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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08.01.06 (월)
길에서 길을 묻다-산티아고 가는 길 
방송: 2008년 1월 6일(일) 밤 11시 5분


또 하나의 인생길...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가는 길)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북서쪽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중세적 순례길이 하나 있다. 9세기, 예수의 제자였던 성 야곱의 유해가 발견된 후 산티아고 가는 길은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유럽의 3대 성지가 됐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됐지만 천 년 남짓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 세계인들의 인생순례길이 된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
프랑스의 국경도시에서 시작되는 길은 800여 킬로미터. 하루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노정이 한 달 넘게 이어진다.     

오늘도, 삶을 꾸려 산티아고 길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몸을 가눌만큼한 짐 뿐, 길을 나선 그들에겐 카미노(길)를 걷겠다는 마음이 전부다. 그렇게 선 길 위에서,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그들은 무엇을 만날까...
 
느리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피레네 산맥을 지나자 바닥을 드러낸 채 구릉을 이룬 밀밭, 수확이 끝났지만 향긋한 와인 내음이 느껴지는 듯한 포도밭길,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하고 건조한 고원지대... 다양한 기후대를 지나는 산티아고 길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처럼 순례자들 앞에 놓여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만이 이 길의 목적인양 순례자들은 그날의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에게 걷기의 과제를 부과한다...그렇게, 오랜 세월 누적돼온 지독한 조급증을 내려놓지 못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보폭을 줄이고 걷기의 속도를 늦춘다. 꾸려온 짐은 길 내내 줄어들고 순례자들은, 최소한의 소지품으로 한 달이 넘는 노정을 견디는 자신을 만난다. 줄어든 짐만큼, 카미노는 지나쳐 버렸던, 놓치고 말았던 아름다움과 살가운 만남을 안겨준다.           

그 길의 끝에서...

“간단한 요깃거리와 자잘한 옷가지가 들어 있는 배낭 그리고 길 내내 제 외로움을 달래주던 기타가 이젠 삶의 요소가 되어버렸네요”...산티아고의 대성당 앞에서 만난 한 순례자는 그렇게 말한다. 캐나다에서 온 앳된 순례자는 또,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난 준비가 됐어요, 두려움은 사라지고 사랑을 느끼게 됐어요”...라고 감회를 털어 놓는다. 
삶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 그래서 움켜쥐고 놓을 수 없었던 것들. 산티아고 길 끝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걷기를 어렵게 만드는 삶의 무게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