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방송일 2004.10.16 (일)
월드컵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2002년 겨울. 전주의 한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며 열심히 뛰어다닌 열여섯, 남자아이가 있었다. 1학년 연습생으로 선배들이 경기에 나가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운 아이... 동한이는 붉은 악마의 함성 속에서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었던 고교 축구 선수였다. 동한이는 늘 그렇듯 고된 훈련을 마치고 늦은 오후 합숙소에 돌아왔다. 으슬으슬 몸이 떨렸지만 가벼운 감기려니 하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열과 호흡곤란으로 정신을 잃었고 나흘 뒤,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양팔과 양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고 자기 피부가 아닌 것처럼 너무나 새카맸다. 그리고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동한이의 병은 “전격성(電擊性)수막구균 패혈증“. 수막구균이라는 세균 이 혈액 속에 들어가 번식하면서 생산한 독소에 의해 전신에 감염을 일 으키는 병이다. 동한이는 말초혈관이 다 막히는 합병증이 와서 사지절단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팔다리가 없느니 차라리 죽겠다던 동한이... 하지만 생명이 위태로운 긴박한 상황 속에서 동한이 는 수술실로 향했다. 온 몸의 고통으로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몇 시간 뒤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야만 한다는 절망감만은 뚜렷했다. 그저 모든 걸 체념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든 현실이 었다. ...... 그리고 1년 6개월 후 우리는 동한이를 만났다. 의수족으로 재활훈련 을 한지 6개월. 동한이는 제법 능숙하게 많은 일들을 해냈다. 조금 서툴 긴 했지만 의수로 숟가락을 쥐어 스스로 식사를 하고, 평균 200타의 타자 실력을 자랑했다. 위태로워 보이는 가느다란 두 의족에 의지해 병원복도 를 걷는 일도 어렵지 않게 해냈다. 하지만 동한이는 1주일에 3번 있는 재활치료로 병원에 가는 일 외에는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로 무협소설을 읽거나 재미있는 프로그램만 찾아서 보는 것이 동한이가 하는 유일한 일처럼 보였다. “제가 지금 아무리 뭘 해서 행복해도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나에겐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동한이는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어떻게든 될 거라고, 지금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 했다. 우리는 동한이가 자신의 장애를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 고 동한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고 그 시작을 함께 하고 싶었 다. 또한 갑작스런 장애와 병치레로 동한이만큼 힘들어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도 찾아보기로 했다. 동한이의 제2의 그라운드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