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13.06.09 (월)
가면 뒤의 눈물 방송 일시: 2013년 6월 9일(일) 밤 11시 15분 연출: 이광훈 # 미소를 강요하는 사회 스튜어디스 지망생 유지혜 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건강하고 예쁜 유 씨의 유일한 콤플렉스는 입꼬리. 입꼬리가 쳐져있어 사진을 찍으면 항상 우울하게 나온다는 그녀는 이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직 항공사에 지원조차 못 하고 있다. 그녀가 받는 수술은 〈입꼬리 수술〉 입꼬리 주변의 근육을 절개하여 평상시에도 밝게 미소 짓는 인상을 만들어준다는 이 수술을 요즘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많이 받는다고 한다. 병원에서 만난 제과점 판매원 최 00씨도 자신의 인상이 불만이다. 일과가 끝나면 점장으로부터 고객의 불만이 접수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것. 자신은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했는데도 불만이 접수되는 건 아무래도 자신의 처진 입술 탓인 것만 같다고 한다. # 매일 아침 가면을 쓰는 사람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하며 가면을 쓰곤 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감춘 채 하루 종일 미소를 짓고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에도 웃으며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강요된 미소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우리가 만난 지하철 역무원 김 씨는 회사에 출근하기만 하면 목소리가 안 나오는 발성장애를 겪고 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고객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듣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며 생긴 병이다. 콜센터 상담원 박 씨는 수년째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우울증이 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욕을 먹고 놀림을 당하는 이 콜센터 일을 그만둘 용기가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고객의 감정을 돌봐야 하는 〈감정노동〉 종사자들. 그 중 26%가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장기 해고자〉들의 우울증 비율과 비슷한 숫자이다. 직업을 갖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의 정신 상태가 해고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상태와 같을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 생각하는 의자 한 대형 마트에 〈생각하는 의자〉라는 것이 생겼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서비스 평가에서 기준 점수에 미달한 마트 판매원들에게 이 의자에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 유치원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훈육용으로 쓰던 〈생각하는 의자〉가 마트에 나타났다는 말에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분노했고 실제로 이 의자에 앉았던 사람이 바로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취재 결과 이곳과 길 하나 건너에 새로운 대형마트가 신축 중이었고 기존의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비스 교육을 강화하던 중 벌어진 일이었다. 서비스 업계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기업들은 그 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서비스 강화라고 믿고 있다. 고객만족과 고객감동을 넘어 고객졸도 경영까지 외치고 있지만 그 방법이란 건 일선의 감정노동자들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것뿐이다. 그 감정노동을 버티던 사람들은 가슴앓이를 하고, 버티다 못 견디는 사람을 전쟁터에서 내려올 것이다. # 전화를 끊을 권리 서비스업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는 걸까 우리는 한 가지 실험을 통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진상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상황을 주고 상급자의 개입이 있는 상태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태에서 스트레스 지수를 비교해 본 것.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 스트레스 지수는 위험치를 넘게 상승한 반면 상급자가 개입하는 경우 개입 순간부터 실험자의 스트레스 지수는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을 향해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붓는 그 상황을 피할 수만 있다면, 욕설을 하는 전화를 끝까지 응대하지 않고 끊을 수 있는 권리만 가질 수 있다면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기업에게 고객도 〈왕〉이지만 그만큼 희생하는 직원도 〈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