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회 SBS 스페셜
SBS 스페셜
방송일 2013.08.11 (월)
8•15특집 SBS스페셜 젠야(前夜) - 열도의 위험한 밤 방송일시 : 2013년 8월 11일(일) 밤 11시 15분 망언(妄言)! 지금 일본에서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망언들이 그 도를 넘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 정도에서 지금과 같은 예는 없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망언들은 식민지 피해 당사자에 해당하는 우리에게는 정상적인 선린 이웃국가로서의 관계를 포기하는 행위로까지 비친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은 연일 이와 같은 망언들을 전해주고는 있지만, 그 내면의 ‘코드’들을 해독하여 분석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들은 자국 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단순 돌출발언에 불과한가, 아니면 그러한 사고를 정당화시켜주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존재하는 것인가? 젠야(前夜)! 여기서 그 망언들의 ‘코드’ 앞에 서 본다. 무언가 단순하지 않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이 지점에서 제작진은 일본의 진보 지식인들을 만난다. 결론은 한국에서 바라본 위기의식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일본말이 ‘젠야(前夜)’다. 여기서 ‘젠야’는 ‘전쟁전야, 파국전야’를 의미한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 ‘위기’인가? 이 질문에 일부 중도성향의 학자들을 제외하면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모두 위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위기 국면을 파악하는 방향은 전혀 달랐다. 보수층들의 경우, 동일본대지진으로 더욱 심화된 지금의 일본의 위기를 다시없는 ‘기회’로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일본이 다시 변해야 하며, 그 변화의 동력을 과거 역사에서 찾고 있었다. 일본은 과거 다섯 차례 정도의 큰 위기를 겪었는데, 이를 모두 다 잘 극복해왔으며, 이제 다시 애국심으로 뭉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진보 학자들의 지적은 한결 같았다. ‘전후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위기감이었다. 일본 사회 일각에서 드러나는 우경화 현상 자체가 위기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우경화 흐름은 돌이킬 수 없는 현상으로 진행 중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지가네(地金)! 그러면 왜 이러한 우경화 현상이 전후의 민주주의적인 흐름을 뚫고 돌출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본성이 변한 게 아니었으며, 미군정하에 만들어진 전후민주주의와 평화가 오히려 예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변하지 않은 본성이란 건 무엇인가? 메이지유신 이후에 확립된 천황제와 군국주의적인 흐름이 그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지가네(地金)’라고. 지가네(地金)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쇳덩어리(메탈)가 그 하나이며, (숨겨진) 본성이 그 두 번째 의미이다. 일본의 경우, 이 ‘지가네’가 국내외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계속 살아남았는데, 외양을 도금하여 그 모습을 잠깐 달리하는 경우는 있었다는 것이다. 전후민주주의와 평화가 그 도금된 외양이었다는 설명이다. 제작진은 이 진보와 보수, 양쪽의 생각들을 따라가 보았다. 일본역사상 다섯 번의 위기! 거기엔 한반도가 있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한반도를 향해 칼을 빼든 일본열도를 보았다. 때론 휘두르기도 하였다. 그 과거 역사에서 이 ‘지가네’를 발견하였다. 국내외적인 환경에 따라 달라져온 일본이었지만 여전히, 그리고 지금까지도 유지되어온 지가네! 지가네는 진보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메이지시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 한반도와의 관계를 가질 때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들은 이렇게 정리된다. 인위적인 천황제를 만들면서부터 시작된 주변국, 특히 한반도를 ‘속국시’하는 역사왜곡과 거기에 더해진 ‘멸시감’, 한편 그 반대로 한반도 주변의 정세변화에 극히 두려워하는 공포감, 다시 말해 가상적국시하는 ‘적대감’이었다. 이 두 개념은 양립하기 힘든 것이지만 일본은 역대로 상반되는 이러한 ‘감정’들을 유전적으로 이어받아오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중심엔 ‘천황제’가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전혀 변하지 않고 ‘지가네’ 그대로 남아서 메이지시대에 그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한일강제병합은 그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적어도 그 당시의 일본인들에겐 그랬다. 우리만 그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올해 초 도쿄 신오쿠보 거리에서는 연일 혐한 시위가 벌어졌었다. 극히 일부의 일본 우익단체들이 주도한 것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인 멸시감과 적대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런 것들이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돌출되어 나온 것일까? 역시 일본의 현재진행형인 ‘위기’와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일본의 위기 국면에서, 그래서 뿌리를 잃고 흔들리는 젊은 세대의 불만감, 혼란, 정체성 상실 등이 역으로 ‘적(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적은 잠재적인 적으로 대두되는 중국, 북한을 넘어, 오히려 한국을 표적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위기 상황에서 항상 ‘적(敵)’을 찾고, 인위적으로 ‘적(敵)’을 만들고, 거기에 칼을 휘두른 역사적 선례들이 있다. 현재의 일본을, 위기 상황을 그런 면에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성공과 실패,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우리를 비롯한 주변 국제정세가 달라질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일종의 명운을 건 ‘도박’이다. 한결같은 지적들이지만, 아베노믹스의 실패는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그래서 ‘젠야(前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