을 묻길래 굉장히 당황했다. 수혈을 원하는 급한 환자가 있는 걸로 착각했던 것이다. 작년 4월 로이터 통신 한국특파원인 존 허스코비치씨는 ‘한 일본작가에 세뇌된 한국인’이라며 한국인의 혈액형신드롬을 비꼬았다.

한국인 그리고 원조인 일본이 ‘혈액형별 성격분류’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우선 ‘피’ 즉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혈액형은 유전되므로 혈액형에 단순히 수혈에 필요한 정보 이상의 그 무엇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인관계를 강조하는 동양의 전통 또한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처음 대하는 사람의 고향, 출신학교, 가정환경 등에 관심이 많은 우리의 정서상 혈액형은 유용한 정보의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혈액형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사람들
 
  혈액형에 대한 관심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의정부시 호원동에 사는 서미옥(46)씨는 인테리어가게를 하다가 최근 죽 전문점을 열었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성격의 A형은 죽 전문점이 더 어울린다는 창업컨설팅회사의 권고에 따라 업종변경을 했는데, 수입이 늘고 적성에도 맞다 고 느낀다. 온라인 의류업체 ‘더 걸스’는 혈액형별 코디법을 마케팅에 도입했다. 주로 20~30대 여성 중심으로 고객층이 형성되어 매출이 20% 이상 늘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 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안동에서 대학을 다니는 김종균(23)씨는 미팅으로 한 여성을 만났는데 상대방이 혈액형 궁합을 보더니 연락을 끊었다. 김씨의 혈액형도 역시 B형이다. 개그맨인 P(28)씨는 마음에 드는 여성이 혈액형을 물으면 O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P씨의 혈액형도 B형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중매를 신청하는 미혼여성 중에서 특정혈액형은 제외시켜달라는 비율이 20~30%에 달한다. 주로 B형이지만 AB형을 피하는 여성도 가끔 있다.  


혈액형과 성격, 생물학적인 관련성은 없다.

 그렇다면 혈액형과 성격 간에 생물학적인 관련성은 있을까?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면 먼저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발견되어야 한다. 성격 유전자가 존재해야 혈액형 유전자와의 관련성이 입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이 일본의 저명한 생리학자인 하마마츠 대학 다카다 교수의 주장이다. 

 한편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물학적인 요인은 무수히 많다고 한다. 키 큰가 작은가, 피부빛깔이 검은가 흰가, 왼손잡인가 아닌가, 눈이 큰가 작은가 ···  설사 먼 미래에 성격유전자가 발견되고 그것이 혈액형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성격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권석운 교수의 설명이다. 혈액형은 수많은 성격결정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 혈액형 성격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일본방송작가 ‘노미 마사히코’는 1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관찰해 혈액형 성격학의 통계를 수립했으며 각 혈액형별 직업군을 분류했다. 노미 마사히코의 아들인 ‘혈액형 인간과학연구센타’ 소장인 ‘노미 도시다카’는 취재진에게 혈액형과 결혼, 연애, 건강, 운동능력, 직장생활 등 다양한 상관관계를 제시했다.

근거 없는 혈액형성격론, 왜 믿는가?

 SBS 스페셜 팀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김범준 박사의 도움을 받아 네티즌 1523명 고교생 200명을 대상으로 혈액형과 성격의 관련성을 설문조사해 혈액형은 성격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음을 확인했다. 혈액형별 성격분류는 ‘누구나 믿을 수밖에 없는 애매한 말을 자신에 대한 설명으로 오인’하는 ‘버넘효과’의 결과라는 것이다. 

B형 차별론은 인종주의의 산물

한편 우리사회의 ‘B형 죽이기’가 독일에서 시작되어 일본으로 건너온 ‘인종주의’의 산물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양인은 B형이 상대적으로 많으며, 또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B형이 많아 언제든지 우리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한편 울산의대 권석운교수의 도움을 받아 cis-AB 등 희귀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을 취재하고 희귀혈액형을 가졌거나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어 갈등과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이 우리인구의 8%에 이른다는 사실도 취재과정에서 확인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4년 한 해 혈액형관련 특집프로그램이 40편이 넘게 제작되었으나 [방송윤리프로그램 향상기구(BOP)] 산하 [청소년위원회]가 ‘근거 없는 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은 뒤부터 방송사가 거의 편성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세인들의 혈액형에 대한 관심도 많이 낮아지는 추세이다.

제작진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취재를 통해, 혈액형별 성격분류는 ‘피’에 대한 집착과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한국과 일본의 특이한 문화현상으로서 생물학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유사과학의 하나임을 밝힌다. 

 혈액형과 성격 사이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다. 단순히 재미로 또 상대방과의 대화를 열어나가는 화제로 삼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종, 외모, 성별과 같이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선천적인 그 무엇으로 인간의 성격이나 능력을 결정짓는 것은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인종, 외모, 성별에 이어 혈액형이라는 또 하나의 유사과학이 우리사회의 편견을 조장하고 있으며 과학의 시대에 비과학적인 사고가 확산될 경우 우리 사회가 입게 될 불이익과 후유증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