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회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일 2007.12.08 (일)
○ 제 목 : 나는 유서를 쓰지 않았다!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진실 ○ 방송일시 : 2007년 12월 8일 (토) 밤 10시55분 ** “유서대필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1991년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백골단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노태우 정권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르고, 뒤이어 5월 8일 전민련의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 옥상에서 유서 2매를 남기고 또 다시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연이은 분신 사태에 대해 그 배후에 분신을 선동하는 세력이 있음을 공공연하게 떠들어대고, 검찰은 분신의 배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결정한다. 그런데 검찰은 느닷없이 김기설의 전민련 동료 강기훈을 유서대필자로 지목하여 수사를 진행하였고, 유서와 강기훈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국립과학 수사연구소의 감정을 근거로 하여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다.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강기훈은 “피고인으로서가 아니라 검찰의 부도덕함과 타락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법정에 서겠다.”면서 검찰에 출두했지만 1심과 2심을 거쳐서 1992년 7월 24일 대법원에서 자살방조 등의 혐의로 유죄가 인정,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 16년 만에 밝혀진 진실, 그리고...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07년 11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1991년 발생한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검찰로부터 유서 원본을 넘겨받아 국립과학 수사연구소와 국내 7개 사설 필적감정기관에 필적 재감정을 의뢰한 결과, 유서가 ‘죽은 김기설씨의 필적이 맞다.’는 감정결과를 받은 것이다. 91년 재판 당시 유일한 물적 증거였던 국과수의 필적감정결과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감정 결과가 국과수및 7개 사설 감정기관의 일치된 판단으로 내려진 것이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국과수 감정인들은 공동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공동심의를 한 것처럼 감정서에 허위기재했던 것으로 조사됐고, 유서의 필적과 관련해 김기설씨의 가족도 과거에 진술했던 것은 잘못된 것이며 유서의 필적은 고 김기설씨의 필적이 맞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국가는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사건 발생 16년 만에 비로소 진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김씨의 분신을 방조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던 강기훈씨는 16년이 지나서야 누명을 벗고 1차적인 명예회복을 하게 되었다. ** 단순한 감정실수인가? 의도적 조작인가?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감정을 의뢰했던 검사와 필적감정을 맡은 국과수직원이 ‘어떤 감정을 원하냐’는 내용의 전화통화를 했던 사실과 검사와 검찰직원이 직접 국과수를 방문했던 사실이 이미 이전의 조사에서 확인됐다. 게다가 당시 유죄의 결정적 증거로 쓰인 감정결과를 내놓은 전 국과수 문서담당실장은 다른 사건과 관련해 허위감정을 해주고 돈을 받은 혐의가 들통나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또한 분신 사건 당일 작성된 것으로 돼있는 압수조서에 이미 강기훈씨가 자살방조 피의자로 특정돼 있는 등 검찰이 발생 당일부터 미리 결론을 내놓고 이에 맞춰 무죄증거를 배척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중립성과 객관성이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 중론이었으나 법원은 검찰 수사내용을 받아들여 징역3년을 선고한 것이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노태우 정권의 갖가지 비리사건들이 드러나며 국민들의 민주화요구가 최대로 분출되었던 격동의 시기에 발생했던 사건이다. 정권에 항의하는 분신이 잇따르자 노태우 정권은 이 시기의 민주화운동을 억압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고위당정회의와 치안관계 장관회의 등을 통해 분신의 배후를 수사할 것을 결정하게 되고, 이 사건을 위기국면을 헤쳐 나갈 돌파구로 삼았다. 결국 강기훈씨는 동료의 생명까지도 혁명의 도구로 사용하는 천인공노할 범죄자가 되었고, 민주화 세력의 도덕성에도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결국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같은 필적을 두고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게 된 배경을 밝혀내야 한다. 공권력이 어디까지 개입했고 어떻게 조작이 이루어졌는지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 ** 진실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유서는 강기훈이 아닌 김기설에 의해 쓰여 졌다.’ 이 단순한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16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들이 모두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강기훈씨는 현재 재심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차원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각 기관별 과거사위원회나 진실화해위원회 등의 재심권고 결정을 받은 사건 중 재심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사건은 극히 일부에 머무르고 있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재심 사유가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에 재심으로까지 이어지기가 힘든 것이다. 이런 까다로운 재심절차 때문에 과거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한 억울한 피해자들은 오늘도 고통 속에서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진실을 밝혀야하는 이유는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또 다시 그 역사가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직도 많은 간첩사건과 조작사건들이 재조명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