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11.05.08 (월)
순자 씨는 용감했다 ● 방송일시: 2011년 5월 8일(일) 밤 11시 ● 연출: 이동협 / 글ㆍ구성: 이진주 ● 조연출: 김성익 / 보조작가: 여다희 ● 기 획 의 도 전북의 한 노인 복지관에는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59명이나 된다. 지금은 촌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60여 년 전만 해도 ‘순자’는 인기 있는(?) 이름이었다. 1948년 태어난 신생아에게 붙여진 이름 중 가장 많았던 것은 ‘순자’로, 한 해 동안 무려 5636명이 ‘순자’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1940-50년대 태어난 ‘순자’ 씨는 11만 명에 이른다.(통계출처:대법원) 어머니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 ‘순자’. 그녀들은 어떤 인생길을 걸어왔을까,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제작진은 전국 각지, 그리고 해외 각국에서 ‘순자’라는 이름을 지닌 21명을 만났다. ‘순자’ 씨는 이름처럼 순하게, 또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맏딸로서, 누군가의 누나로서,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 세상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순자’ 씨는 일제시대를 견뎠고, 한국전쟁을 겪기도 했으며, 보릿고개를 넘으며 우리나라가 가장 가난했던 시절, 자식들을 일궈낸 우리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다. 이 땅의 많은 ‘순자’ 씨는 여전히 자식의 경제란을 함께 걱정하고 보듬고 있으며, 손자에게 가장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주름진 손을 가졌다. 지독한 가난과 역사의 풍파를 억척과 인내로 이겨낸 파란만장한 ‘순자’ 씨들의 삶을 통해 가족을 위해서라면 늘 용감하고 위대했던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국 각지, 그리고 해외 각국의 ‘순자’라는 이름을 지닌 우리 어머니들의 역사 기록이며, 위대한 그녀들을 향한 사모곡(思母哭)이다. ● 주 요 내 용 순할 順에 아들 子, 내 이름은 ‘순자’ "영애도 있고, 미애도 있고, 미자도 있고 예쁜 이름도 많은데 나는 왜 하필 순자일까" - 서울 양재동 김순자(59세) "김순자가 셋, 홍순자, 고순자, 뭐 순자가 천지로 많았지. 이젠 다 어디에 갔는지..." - 제주 제주시 고순자(76세) ‘순자’ 씨는 늘 이름을 말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이름을 말하면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다른 ‘순자’와 헷갈렸으며, 누군가는 前대통령 영부인을 떠올렸다. 한 반에 ‘순자’가 여러 명인 것은 다반사였고, 성까지 똑같아 ‘큰 순자’, ‘작은 순자’로 불리기도 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오랜 세월 가명을 써온 ‘순자’ 씨도 있다. ‘순자’ 씨는 과연 그녀 자신들의 말처럼, 지나치게 흔하고, 또 촌스럽게 들리는 이름 때문에 애초에 특별한 삶을 살 수 없었던 운명이었던 것일까. 미국 텍사스 주, [순자 베이커리] - 순자 씨는 왜 딸 이름까지 ‘순자’라 지었을까?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 시에는 [순자 베이커리]가 있다. 박순자(59세) 씨가 직접 빵과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가게다. 30여 년 전, 7인 밴드 ‘리키스 락커스(rickey's rockers)’의 보컬로 괌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미국인 남편을 만나 두 딸을 낳은 순자 씨. 하지만 남편이 마약을 시작해 어쩔 수 없이 이혼한 순자 씨는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우기 위해 낮에는 항공사 직원으로, 밤에는 웨이트리스로 일해왔다. 순자 씨의 희망은 큰 딸 ‘순자 타이렐(29세)’.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잘했던 딸 ‘순자’는 현재 남자들도 되기 어렵다는 미 해군 해상구조 특수요원이 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일본 도쿄, 96세‘순자’씨의 영원한 사랑 - 제주도에 수십 억 쾌척한 김순자 할머니 이야기 "그 사람은 미남자고 순직하여요. 나 하나밖에 몰라서 다른 여자들은 내다보지도 않았어요" - 일본 도쿄 김순자(96세)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현재 도쿄에 살고 있는 김순자(96세) 씨는 치매로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순자 씨가 잊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20여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故좌수반 씨. 제주도 출신인 두 사람은 죽어서는 반드시 고국에 돌아가기로 약속했고, 남편은 먼저 제주도 땅에 묻혔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온갖 행상과 바느질, 담배 장사, 커피 장사를 해서 재산을 모은 순자 씨는 제주도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수십 억 원의 장학금을 쾌척하며 사랑했던 남편의 이름을 따 장학 재단을 만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묻힌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 큰 순자’, ‘작은 순자’의 두 재봉틀 - 죽어서야 끝나는 엄마라는 이름 초등학교 동창인 두 ‘김순자’ 씨(59세, 서울 양재동, 제주 제주시 거주)는 키는 달랐지만 비슷한 인생길을 걸어왔다. 모두 맏딸이었고, 어린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고등학교 대신 봉제학원을 택했으며, 동생들의 결혼까지 시킨 다음에는 계속 사업에 실패하는 남편 뒷바라지, 또 자식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손자들을 키우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두 ‘순자’ 씨의 두 개의 재봉틀은 지난 40여 년 간 멈출 수 없었다. "애들 장가 보내놓으면 다 끝나는 건 줄 알았더니 또 그게 아니더라고요.엄마라는 이름은요, 내가 죽어서 숨 끊어지면 끝나는 것 같아요" - 서울 양재동 김순자(59세) 29세의 남자 디자이너‘순자’ -‘순자’ 씨를 위하여 강남 클럽 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진작가겸 일러스트레이터 ‘순자’. 훤칠한 외모의 29세 청년은 왜 ‘순자’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자식 농사를 위해 식당으로, 청계천 봉제공장으로, 축사로, 밭으로, 또 바다로 향했던 어머니, 순자 씨들을 위한 사모곡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