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10.01.31 (월)
영 동 선 (嶺東線) 방송날짜 : 2010년 1월 31일 밤 11시 10분 연출 : 박흥로 / 글·구성 : 노영실 ■ 기획의도 # 잊혀 진 철길 위에서 우리네 삶을 만나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가난했던 시절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곳이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험한 고산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의 접근도 외지와의 연락도 힘들었던 곳, 바로 경북 영주에서 강릉까지 영동선이 지나는 구간이다. '쌀은 없어도 석탄 없으면 못산다'고 할 정도로 탄광산업이 호황을 누릴 당시 영동선은 험준한 산악지대를 쉼 없이 오가며 석탄과 함께 그 시절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실어 날랐다. 영동선의 일부 구간은 일제 때 만들어졌지만, 해방 이후 6.25전쟁으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도 정부는 그 험준한 산악지역에 193km에 달하는 철길을 깔았다. 철길 따라 돈이 흘렀고 돈이 흐르는 철로 변마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활기로 들썩거렸다. 삶이 녹록지 않던 그 시절 영동선은 우리네 생명줄이자 번영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너무 빨리 변해 영동선도 세월 따라 잊혀졌다. 이제 더 이상 들어오는 이도 떠나는 이도 없는 시간이 정지된 과거를 달리고 있다. 불과 30년 만에 영동선은 어떤 변화를 겪었던 걸까. 모든 것이 빠르게, 또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 존재 이유마저 희미해져가는 영동선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또, 남겨진 철로 변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을까. '영동선'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영동선의 숨겨진 이야기들과 철길 위 사람들의 가슴시린 이야기를 영동선 193km에 이르는 때 묻지 않은 오지의 겨울 풍경과 함께 한 편의 영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 주요내용 철길 인생 40년, 노기관사의 눈을 통해 본 영동선 193km 영동선의 흥망성쇠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이 있다. 어떨 땐 자신이 기차가 돼 갖은 악천우 속에서도 묵묵히 철길 위를 달려온 영동선의 노기관사다. 철길 인생 40년, 정년 6개월을 앞둔 그는 오늘도 비좁고 딱딱한 의자 위에 앉아 기차를 움직이고 있다. 과연 그의 눈에 비친 영동선은 어떤 모습일까. 영동선이 달려 온 궤적을 따라 노기관사의 눈에 비친 굴곡진 시대의 삶과 눈물 그리고 아직 영동선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묻어둔 이야기를 조명한다. 어느 산골 간이역의 슬픈 사연 구멍가게도 병원도 학교도 없는 강원도 첩첩산중. 이곳에서는 딱 하루 두 번,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 그 문은 다름 아닌 기차! 산골짜기 험준한 지형 탓에 버스 등의 접근이 애초 힘든 이곳에서 기차는 유일의 교통수단이자 사람과 사람,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기차역을 손수 짓고 열차를 세워야 했던 사람들. 기차 없인 가게도 병원도 그리운 이에게 가는 것도 불가능한 사람들. 돈 벌이를 찾아 살기 편안 곳을 찾아 젊은이들은 거의 떠난 그곳에는 몇 안 되는 노인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이들이 외로움을 숙명처럼 여긴 채 살아가고 있다. 문명과 동떨어진 고립된 세상에서 오직 기차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일구어 가고 있을까. 과연 그들에게 기차는 어떤 의미일까. 또 한 번의 겨울을 맞은 산골 오지마을에서 철로 변 남겨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들여다봤다. 거대한 폐허로 전락한 탄광촌, 남겨진 자들의 미래는... 거리 곳곳 문 닫은 상점들과 곧 쓰러질듯 허름한 빈 집이 즐비한 곳. 마치 거대한 폐허를 연상시키는 그곳에 철암이 있다. 20년 전, 석탄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만 해도 '검은 황금'의 풍요로 밤낮 없이 흥청거리던 곳이었다. 빈 방이 없을 정도로 방 칸칸마다 사람들이 터전을 이루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 철암에서는 더 이상 과거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남은 자들의 절망과 쓸쓸함만이 낮게 저류할 뿐이다. 과연 철암이 이토록 급변한 데에는 어떤 연유가 있는 걸까. 이 시대 마지막 남은 탄광촌 철암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전교생 7명, 산골 분교 아이들이 보내온 꿈 어느 추운 겨울날 강원도 산골 대현분교 아이들이 기차그림에 꿈을 실어 보내왔다. 줄어든 학생 수 탓에 초등학교에서 분교로 격하된 이곳에는 전교생 7명의 아이들이 텅 빈 교실을 놀이터 삼아 수업을 받고 있다. 올해는 새로운 입학생도 없어 무엇보다 폐교될 걱정이 크다. 하지만 암울한 마을 분위기와 쓸쓸해 보이는 학교 모습과는 달리 그곳 아이들은 누구보다 맑고 밝았다. 기차에 실어 보낸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 속 담아 둔 꿈은 뭘까. 영동선에 웃고 울던 사람들, 어디로 떠났나? 교통이 불편한 산골 오지 사람들은 과거 어떻게 어물을 먹을 수 있었을까. 30년 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어촌 마을에 들어왔다는 남영희씨. 그녀는 30년 째 기차를 타고 어촌 마을에서 산간 오지까지 어물을 날라 왔다.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다니던 시절에는 기차 한 칸이 그런 상인들로 꽉 찼다고 한다.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속도에 밀려 기차가 점차 사라지고 어획량도 줄어들면서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그 시절 추억과 웃음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 기차를 타는 거의 유일한 어물 상인이 된 영희씨. 먹고 살만해진 지금까지도 기차를 떠나지 못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마지막 간이역을 지키는 사람들 영동선 철길 막다른 곳에 이르면 열차가 갑자기 뒤로 돌아 내려간다. 우리나라에서 영동선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광경, 뒤로 가는 철도 구간 스위치백이다. 하지만 국내 최장 터널이 완공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 영동선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이처럼 하나씩 사라져간 간이역들이 꽤 많다. 간이역 하나가 사라질 때면 주변의 풍경과 내려앉은 삶들도 함께 사라지기에 매번 아쉬움은 더욱 크게 남는다. 간이역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간 간이역이 품어온 삶의 풍경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철길 위에 묻어둔 가슴 시린 사연들 수십 년 험준한 산악지대를 가로질러 탄을 실어 나르고 또 마을 주민들에겐 기꺼이 발이 되어 준 영동선. 그 길목엔 영동선을 움직이는 사람들, 철도원이 늘 함께 했다. 그들은 수십 년 영동선이 존재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비좁고 딱딱한 의자 위에서 33년을 보낸 기관사 종환씨. 철도부부로 일하다 남편의 안타까운 순직을 지켜봐야 했던 남주씨. 그들은 깊은 슬픔과 고된 나날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철길 위를 지키고 있다. 영동선 철길 위를 한결같이 걸어온 철도원들의 삶,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기차, 영동선 193km 193km. 결코 짧지 않은 철길을 달리는 동안 영동선은 시간을 역행한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메주가 구수하게 익어가며 원형 그대로의 자연과 함께 바다의 비릿한 짠 내를 품고 있는 철로 변 마을 풍경들... 남겨진 사람들이 그리움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그곳 영동선이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산골 오지와 어촌 마을의 아련한 옛 정취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하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네 삶의 모습이 읽혀지는 철길 따라 굽기도 하고 꺾이기도 하며 끊어질듯 이어진 영동선 철로 변 삶의 면면들은 마음속 품고 있던 노스탤지어를 꺼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