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방송일 2008.05.11 (일)
213회- ‘향미의 봄날’ ◈ 방송일자 : 2008년 5월 11일 방송 ◈ 연 출 : 서주환 ◈ 글 / 구성 : 조예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이름, 할머니] 바닷가가 넓게 펼쳐진 거제시의 달동네. 학교에서 막 돌아온 재균이가 텅 빈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재균이는 올해로 열한 살. 돌아서면 배가 고플 나이다. 할머니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계신다. 그런 탓에 무릎을 굽히지 못한 채로 두 다리를 쭉 펴고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 담는다. 벌써 10년,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데 오래전 집을 나간 엄마, 아빠는 여전히 소식이 없다. 형편은 어렵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아이들은 착하고 밝게 자라주었다. 3남매 중 둘째인 향미는 올해로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창피할 법도 한 사춘기 소녀다. 혹여 할머니가 함께 나서는 게 창피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향미는 ‘내 할매인데 뭐시 창피스럽나’라고 큰 소리를 친다. 어릴 때 넘어져 울다가도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를 찾았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크고 소중한 존재다.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지만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는 거동조차 힘들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셨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밝게 자라온 3남매의 작은 마음에도 걱정이 생겼다. [쉴 새 없이 바쁜 향미의 하루] “향미야, 향미야.” 향미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있을 시간이 없다. 할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해야 하고, 당뇨가 있는 할아버지께 때가 되면 인슐린 주사를 놓아드려야 한다.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예외는 없다. 눈과 무릎이 편찮으신 할머니가 부산에 있는 병원에 갈 때면 향미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다. 수업을 받고 있어도 할아버지의 혈당이 높아 위험수위에 다다르면 바로 뛰어가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한다. 그러니 향미의 몸은 온종일 긴장을 풀 시간이 없다. 그런데, 언뜻 봐서는 건강하고 야무진 손녀인 향미도 사실은 모야모야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아픈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급한 대로 집안의 일과 수발을 해야 한다. 자신의 병을 걱정하는 할머니께 할머니부터 먼저 낫고 그 다음에 자신의 병을 고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창 꿈을 꿀 나이지만 집안 형편을 잘 아는 향미는 가고 싶은 대학을 적는 곳에 미용사라고 적어 넣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미용기술을 배워 봉사하고 싶다는 향미는 겨우 열여섯 살. 아직은 어른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다. [깜박이 향미, 병원에 가다] 동생 재균이가 또 향미를 놀린다. 셈을 하는데 향미가 또 틀린 것이다. 아주 쉬운 계산을 하는 일도 향미는 5살 어린 동생보다 오래 걸린다. 뇌혈관이 막히는 모야모야병의 증상 중 하나다. “깜박이에요, 깜박이” 재균이가 말한다. 재균이의 표현대로 ‘깜박이’ 향미는 오랫동안 병원을 가보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찾은 병원에서는 서둘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수술을 받고나면 건강한 모습으로 뛰어 놀 수 있을지, 이제 향미는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서울로 가는 차에 오른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향미네 가족, 그 작은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이 동행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