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12.10.28 (월)
세 나라의 운명 교향곡 - 착한 성장의 조건 - 방송: 2012년 10월 28일(일) 밤 11시 연출: 허강일, 한재진 / 글·구성: 이규연 내레이션: 김소원 아나운서 [기획의도]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한국사회는 지금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너나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어떤 복지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점차 심화되는 소득양극화 속에 사회갈등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복지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전제아래, 복지와 경제 성장이 선순환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에 우리보다 복지확대 과정을 먼저 경험한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살펴보고, 이들 남유럽 국가들이 왜 경제위기와 복지위기를 맞게 되었는지, 이들과 한국의 닮은꼴은 무엇이고 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위기 속에서도 높은 ‘사회의 질’과 경제주체 간의 합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복지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개혁하여, 위기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어가는 독일의 사회정책과 비교하여 ‘착한 성장 사회’를 지향한다는 목표아래 ‘사회의 질’을 높이면서 건강한 복지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주요내용]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 그리스 “모든 돈을 그들(정부)이 다 먹어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 소도르 야노불로스, 약사, 그리스 아테네 - 그리스 아테네의 한 호텔. 약사 1300여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고성이 오가는 회의장. 그들은 흥분한 상태였다. 재정위기를 핑계로 정부가 약 1년째 약품 보험급여 지급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GDP 대비 국가 부채 161.7%. 긴축재정에 들어간 그리스. 한 때 국민소득 3만 달러를 기록하며 풍족했던 그리스에 위기가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히오스 섬의 우편배달부가 전한 소식. “이 섬에 가짜 시각장애인들이 있다.” 인구 5만명의 섬에 등록된 시각장애인 수는 약 450명. 그러나 조사결과 이들 중 160여 명 만이 진짜 시각장애인이었다. 진짜 보다 많은 가짜 부당연금수령자. 그리스의 연금재정이 새어 나가고 있다. GDP의 25%에 육박하는 높은 지하경제 규모와 만연한 부정부패. 그러나 이를 묵인하는 무능한 정부. 그리스는 지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 일하지 않는 정부 – 이탈리아 “유럽 연합에서 이탈리아로 돈을 지원하는데 지방정부는 이 돈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하는 지도 모릅니다.” - 프란체스코, 무직, 이탈리아 코센차 - 이탈리아 남부에 살고 있는 프란체스코 씨는 밤보초네다. ‘밤보초네’란 독립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독립을 하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사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계속되는 경제위기 속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탈리아 젊은이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다. 프란체스코 씨는 서른 살이 넘었지만 직장을 찾지 못해 부모님께 얹혀살면서 하루 종일 TV나 보며 시간을 보낸다. 3년 전 실직을 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인과 이혼 한 루이지아노 씨 역시 먹고 살길이 막막해 11살 딸과 함께 부모님 집에서 지내고 있다. 무엇이든 일을 하고 싶어 매일 구직신문을 보고 고용센터를 방문해 보지만 답이 없는 현실에 막막하기만 하다. 실업률 10%, 그 중 청년실업 36%. 세계 8대 경제대국이던 이탈리아의 추락. 젊은이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다. 의식주(衣食住).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탈리아 국민들. 뱃속의 아이까지 다섯 식구인 루까 레다 씨 가족은 작년 5월부터 정부소유의 공공주택을 무단 점거한 채 살고 있다. 한 달 월급의 반을 월세로 내고 남은 돈으로는 아이들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도, 전기도 없던 텅 빈 집에서 이제 겨우 물과 전기를 연결해 살고 있지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 항상 불안하기만 하다. 지속되는 경제침체로 이탈리아 거리 곳곳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수많은 실직자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탈리아 국민들. 어두운 터널 안에 갇힌 그들은 어느 곳에서도 희망의 빛을 찾을 수가 없다. 올해 26살인 클라우디아 씨는 미국으로의 이주를 준비 중이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 할 수 없는 현실. 무능한 정부를 탓하며 국가를 믿지 못하는 국민들은 이제 새 희망을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가고 있다. 경제위기..그 밑에 깔린 신뢰의 위기 - ‘불신’ “위기에 빠지느냐,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신뢰와 투명성의 문제이다.” -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로 경제위기에 직면한 남유럽 국가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경제 위기가 사회적 위기, 정치적 위기로 확대되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어 갔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날로 커져 가고 있다. 이에 비해 같은 유로권의 독일은 유럽경제 위기를 잘 이겨내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유로권의 파수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경제위기 속 빛을 발하는 독일 사회의 저력 "미래에는 어느 누구도 사회의 희생 위에서 쉬도록 해서 안 된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마이발트 씨는 쿠텐베르크박물관의 부관장 겸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4개월 전 막내를 출산한 부인은 현재 육아휴직 중인 형편. 대학생 큰 딸부터 이제 갓 태어난 막내까지 6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마이발트 씨는 일과 양육을 병행하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마이발트 씨가 걱정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의 올해 경제 성장률 0.9%. 유로존 전체 경제 성장률 -0.4%와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독일이 위기 속에서 이처럼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과 노인 등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실업자에게 실업 급여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재취업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교육 훈련을 실시하는 것. 이러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이 독일의 성장 동력이다. 13개월 된 아기를 안고 출근하는 워킹맘. 회사의 사내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다.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어 행복했다는 그녀는 이런 시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직장에서 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 아래 지방 정부가 지역 노사 및 NGO와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을 실시하고 보육, 의료, 양로 등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 공동체가 잘 형성되어 있는 독일. 그러나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대화, 합의. 그리고 신뢰 작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독일에도 원전폐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전력 생산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25%. 원전가동 연장 결정을 했던 메르켈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인의 윤리위원회를 결성하여 8주에 걸친 토론과 10시간의 공개토론을 실시했다. 이 과정은 방송을 통해 생중계 되었고, 150만의 독일 국민들이 함께 시청하며 의견과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긴 토론의 결론은 원전폐쇄. 결과가 나오자 원전폐기 검토를 무효화 했던 장본인인 메르켈 총리는 다음날 바로 2022년 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이러한 독일 정치의 리더십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를 신뢰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서로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까? 대화의 시작, 신뢰의 첫 걸음 “대화를 하기 전에는 눈치 보면서 혼란스러웠어요. 그런데 대화를 하고 나니까 서로 평화 적인 쪽으로 가고, 다 같이 즐겁게, 욕심 부리지 않고..“ - 황건웅, 실험 참가자 - 무상보육 논란 등 매번 중구난방 흐지부지 되는 정책에 국민들의 신뢰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뿌리 깊은 불신.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강원도의 한 어촌마을. 무차별포획으로 문어의 수가 줄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어민들과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어민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며 대화를 단절한 지 4년 째. 우리는 이 마을에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그러나 서로의 입장만 주장하며 고성이 오가는 회의장. 해결은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서로가 상대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갈등, 그러나 대화로 인한 작은 변화. 과연 대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우리는 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서로를 모르는 다섯 명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40개의 공. 이중 한 사람 몫으로 가져갈 수 있는 공은 최대 8개이다. 내가 가져간 공과 팀원 모두가 가져가고 난 후 남겨진 공의 합으로 산출되는 나의 이익. 많이 가져가는 것이 이익일까? 많이 남기는 것이 이득일까? 나의 이익과 공공의 이득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의 선택. ‘개인의 이익’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한 가지 규칙을 추가했다. 공을 가져가기 전 서로 간의 대화를 하도록 하는 것. 그 결과 처음에는 개인의 이익을 선택하던 사람들이 대화를 거치며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화와 합의를 통한 서로간의 신뢰 회복.. 작은 노력들로 변화하는 사회.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 그것은 대화를 통해 서로간의 신뢰를 만드는 것이다. 좋은 정치를 할 것이라는 믿음. 내가 낸 세금이 올바른 곳에 쓰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복지의 확대, 경제 발전, 올바른 정치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신뢰에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