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08.10.05 (월)
[물위를 떠도는 영혼 바다 집시] 방송일시 : 2008. 10. 5 (일) 밤 11:15-12:15 기획의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국적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동남아시아 안다만해의 바다를 정처 없이 떠돌며 물 위에서 생활하는 바다집시, 모켄족이다. 이들은 말레이반도에서 태국, 미얀마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이주하다가 800여개의 섬을 품고 있는 안다만 해 메르구이 제도를 중심으로 수렵생활을 해온 바다의 유목민이다. 쓰나미가 닥치던 날,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물러나면 큰 파도가 돌아와 섬을 삼킬 것이다” 라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금언대로 산으로 대피해 인명피해를 내지 않아 전 세계 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부족이 바로 바다집시 모켄이다. 그들에게는 ‘원하다“라는 말이 없다. 그들의 삶에는 “구속”이 없다. 바다집시 트 할아버지의 말 “모켄은 뭐든지 할 수 있어, 배를 만들 수도 있고 필요할 때면 깊은 물이건 얕은 물이건 잠수해서 물고기도 잡을 수 있고 조개도 잡을 수 있지. 육지 사람들은 가스불이 없으면 음식을 할 수 없지만 우리는 언제나 마음대로 음식을 만들지. 나는 가스불은 싫어. 직접 불을 지펴야지. 물론 힘들긴 하지만 우린 인간이잖아. 인간이기 때문에 힘든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야.” 그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바다의 유목민으로 살아온 것일까? ‘구속’과 ‘욕망’이 없는 그들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 취재진은 1998년부터 바다집시의 삶과 정서를 기록해왔다. 2004년 쓰나미 현장을 목격하고 거기서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바다집시 트와 살라맛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후 4년동안 10여 차례 안다만해를 방문하여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수 천 년간 드넓은 바다의 대지를 자유롭게 떠다니며 살아온 바다집시의 삶과 정서, 그리고 쓰나미가 남긴 재앙- 육지에 정착해 ‘돈’을 ‘원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현실의 파도를 헤쳐가는 바다집시들의 오늘을 담았다. 본 프로그램에는 월드프레스포토 상을 수상한 영국의 앤드류 테스타, 뉴욕타임즈의 진청 등 세계적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카메라에 기록된 바다집시 모켄의 다큐멘터리 스틸 사진도 함께 소개된다. 프로그램의 주제가로 사용된 음악 [Ocean Gypsy]는 딥퍼플의 기타리스트이던 리치 블랙모어가 연주하고 캔디스 나잇이 노래한 것으로, 미국 블랙모어 프로덕션의 저작권허가를 얻어 사용하게 됐다. 음악과 작곡을 담당한 정용진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해변의 여인] 등 영화음악을 작곡한 신예 음악가이다. 구성 내용 ▶ 국적 없는 바다의 유목민, 모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국적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동남아시아 안다만해의 바다를 정처 없이 떠돌며 물 위에서 생활하는 바다집시, 모켄족이다. 원래 자기 나라가 있었으나 어떤 이유로 나라를 잃고 방랑하게 된 다국적 단일민족인 디아스포라와는 달리 이들 바다집시는 처음부터 육지에서 살지 않고 국적이 없는 상태에서 바다 위를 떠다니며 살아왔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안다만해는 미얀마와 태국의 해상 국경지대이다. 바다집시들은 4천여년전부터 말레이반도로부터 해안선을 다라 이동하며 오늘날의 미얀마 남부까지 이주해왔다. 이들의 주된 활동구역은 미얀마와 태국의 해상 국경지대인 안다만해이다. 특히 800개의 섬이 흩어져 있는 미얀마 남부의 메르구이 제도는 모켄족의 본거지로서 약2천여명의 모켄이 살고 있다. ▶ 지구상에는 세 지역에 바다집시가 살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는 물 위를 떠다니며 생활하는 바다집시가 세군데에 나뉘어 살고 있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 안다만해의 모켄(Moken)족, 필리핀과 보르네오 국경, 술루해의 바자우(Badjau)족,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섬 모잠비크해의 베조(Vezo)족이 그들이다. 세 군데의 바다집시들은 생활양식과 민속이 비슷한 점이 많아 일부 인류학자들은 이들이 원래 고향이던 말레이시아 해변으로부터 몬순에 의해 생겨나는 취송류를 타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이주해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죽어서야 땅을 밟는 바다집시 바다집시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바다에서 죽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은 바다에 버려진다. 이들은 통나무로 만든 주거형 보트인 카방에서 1년에 8-9개월을 지내며 바다를 떠돈다. 바다집시는 보통 산호초 지대의 얕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지만 건기에는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나가 고기를 잡는다. 그리고 우기에는 작은 섬의 해변에 지어놓은 집에 머물며 몬순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바다를 떠돌며 카방에서 살아가던 모켄들은 죽어서야 육지에 묻힌다. 다음 생에는 뭍에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 ‘원한다’라는 말이 없는 바다집시의 미스터리한 생활 그들의 말에는 ‘원하다’는 말이 없다. 물고기도 늘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잡는다. 팔기위해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 바다집시 모켄의 수렵 도구는 나무를 깎아 만든 물안경과 대나무 작살이다. 그들의 작살은 물독수리보다 빠르고 더 정확하다. 바다집시들은 물 속에서의 투시능력이 보통 사람의 두 배에 달한다. 공기와 물은 밀도가 달라 우리 눈은 물속에서 초점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물안경을 쓰고도 바다 밑바닥의 복잡한 지형에서 살아있는 생물을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모켄은 물속에서 맨눈으로도 작은 조개와 같은 생물을 정확하게 찾아낸다. 모켄족은 태어나면서부터 물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환경에 적응한 것이라는 게 이 연구를 진행한 스웨덴 룬드 대학의 안나 기스렌 박사 의견이다. 또 모켄족은 다이빙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25미터 깊이까지 숨을 참고 잠수하면서 물속의 생물을 찾아낸다. ▶ 바다집시들에게 닥친 거대한 시련, 쓰나미 안다만해의 바다집시 모켄족은 쓰나미를 피해 살아남아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쓰나미는 바다집시들에게 전설로 내려오던 대재앙이었다.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물러나면 큰 파도가 돌아와 섬을 삼킬 것이다” 쓰나미가 있던 날, 모켄족은 조상 대대로 전해져온 바다에 대한 탁월한 예견으로 해일이 닥칠 것을 짐작하고 산으로 대피하여 인명 피해를 내지 않음으로써 전 세계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쓰나미는 그 후 바다집시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바다가 위험하다고 하여 태국 정부에 의해 육지의 난민 캠프로 소개된 이들 모켄족은 본토에 남으려 하는 젊은 층과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려는 연장자 층 사이에 세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육지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젊은이들은 고달팠던 바다의 기억을 잊으려는 반면에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온 기성세대는 답답한 육지를 벗어나 삶의 터전인 바다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 격변하는 바다집시의 삶을 4년간 카메라에 담다 이 프로그램은 지구상의 세 지역 바다집시를 취재하는 시리즈물의 첫 편으로 만들어졌다. 제작진은 1998년부터 보르네오 술루해의 바다집시를 취재해왔고 2004년 쓰나미와 함게 안다만해 모켄족 취재를 시작해 지난 4년간 10여 차례에 걸쳐 현지 촬영을 진행하면서 쓰나미 이후 이들 바다집시들의 삶의 변화와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을 기록해왔다. 취재는 주로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의 수린 섬 일원에서 이루어졌다. 미얀마 메르구이 제도의 바다집시 취재를 위해 세 번이나 현지로 들어갔지만 사이클론 등으로 인해 촬영에는 실패했다. 바다집시의 생활 촬영은 주로 배를 타고 이루어진다. 취재지역은 해적과 반정부 게릴라들의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취재진은 늘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급변하는 기후도 큰 장애물이었다. 40도가 넘는 더위가 계속되다가 폭우를 동반한 태풍인 사이클론이 몰아치기도 했다. 6월부터 10월까지의 몬순 기간에는 바다가 거칠어지고 파도가 높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마지막 촬영이 진행된 2008년 9월에는 주된 취재지인 수린 섬 출입이 통제되어 어려움을 겪었다. 수린섬은 바다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10월 중순까지의 몬순 기간동안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고 취재진은 3톤짜리 쪽배를 이용해 격랑을 헤치고 가까스로 섬에 다다를 수 있었다. ▶ 바다집시의 삶은 기로에 처해 있다. 쓰나미 이후 많은 바다집시들이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육지로 이주당하고 바다로 돌아가는 것에 제약을 받고 있다. 태국 사람들은 바다집시를 ‘차오레이’(바다의 사람들)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 중 문명을 받아들이고 태국 해안에 집을 지어 정주한 사람들을 ‘새로운 태국인’이란 듯의 ‘타이 마이’라고 호칭한다. 이 타이마이들은 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바다에서 생활하는 모켄은 아직 국적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원래 바다집시가 일하던 바다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던 곳이었다. 전통적으로 모켄족은 잠수 기술과 작살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아왔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고기만 잡고 잡은 고기를 남에게 파는 법이 없다. 이들이 시장에 내다파는 것은 말린 해삼이나 소라, 조개처럼 바다에서 줍는 것들 뿐이다. 그러나 최근 태국과 미얀마의 저인망 어선들이 대형 그물로 바다를 훑으면서 바다집시가 잡을 수 있는 고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쓰나미 이후 당국은 환경보존을 위해서라며 산호초 지대에서 바다집시의 잠수를 금지시켰다. 바다의 씨를 말린 바로 그 당사자들이 수 천년동안 바다에서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고기잡이를 금지시킨 것이다. 역시 어선들의 조업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 미얀마에서도 경비정들이 트롤 어선으로 위장하고 다니다가 잠수로 고기잡이를 하는 바다집시의 배를 적발하면 가차 없는 처벌을 가한다. 자신들이 정당하게 살아오던 일터로부터 마구잡이 불법어로를 일삼는 이주 어민들에게 차여나고 생계를 위해 신분 보장 없이 육지의 광산과 농장에서 일꾼으로 전락하거나 육지의 소작농처럼 미얀마와 태국의 선주들에게 종속되는 바다집시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얀마와 태국의 정부는 공통적으로 바다집시를 한 곳에 이주, 정착시키고 이들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 정부는 바다집시들에게 자국의 국적을 부여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삶의 기로에 서게 된 바다집시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기와 건기가 끊임없이 순환하듯 바다와 섬을 오가며 자유롭게 살아온 모켄족. 그러나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이들 바다집시들의 삶의 양식이 언제까지 이처럼 지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