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07.12.16 (월)
가제: 남측 벼를 심으려 왔습니다 - 평양, 당곡리에서 맺은 결실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에서의 3년, 그 안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어울려 일하며 일궈낸 남북농업협력의 현장과 결실을 방송사 최초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 2005년 남북협력사업을 시작하다. ‘허허벌판인 평양 당곡리의 협동농장에 최초로 온실을 설치하다.’ 남북협력사업은 2005년 협의를 시작하여 평양시 룡성지구에서 벼농사 시험 재배를 거쳐, 2006년 2월부터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에서 본격적으로 협동농장을 운영하였다. 2007년에는 남한의 자재와 기술, 북한의 인력을 동원해 27개동, 총 3600만평의 온실을 설치하고, 300헥타르의 논에 남한 오대벼를 심었다. 북한은 남한의 농업전문가들과 함께 기계를 이용한 벼농사를 시작하였다. 북한 주민들은 생경한 농기계들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관찰하며 반신반의 하였다. ‘보이지 않는 기 싸움’ 처음부터 일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남과 북은 서로가 쌓아온 농업 기술을 내세워 견해 차이를 보였고,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한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남과 북이 마음으로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온실 안에서는 작은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방울토마토, 오이, 호박을 비롯한 채소의 씨앗이 연초록 잎으로 돋아났다. 그 작은 생명을 바라보는 남과 북의 기쁨은 같은 모양, 같은 크기였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기쁨으로 얼싸안는 순간, 서로에 대한 불신도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남한과 북한 당곡리는 그렇게 협력을 위한 농사를 시작했다. ▶ 반세기가 넘는 분단, 같은 모습이지만 다른 우리 ‘괜찮습니다 = 일없습네다? 채소 이름부터 농사 기구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단어들’ 같은 모습, 같은 언어를 쓰지만 남한과 북한의 소통은 쉽지 않았다. 서로 다른 단어가 많아 팩스로 보내온 부족한 물품 중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조차 처음엔 어려웠다. 연락 또한 중국을 거쳐야 하는 통에 간단한 일도 며칠씩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남한에서 보내 준 최신식 농기구는 고장이 나면 수리를 할 수도 부속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분단의 벽 = 마음의 벽?’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북한 사람들의 경계는 또 하나의 벽이었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쉽게 말을 틀 수 없었고, 주민들과의 접촉도 역시 어려웠다. 떨어져 있던 긴 세월만큼 마음을 터놓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 2006년 가을, 함께하지 못한 첫 수확의 기쁨 ‘황금빛으로 물든 당곡리 들판?’ 새로운 벼 품종과 익숙하지 않은 농기계, 이것으로 지은 1년 농사가 제대로 될까? 오로지 농사 걱정뿐이었던 남한 사람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2006년 10월, 핵 실험 성공!’ 북한의 핵실험 성공 발표가 온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 남한을 비롯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고, 남북협력사업은 무기한 연기 되었다. ▶ 2007년으로 이어진 두 번째 농사 ‘잦은 만남, 가까워진 거리’ 2007년 2월, 6자회담 합의문이 발표되며 한반도 북핵 위기가 안정권에 들자 당곡리와의 농업협력사업이 재개되었다. 북핵 위기로 냉랭해졌던 남한 관계자와 북한 주민들은 찢어진 천을 꿰매듯 다시 한 땀 한 땀 협력을 이어갔다. 그렇게 남과 북이 서로 노력한 결과 이제 당곡리 주민들은 남한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대한다. 잘못 이루어진 온실 농사에 대해 서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남측 사람들은 수첩에 적어놓은 노래를 가르쳐달라며 한창 바쁜 일손의 주민에게 떼를 쓰기도 한다. 이제 남한과 북한 사람들 모두 한 달에 한 두 번의 만남이 기다려지고 익숙하다. 내 년엔 어떤 농사를 더 지을 것인지, 어떤 씨앗을 더 뿌릴 것인지 오고가는 대화는 끝이 없다. ▶ 변화하고 있는 당곡리, 분단의 벽을 허물 것이다. ‘분단의 벽을 넘어갈 수 있는 희망이 당곡리에 영글고 있다.’ 평양 당곡리는 변화하고 있다. 질척거리는 도로는 포장이 끝났고, 넉넉한 규모의 도정 공장도 완성되었다. 당곡리의 학교와 주택, 그리고 보건소까지 남북이 협력하여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당곡리의 협력 사업은 농사뿐 아니라 마을 전체에 불고 있다. 남한의 도움으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는 당곡리는 더 이상 남한을 경계하지 않는다. 남북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당곡리에서는 분단의 벽이 아주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