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회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일 2007.12.15 (일)
○ 제 목 : 화재 미스터리 - 잿더미 속의 진실게임 ○ 방송일시 : 2007년 12월15일(토) 밤 11시 5분 ○ 연 출 : 정 철 원 / 작 가 : 박 진 아 “나는 불을 지르지 않았다.” 지난 2003년, 광주의 한 모자가게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불은 지하와 1층 가게를 모두 태우고 4시간 만에 가까스로 진화되었다. 32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가게가 하루아침에 불에 타자 망연자실했다는 가게 주인 윤 모씨. 그런데 화재원인을 조사하던 경찰은 사고 후 두 달 뒤, 가게주인 윤 모씨를 방화범으로 지목하고 긴급 체포했다. 윤 씨의 모자가게가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고, 화재 당시 윤 씨의 행적이 수상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재 현장의 특이점이 방화의 증거로 제시되었다. 불이 처음 난 곳(발화부)이 지하와 1층 두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보통 사고로 일어나는 화재는 사고가 일어난 한 지점에서 주변으로 불이 번지는 흔적을 남기지만, 방화로 인한 화재 현장에서는 꼭 불을 내기 위해 여러 군데에 불을 지르는 방화범들의 심리 때문에 여러 군데에 발화점이 나타나며 이것이 방화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가게 주인 윤 모 씨는 지하에서 처음 불이 난 것 같고 지하와 1층 사이에 커다란 환기구가 있는데, 거기로 불이 번진 것 같다며 결백을 주장했고, 한 화재전문가의 모의실험을 법원에 제출, 3년여간의 재판 끝에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부천에서 조그만 장갑 공장을 운영하다가 화재를 겪었던 최 모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장갑 기계가 있는 지하에서 불이 났던 최 씨의 경우, 화재 현장에서 6대의 기계에서 각각 불이 난 것 같은 흔적이 보였고, 역시 보험에 들어 있었다는 정황으로 방화범 용의자로 1년 넘게 조사를 받았다. 최 씨 역시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어떻게 불이 났는지를 설명 못해 방화범으로 몰렸다며 화재 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한다. 과연 불은 어떻게 난 것일까? 잿더미 속의 진실 게임, 6개 발화점의 미스터리! 최 씨의 장갑 공장 화재 사건의 당시 사진을 검토하고 장갑공장을 직접 방문해 본 한 화재조사 전문가는 공장 안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장갑제조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실 먼지들이 모든 기계들과 기계들을 이어주는 전선에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 먼지는 특성상 불이 나면 불이 번지는 통로는 되지만 빨리 타고 없어지기 때문에 그 흔적이 남지 않는다. 혹시 6개의 기계에서 각각 불이 난 것처럼 보인 것이 혹시 방화가 아니라 기계들 사이에 쌓여있던 먼지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불이 번지는 통로가 되어 생겼던 것은 아닐까? 제작진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 가능성을 시험해 보았다. 화재 원인 조사는 흔히 모래밭에서 바늘 줍는 것에 비유한다. 사체부검이나 교통사고처럼 조사할 대상이 정해져 있는 사건들과는 달리, 화재 현장은 보통 범위가 넓고, 불을 끄는 과정에서 발화의 원인이었던 증거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러다 보니 국과수 화재연구실에 화재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여 의뢰되는 증거물 중 직접 화인으로 판명되는 비율은 40%를 채 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게다가 우리 주변에 인화성 석유화학제품이 점점 늘어나고 새로운 가전제품 등 화재의 위험을 안고 있는 요인들은 점점 복잡해져가고 있는 추세라 정확한 화재 원인들 밝히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퍼즐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과학적 지식과 수사경험을 모두 갖춘 화재조사 전문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5명 남짓한 국과수 화재조사요원들이 해마다 2000여건의 고난이도 화재사건을 다루고 있다. 화재사고를 1차적으로 담당하는 일선 소방서의 화재조사관들도 한 해 수 만 건에 달하는 과도한 업무량과 자체 내에 전문 감정기관이 없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원인조사를 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수많은 수수께끼들이 내재해 있는 화재현장. 과도한 업무 때문이든, 전문적인 역량 부족이든 만에 하나라도 잘못된 원인을 찾는다면, 화재피해자들은 화재로 인한 고통 외에도, 책임 소재 분쟁 등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확한 화재 원인 조사,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공공서비스다. 최근 국과수에서는 원인 미상의 자동차 화재 사건들을 조사하다가, 한 가지 특이한 공통점을 가진 사건들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외관상 방화의 흔적으로 보이거나 아니면 다른 원인을 알 수 없어 의뢰되는 자동차 화재 사건들 중, 차 밑바닥 배기 계통 부분이 발화점으로 나타난 경우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화재 전 굉음이 들렸고, 피해자가 음주 후 차에서 자고 있었다는 공통된 정황들이 보고되었다. 조사요원들은 재연실험을 통해 운전자가 시동을 걸어놓고 자다가 잠결에 가속페달을 일정시간 밟게 되면 배기구 부분에서 불연소가스들이 모여 차량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같은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차량운전자들이 몰랐던 사실이고 자동차회사들도 그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마다 수십 건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집중적인 연구, 실험은 지금처럼 대부분의 화재사건들을 국과수가 전담하는 구조 속에서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특히 형사사건이 아닌 민사적인 책임소재문제들의 경우 경찰이나 국과수가 개입하기 어렵고, 이런 경우 화재피해자들은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월 일선 소방서과 경찰의 화재조사관들을 긴장시킨 헌재판결이 내려졌다. 주변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었어도 중대한 과실 때문에 일어난 화재가 아니라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도록 한 현재의 ‘실화책임법’이 헌법 불일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앞으로는 화재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않으면 피해보상과 관련된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예측한다. 화재진압 못지않게 중요한 화재원인조사, 화재피해자들이 두 번 울지 않도록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모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