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09.12.27 (월)
승일 스토리 나는 산다 방송날짜 : 2009년 12월 27일 밤 11시 20분 연출: 정준기 / 구성: 오정요 / 내레이션: 송승헌 ■ 기획의도 돌아보면 올 한 해도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제의 후회, 오늘의 버거움, 그리고 내일에 대한 불안과 희망의 돌림노래를 목청껏 불러댔었지. 그러다 목구멍에서 지친 피가 뜨겁게 솟구칠 때 즈음 어김없이 또 한 번 깨닫지. 누구에게나 인생은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요, 매 순간 누려야 할 선물쯤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불치병이 있었음을. 이제 우리 곁에서 2009년을 함께 ‘살아’오고 있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불치병에 걸려 온몸이 마비된 채 방안에 고립되었지만,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남자의 이야기. 유일하게 살아남은 눈의 감각을 이용해 자신의 삶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임을 대변하는 루게릭병 투병 8년 차 박승일의 이야기. 그가 생사를 오가며 절망과 희망을 반복하던 지난 1년 동안의 날갯짓, 그 보드라운 깃털 하나가 1분 1초를 헛되이 흘려보내고, 곁에 있는 이의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린 채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리네 가슴을 어루만져줄 과정을 기록한다. ■ 주요내용 #1. 박승일과 함께한 322일 동안의 기록 “안녕하세요, 저는 루게릭병 투병 중인 박승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직도 저를 기억할까요? 세상이 저를 잊어버리고 산다는 게 무섭도록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2009년 1월 20일, 그에게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지독한 고립감과 소통에 대한 열망을 짤막한 메시지에 담아 제작진에게 직접 보내온 박승일. 그로부터 1년 가까이 박승일과의 기나긴 동거가 시작되었다. - 2009년 1월 : 승일이 제작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2009년 4월 : 자신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안락사를 요구’하는 글을 남겼다. - 2009년 5월 : 승일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 2009년 10월 : 승일의 책, [[눈으로 희망을 쓰다]]가 출간되었다. - 2009년 11월 : 션-정혜영 부부가 승일의 꿈인 루게릭병 전문 요양소 건립을 위해 1억을 기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일은 7년 만의 외출에 도전한다. 우리가 승일과 동행했던 지난 322일 동안, 그는 병상에 꼼짝없이 누워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연세대 농구부 시절 동기였던 문경은 선수, 승일이 가장 좋아하는 형인 유재학 감독, 루게릭병으로 아버지와 사별한 개그맨 김구라, 그리고 승일로 인해 희망을 노래하게 된 가수 타이거 JK... 승일을 만나러 왔던 모든 이들은 승일의 눈동자, 그 애절한 깜박임의 목소리를 들으며 삶이란 것이 원래 그토록 절실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돌아갔다. 축 늘어진 발을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시시때때로 말썽을 일으키는 호흡기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위태로운 승일.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자 했던 궁극의 길을 따라가 본다. #2. 눈으로 쓴 내레이션 “눈꺼풀을 움직이고 눈동자를 굴릴 수 있는 힘만이라도 남겨주십시오. 더는 앗아가지 말아 주세요.” 90년대 대학 농구 황금기를 주도했던 최희암 감독의 연세대 농구팀에서 활약하던 농구 선수 박승일. 그러나 지금, 2미터가 넘는 거인은 1평도 채 되지 않는 병상에 고립되어 환호성 대신 1분에 12번, 기계가 주는 숨소리를 듣고 있다. 고무 찰흙처럼 누군가 매만져 주는 대로 자신의 몸가짐을 제어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그가 자신의 힘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반경은 좌우 40도 안팎, 눈동자가 움직일 수 있는 선 까지 뿐. 지난 11월, 더 이상 안구 마우스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된 승일은 오늘도 눈가리개를 한 채 영원이 되어버린 과거 속에서 고독하게 달리는 경주마 신세. 이런 그가 눈꺼풀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매일같이 글을 쓰고 있었다. 본인의 의사소통 능력은 잃어버렸지만, 글자판을 매개로 여자 친구 김중현의 도움을 받아 채워온 2009년 한 해의 기록. 그것은 가족 및 김중현과의 일상 대화에서부터 최희암, 유재학, 이상범, 문경은, 우지원 등 연세대 농구부 시절의 인연들과 주고받은 이야기, 가수 션과 타이거 JK를 감동시켰던 편지, 그리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불치병 환우로서의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온 글이었다. 승일이 눈짓하는 자음과 모음의 낱낱을 모아 써내려온 김중현의 글씨들은 당시의 절박함 만큼이나 비뚤거리고 투박하다. 그러나 절망의 씨줄과 희망의 날줄을 고르게 짜서 만든 따뜻한 김중현의 글씨는 이제 승일과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삶의 끈’이다. 이렇게 승일이 지난 1년 동안 눈으로 써내려온 글을 토대로 내레이션을 완성했고, 그의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다큐멘터리를 구성했다. 내레이션은 배우 송승헌이 맡아 ‘박승일의 1인칭 목소리’가 되어 다시 한 번 승일과 우리들을 이어줄 것이다. #3. 7년 만의 외출 “가슴으로 50킬로그램의 바벨이 떨어지며 느껴지던 뻐근한 통증. 그러나 통증보다 더 큰 충격.” 50킬로그램의 바벨을 들어 올릴 수 없었을 때,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울리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그것이 서곡이었다. 2002년, 고생스럽던 미국 유학을 마무리 짓고 프로농구 사상 ‘최연소 코치 임용’의 꿈을 이루던 순간, 운명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악스러운 운명의 손아귀는 ‘루게릭병’이라는 불치병의 모습으로 찾아와 승일의 짧은 봄날을 사정없이 집어 삼켰다. 그는 결국 루게릭병 발병 1년여 만에 휠체어를 탔다. 그리고 20개월 뒤 환자용 침대에 누웠다. 그 후로 박승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승일은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고,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살아있되 가혹한 현실을, 가혹하지만 결코 고개 숙이지 않는 자신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세상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만인 앞에 자신의 굳어가는 몸, 그 죽음과의 공존을 낱낱이 공개하며 루게릭병의 실상을 알리고, 환우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루게릭병 전문 요양소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일반인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형성된 사각지대, 그 안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을 향한 세상의 따뜻한 손길을 호소하는 한편, 때때로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도 무의미하고 불행한 하루를 보냈다고 자책하는 나약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승일은 항상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오히려 두 세계의 가치를 모두 끌어안고 누리는 영혼의 코치로 성장했다. 늘 가까이에 있던 하늘조차 지난 7년 동안의 그에겐 한 움큼 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승일은 다시 한 번 넉넉한 하늘을 가슴에 품고 싶다. 루게릭병과 함께 갇혀있던 1평을 벗어나 세상으로 돌아가 더 크게, 더 바삐 신호를 보낼 것이다.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7년 만의 외출이겠지만... “나는 오늘 다시 세상에 신호를 보낸다.” ■ 마치며 지금 승일은 첫 사랑과 열애 중이고, 그의 시간은 멈춰진 듯 보이지만 가슴 벅찬 꿈을 꾸는 청춘으로 만개한 불혹, 바야흐로 인생의 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