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회 SBS 스페셜 대기획/특집
SBS 스페셜
방송일 2015.08.15 (일)
광복 70주년 특집 최후의 심판 - 1부 엄마여서 미안해 15살 어린 소녀는 88살 할머니가 되었다. 70년 넘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우리 엄마, 우리 언니, 나의 아내가 ‘위안부’였다면? 엄마의 아픔을 지켜봐야 했던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 방송 사상 최초로 위안부 가족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았다. 엄마의 이름 앞에 주홍글씨처럼 쓰여진 '위안부‘라는 세 글자. 70년 동안 그 무게를 견딜 수밖에 없었던 기족들의 삶.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위안부‘가족의 아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 ‘위안부’ 가족이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지난 3월, 제작진은 ‘위안부’의 가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카메라 앞에서 ‘위안부’라는 세 글자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 70년이 지난 지금, 위안부에 대한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위안부 가족들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하다. 위안부 가족을 카메라에 담기까지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어렵사리 만나서 단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경우도 여러 차례... 그들은 어렵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편에서는 70년 전의 끔찍했던 ‘위안부’역사가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인 ‘위안부’ 가족의 진짜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은 어떤 아픔을 지금까지 겪어 온 것일까. ▶ 엄마 앞에 붙은 세 글자 위 / 안 / 부 “엄마에게 위안부에 대해서... 저는 아무 것도 물어보지 못했어요.” - 김경순 할머니 딸 김미숙 “세상 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위안부 할머니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자식입장으로서 그런 말 듣기 좋지는 않죠.” - 故박옥련 할머니 딸 임00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는 김미숙 씨의 한 마디에는 일본으로 떠나야만했던 그녀 삶의 무게가 묻어났다. 그녀는 사십 대의 젊은 나이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던 엄마의 과거를 물을 수 없었고 엄마는 자식들에게조차 상처를 보여주지 못했다. 세상에 하소연이라도 하면 속이 풀릴까... 하지만 위안부 신고라는 엄마의 용기가 가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시는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임00씨. 세상 사람들은 엄마를 ‘위안부’라고 불렀다. 그녀는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에서 떳떳하게 살지 못했던 엄마의 한 많은 삶을 기억한다. 하지만 돌아가시기까지 엄마를 외면했던 그녀... 이제야 생존해 계신 위안부 ‘엄마’들을 마주할 용기를 낸 자신을 자책한다. ▶ 침묵 끝에 어렵게 꺼낸 할아버지의 한 마디. “아내는 일본군 ‘위안부’입니다.” “기분 좋게 못 살았지요. 남의 남자하고 실컷 뭐하던 것 데려와 사니 기분 좋게 못 살고. 당시 새 장가 가가지고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 故김외한 할머니 남편 송00 11살. 정부등록 위안부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간 故김외한 할머니. 송할아버지가 첫날밤 몸을 안주려는 신부의 비밀을 안 것은 첫 아이를 낳은 후였다. 충격적인 과거를 털어놓는 아내가 미웠다. 나이 오십을 넘기고서야 위안소에서의 참혹한 경험 때문에 후유증을 앓는 아내가 안쓰러워졌다. 이제 치매와 노환으로 의식조차 미미한 할머니는 아직 할아버지와 눈을 맞춘다. 아내를 쓰다듬는 손길엔 젊었을 때 잘해주지 못한 회한이 담겨있다. 늘그막엔 참 금슬이 좋았는데... 굴곡진 할머니의 인생. 아내가 눈을 감기 전 조금이라도 한을 덜었으면 했던 할아버지의 소박한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 70년 동안 아물지 않는 상처 277번째 위안부 신고자 박숙이 할머니(93) “열여섯, 그 때 자궁을 들어낸 줄... 내가 몰랐어요.” - 이수산 할머니 70년 전의 상처가 이수산 할머니의 몸에 오롯이 남아있다. 젊었을 때는 늘 코와 입으로 피를 흘리기도 했다. 처녀의 몸으로 끌려가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 돌아왔다. 만신창이가 된 몸보다 어디 한 군데 하소연할 곳이 없었던 현실이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몇 달의 기다림 끝에 제작진은 이수산 할머니의 70년간 참아왔던 절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챙 넓은 모자와 안경을 챙겼다. “억울하긴 하지만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2012년 여름. 90이 다된 할머니가 경남의 한 주민 센터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정부 등록 위안부 238명 중 마지막 237번째 신고자인 박숙이 할머니. 가슴으로 낳은 자식 셋을 장성하게 키우기까지 행여 남들이 눈치 챌 새라 악몽까지 꼭꼭 숨겨야했다. 전쟁이 끝나고 ‘히로코’ 대신 본명을 찾았지만 송두리 째 날아간 인생은 찾을 수 없었다. 부산에 버려져서 끌려갈 때의 나이만큼이나 타지를 떠돌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을 찾았건만 그 곳의 따가운 시선은 더 견디기 힘들었다. 박숙이 할머니는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뀐 세월을 견디고 나서야 아픔을 얘기할 수 있었다. ▶ 대를 잇는 위안부의 굴레. 엄마는 떳떳하고 싶다. “저희 가족은 그때 이후로 웃음을 잃었어요... 아이들이 너네 할머니는 ‘일본 군인들하고 살다온 창녀다’라고 놀림당하는 게 현실 이예요.” - 故길갑순 할머니 아들 김영만 70년 전의 악몽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 참혹했던 경험을 입 밖에 꺼내기는커녕, 수십 년 간 참고 또 참았는데... ‘위안부’ 엄마들은 평생을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 왔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건만 가족에게 지워진 ‘위안부’의 무게를 덜지 못했다. 강제로 위안소에 끌려갔던 수만의 여성가운데 불과 238명만이 신고의 용기를 내었다. 하지만 해결 된 것은 없고 오히려 가족이 받는 고통은 더 심해졌다. 광복 70주년 특집 에서는 방송 최초로 그동안 차마 세상에 털어놓지 못했던 ’위안부‘의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의 이야기를 어렵게 담았다. 이들에겐 ‘위안부 문제’가 결코 과거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