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11.01.30 (월)
설날특집 - 마지막 잔치 ◈ 방송일시 : 2011년 01월 30일(일) 오후 11시 ◈ 제 작 진 : 연출: 윤 성 만 글/구성: 이 정 민 사람은 누구나 죽고,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떠나보낸다. 삶의 연장선에 죽음이 있듯, 죽음은 삶의 일부이다. 또한 우리가 생(生)을 더욱 가치 있게 느끼는 것은 삶이 가지고 있는 유한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기 획 의 도 죽음마저 축제가 되는 진도, 슬픔을 초월한 웃음의 의미 상례는 사람이 죽은 때로부터 묘지에 장사를 지낼 때까지의 절차로 사례(四禮) 중 가장 복잡하고 엄숙한 의례로 여겨졌다. 한국의 장례의식은 단순히 고인의 삶을 기리며 그들의 혼이 하늘로 편히 올라가기를 바라거나, 망자를 떠나보내는 산 자들이 슬픔을 벗어나려는 의식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인 것이다. 그 문화는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 퍼져 우리 삶속에 녹아 있다. 단지, 형태가 바뀌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풍물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진도에서 죽음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도장례문화는 그 자체가 축제요, 놀이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씻김굿과 밤새도록 망자의 유족들을 위로하는 다시래기는 진도의 전통적인 장례문화이다. '다시 낳다'에 어원이 있다는 다시래기는 소리꾼이 흥을 돋우고 재담꾼들은 웃음을 주며 밤새 유족의 곁을 지켜 유족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상여가 나갈 때도 진도 사람들은 점잖게 요령만 흔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풍물패가 앞장서서 풍물을 울리고, 마을 어귀를 빠져 나가며 상주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질러주기도 하면서 신명나는 가락에 맞춰 춤판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풍습은 흡사 잔치와도 같아, 초상집의 풍경이 다소 생소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진도의 장례풍습은 다른 지역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특이한 것이다.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삶의 일부이자 평안으로 바라보는 의식이 담겨있는 진도의 전통상례문화를 재조명함으로써,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있는 상례문화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 주 요 내 용 2010年 12月 15日, 故 김차단 씨의 별세 소식이 마을에 전해지다. 칠순 잔치도 싫다, 팔순 잔치도 싫다, 내 죽을 때나 잔치해다오. 故 김차단씨가 살던 곳은 진도에서도 배를 타고 한참 들어간 조도의 산행마을. 하지만 그녀가 눈을 감은 곳은 목포의 한 장례식장이였다. 곡소리마저도 잦아든 장례식장은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한편, 집주인이 없는 집에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마을 아낙들은 자기집인양 익숙하게 주방도구들을 찾아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고, 마을 남정네들은 마당에 천막을 설치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구수한 냄새와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주인 없는 집을 가득 메웠다. 칠순잔치도 팔순잔치도 마다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 마을 주민들이 거나하게 한 잔 걸치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잔치. 어매가 살아생전 누렸던 그 어떤 호사보다 더 호사스러웠던 잔치가 열린다. 나의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쓰는 어매가 몇이나 될까. 어매의 모든 생활은 자식들을 향해 있다. 진도의 수많은 섬들만큼이나 촘촘히 텃발을 메운 배추와 대파, 고추. 이 모든 것은 어매의 것이 아니다. 장에 내다팔아 번 돈으로 자식들의 짐을 덜어주고, 실한 것들은 미리 빼놓았다가 자식들이 찾아오면 쥐어준다. 자식들이 찾아오는 명절이 가까워 오면 어머니는 새벽녘부터 자식들 먹일 음식 장만에 분주하다. 그마저도 다 하고 나면 자식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려 마중 나가고, 조금이라도 헤어짐을 늦춰보려 자식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셨다. 하지만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하루 1분의 시간조차 어머니를 향하지 못했다. 벽에 걸린 자식들의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안부의 전화조차 드릴 수 없을 때가 오면 자식들은 어머니의 외사랑을 깨달을까. 낯선 사람의 손에 맡겨진 어머니의 장례식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조문객들은 나의 어머니를 처음 뵙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례식장 어디에도 온전히 어머니만을 위한 조문은 없다. 장례식장에서 파는 수의, 장례식장에서 준 음식, 장례도우미에게 맡겨진 어머니의 장례절차. 과연 어머님은 지금 누구의 술을 받고 있는 것일까. 원형이 남아 있는 진도에서도 현대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열에 아홉. 요새는 그나마 남아 있던 전통장례마저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자식들의 편의에 의해 간소화된 장례절차. 부모님이 익숙한d 곳에서 익숙한 방법으로 눈을 감는 건 이루기 힘든 바램이 돼 버린 지 오래다. 현대의 축소된 장례절차는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지만, 이런 변화로 인해 단순히 절차의 축소만이 아니라 죽은 어머니를 향해 마지막 효를 다하고자 했던 마음까지 사라져 가는 건 아닐까. 통과의례 중 삶의 대미를 장식하는 상례.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삶과 죽음의 의미는 시대가 변해가면서 많은 부분이 퇴색되었다. 편의에 의해 축소된 장례절차 속, 우리가 이별 과정에서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되짚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