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방송일 2007.04.08 (월)
산골소년의 사랑일기 ◈ 연 출 : 정형면 ◈ 글 , 구성 : 유재은 [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요 ]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도, 북적거리는 사람도 없는 외진 곳, 고요한 아침. 눈을 뜨면, 혹시나 오늘은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까? 발가락 끝부터 있는 힘을 다 줘 보지만, 여전히 제자리... 누워서 지낸 게 몇 해인지 모릅니다. 할머니 말로는 내가 4살 때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라는 병을 진단 받았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는 다리에 자꾸 힘이 빠지고, 자주 넘어지더니 결국, 걷는 건 물론 혼자서 앉아 있지도 못하게 되어 버렸어요. 이렇게 다시 아기가 되어 버린 나를 돌봐주는 건 단 두 분. 할머니와 아빠뿐이에요. 할머니와 아빠는 내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친구도 되어 주지만 나는 늘 외로워요. 열세 살, 아프지만 않았다면 초등학교 6학년 형아로 학교에 다니고 있겠지만, 나는 한 번도 학교에 가 본적이 없어요. 한글도 공부하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재미있는 노래도 부르고 싶은데...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왜 이리도 작고, 어두운 걸까요? [ 먹통처럼 변한 가슴, 오늘도 눈물을 삼킵니다. ] 우리 아기는 늙은 내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예쁘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대 달라, 손을 대 달라 보챕니다. 안고 싶고, 사랑한다며 뽀뽀를 해 주고 싶어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아기. 나를 애타게 부르는 것도 모르고 밖에서 일을 하다가 우리 아기 눈에 눈물이 나게 했던 적도 있었고, 약에 취해 잠들어 개미가 우리 아기 볼을 간질이고 있는 것을 몰라 당황하게 했던 적도 있었지요. 임금이 되어서 할머니 아픈 곳을 다 낫게 해 줄 거라는 우리 아기 승훈이... 엄마도 없고, 아빠도 아픈데... 나까지 세상을 떠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내 가슴은 하루에도 몇 번 씩 먹통처럼 검게 변합니다. [ 예쁜 우리 아기,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 우리 아기, 예쁜 우리 아기 승훈이... 우리 아기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더라면 이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텐데... 미안함 마음 뒤에, 그래도 아빠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우리 아기는 내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열심히 주무르면 혹시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루에도 몇 시간씩 다리를 주물러 보고, 밤늦도록 약초 책도 읽어보지만 승훈이는 자꾸 나를 밀쳐내기만 합니다.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꽃이 핀다는 것, 작은 샘물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것..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 싶은 게 많은데... 모두들 나을 수 없을 것이라 하지만 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부족하고 서툴지만, 나는 누구보다 승훈이를 사랑하는 아빠니까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승훈이와 할머니, 그리고 아빠가 세상 안에서 지금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동행이 되어 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