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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08.06.15 (월)
日本軍의 처절한 복수 - 
'尹奉吉은 이렇게 총살됐다.' 
방송일시 : 2008년 6월 15일 (일) 밤 11:20

“홍구공원에서 폭탄사건을 일으킨 사람은 대외적으로는 ‘일본인 윤봉길’이었다. 
체면을 잃은 일본군의 분노는 중국인을 향할 수도 없었다. 그 억울한 감정을 
윤봉길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래서 일본군은 증오의 대상인 윤봉길을 군의 손으로 처형하기 위해 
그를 군법회의에 넘기는 데 집착했다.” 
-야마구찌 다카시 [윤봉길 암장의 땅, 가나자와에서] 중에서 

 1932년 상해 홍구공원 의거 이후 일본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은 윤봉길은 
그해 12월 19일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의거이후 윤봉길에 대한 보도는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다. 과연 일본 아사히 신문의 보도는 진실인가? 윤의사는 어디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가? 취재팀은 사형당시 일본군의 보고서와 그후 윤봉길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온 일본인들의 증언과 일본내 자료를 바탕으로 윤봉길의 사형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추적했다.    

▶극비로 이뤄진 사형집행과정과 최초로 공개되는 윤봉길 사형지 

 일본 방위성에서 원본을 확인한 ‘윤봉길 사형전말보고서’는 상해에서 일본으로 이송해 사형시킨후 매장하기까지의 전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 극비문서다. 그러나 이 문서에서조차 정확한 사형장소와 매장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팀은 당시 등고선 지도와 최근까지의 지형변화도, 위성사진 등을 바탕으로 윤봉길 의사가 총살당한 현장을 직접 찾아냈다. 

▶사형장에 울려퍼진 40발의 총성, 그 가운데 3발이 윤의사를 명중했다  

 한 발의 총알이 이마에 명중했다는 사형전말 보고서와 달리 세 발이 명중했을 가능성이 취재결과 드러났다. 일본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윤봉길의 행적을 추적했던 오오토 기자의 취재 메모에서 발견된 이 기록은 윤봉길의 사형집행이 보고서와 달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 탄생 100주년, 윤봉길에 대해 잘못 알려진 진실을 바로 잡을 때다 

 체포당시 윤봉길로 알려진 아사히신문의 호외 사진은 누가 찍었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진위 확인을 할수 없다 -아사히 신문 오사카 본사 고위관계자  
 예산에 있는 윤봉길 기념관에 전시된 말목은 무덤에서 발견된 당시 유품이 아니다
-1946년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박동조 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