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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방송일 2008.03.09 (일)
206회 - 길 위에서

◈ 방송일자 : 2008년 3월 9일
◈ 연	출  : 서현호
◈ 글 , 구성 : 조예촌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그림자]
 “영보야, 엄마야...엄마 한 번만 해봐...”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엄마는 침대에 누워있는 영보를 보며 하염없이 말을 건다. 영보는 묵묵부답. 엄마는 그렇게 말을 걸다가 숨죽여 울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두 남매 모두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 세포가 잘 생성되지 않아 생기는 ‘멜라스 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지만 영보는 영은이보다 상태가 좋았고, 작은 경기나 탈진은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의식없이 누워 있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담당 의사는 병의 진행이 시작되는 것 같다며, 이렇게 한 번씩 크게 경기를 하면 뇌손상을 입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퇴행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엄마의 속은 타 들어가는데,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보는 쉽사리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엄마가 챙겨온 영보의 수학문제집도, 동화책도 침대 옆에 주인을 잃은 채로 놓여있었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
 정월 대보름. 경북 영주의 작은 막창구이 집 가겟방에선 영은이가 또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한 손으로 영은이 어깨를 누르며 억지로 약을 먹이고 나머지 손으로는 영보에게 약을 먹으라고 손짓한다. 그러자 금새 영보도 따라서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이 약이 어른들이 먹기에도 굉장히 힘든, 역겨운 그런 약이래요.”
겨우겨우 약을 삼킨 후에도 한참동안 영은이는 그렇게 울고 있었다. 
그런 영은이를 달래다 잠시 식당일을 돕고 방으로 들어온 엄마는 축 늘어진 영은이를 보고 서둘러 채비를 한다. 눈에 초점이 없어 응급실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늦은 시간, 영은이를 업은 채로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며 엄마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속없이 환한 보름달만이 엄마의 길을 비추고 있었다. 
“이따가 애들하고 같이 보름달 보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소원 빌려고 했는데...”
엄마의 소박한 바람도 아이들의 예고 없는 병 앞에서는 사치가 될 뿐이다.


[엄마의 일기 -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걷다]
 엄마의 하루는 아이들이 잠든 자정이 넘어서 다시 시작된다. 아이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종일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 번거롭더라도 이렇게 해놔야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허둥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걸러 하루씩 두 아이가 번갈아 응급실을 찾으니 엄마도 이젠 준비해 놔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정리가 끝나면 엄마는 또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새벽까지 장사를 하는 아빠는 이르면 새벽 세시, 늦으면 여섯시에 들어올 때도 많아서 아이들 돌보는 것은 거의 엄마의 몫이다. 엄마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아이들을 보며 힘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아이들은 또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하다. 

영은이네 가족이 오랫동안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외로운 그 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동행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