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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회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일 2007.03.03 (일)
제목 : 잊혀진 60년,현해탄을 건너온 아내들
방송일 : 2007년 3월 3일 (토) 밤 11:05
연 출 : 강범석  /  작  가 : 김은희 

▶   '일본인 처'란 누구인가?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인과 결혼해 살다가 광복과 함께 한국에 정주하게 된 일본여자들이   있다. 이들을 통칭해 '일본인 처'라 부른다. 이   일본인 처들은 한국 남자가 좋아서 결혼했지만, 광복 이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가해자인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해 결혼생활을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었고, 친정인   일본에서는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왔지만 남편의 본처가 있는 경우도 있었고, 집안의 반대로 호적에 올리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하루아침에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이방인이 되어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되었고, 이제   60여년이 흘렀다. 비록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삶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60년을   넘게 살아온 땅이 한국이고 자신의 자식들이 살아가야할 곳도 한국이기 때문에   남은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길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국적문제로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되지 못하는 실정이고, 지원도 거의 없는 등 사회안전망의   그늘에 있다.  이들은   이렇게 한국과 일본 그 어느 나라에서도 따뜻하게 받아주지 않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쓸쓸하게 늙어가고 있다. 
  
  ▶   한국사회에서 일본인 처로 산다는 것의 의미
  
  10살   때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이케다 교코 할머니는 15살 되던 해 한국남자와 결혼했지만   6.25전쟁으로 남편과 생이별을 했다. 이후   남편 잃은 홀몸으로 식모살이를 하며 어렵게 두 아들을 키웠지만, 큰 아들은  시설에   맡겨지고 막내아들도 세상을 떠나보내는 아픔마저 겪게 된다. 아는   사람 한명 없는 한국에서 홀로 살아가기에도 너무 벅찼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일본인인 자신을 바라보는 차별의 시선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충남   예산의 후나마 하루나 할머니는 일본에서 한국남자와 결혼한 후 두 아이를 낳았다.   광복 후 한국으로 와보니 남편에게 본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결혼을   반대했던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자식들을 전처의   호적으로 올리고 온갖 멸시와 학대를 견디며 아이들을 키워냈지만 여전히 생활은   힘겹기만 하다. 할머니는 이제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고 더   늦기 전에 한국국적을 갖는 것이 소원이라며 귀화신청을 했지만, 자격요건이 맞지   않아 애타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에   사는 아카타 할머니는 한국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2살 난 아들을 둔 채 집을   나갔다. 남편 하나만을 믿고 현해탄을 건넜지만 남편의 폭력과 외도는 하루하루   더욱 심해져만 갔고, 그대로 살다간 둘 다 죽을 것만 같았던 할머니는 아들을   두고 야반도주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후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외로운 인생을   살면서도 아들 생각을 단 하루도 안 한 적이 없다는 할머니. 60년이   지난 지금 그리운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   왜 지금 일본인 처에 주목 하는가?
  
  일제시대의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아직도 반일 감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가해국 출신의 소수자 인권까지 다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문제 등 식민지 시절의   숱한 피해 사례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60만 재일교포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과 역사 왜곡 문제가 대일 외교의 현안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도 보듯   우리의 그릇된 인권의식 중 지나칠 수 없는 게 '자민족 중심주의'다. 
  
  일본인   처 문제는 왜곡된 민족주의의 사례로는 매우 상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우리의   강한 자민족주의의 얼굴을 되비춰주는 거울이다. 꽃다운   나이에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들 인본인 처들은 이제 여든을 넘겨 여생을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다. 이들의 생전에 그 고통의 매듭을 풀 수 있을지, 이   할머니들이 지나온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3.1절을 맞아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