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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회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일 2008.06.14 (일)
제목 : 6월 항쟁 특집 - "촛불, 대한민국에 소통을 말하다"
방송 : 2008년 6월 14일 (토) 밤 11:15
      
무시당한 10대의 촛불 - 잘 못 끼워진 첫 단추  
   아무도 몰랐다. 수십만의 촛불이 한 달 넘게 대한민국을 밝히게 될 줄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유모차를 끈 엄마가, 온 가족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에게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정부도. 시민들도. 적어도 처음엔. 

   처음은 어떻게 시작되었던가? 촛불집회를 처음 이끌었던 10대들의 목소리는 발랄하지만 명쾌했다.
   ‘미친소, 너나 처드삼’  
   정부와 경찰은 ‘배후’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했지만, 학생들의 우려까지 수사할 수는 없었다.
   여고 1학년 태희의 다이어리엔 수업시간표 대신 쇠고기메뉴가 나오는 급식 일정이 표시되어 있다. ‘쇠고기 무국, 갈비탕...’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쇠고기 메뉴들이 나오는 날이면 태희는 급식을 먹지 않고 버린다. 호주산이나 국내산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설령 미국산이 아니라고 해도 음식가지고 속이는 어른들을 그동안 많이 봐왔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음악을 전공하는 연우(여, 고1)도 광우병이 걱정돼 며칠 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평소 정치나 사회문제에 큰 관심도 없었고 광우병이 뭔지도 몰랐다는 연우.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정부의 설명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왜 영문번역도 제대로 못했는지, 왜 일본처럼 엄격한 기준으로 협상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10대의 뒤에 배후가 있다고 얘기하는 점이었다. 연우는 국회의원들에게 수백 통이 넘는 이메일 편지를 보냈다. ‘급식을 먹는 고등학생으로서 자신의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얘기했다. 그러나 수백 통의 메일 중 답장을 받은 것은 단 두 통. 그러나 그 답장은 오히려 연우를 더 절망하게 했다. 그 국회의원의 답장엔 무슨 내용이 있었을까?   
         
촛불, 광장에서 모이고 인터넷을 통해 퍼지다
   “학생들이 나설 문제가 아니라고만 얘기하시는데, 어른들이 먼저 나섰다면 왜 우리가 굳이 이러겠어요?” 
   촛불 집회 신고를 했다가 수업 중 경찰조사를 받은 심 모(고3)군의 항변이다. 공부하기도 바쁘고 하기 싫은 건 누가 뭐래도 하기 싫어한다고 스스로도 말하는 10대 학생들이, 얼마나 걱정됐으면 집회를 했겠느냐는 말에 어른들도 점차 촛불을 들고 집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촛불은 광장에서 모이고,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인터넷 대통령 탄핵청원이 백만명을 넘고 정부비판 UCC가 점점 조회 수를 올렸다. 정부가 미국소가 안전하다고 광고를 내자, 인터넷 패션 카페, 화장품 카페, 메이저리그 야구 카페, 디카 사진 카페 등 ‘취미 동호회’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재협상을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촛불시위가 점차 확산되자 대통령이 소통부족을 사과했지만, 뒤이은 장관고시 발표로 촛불은 더욱 격화되었다. 촛불은 광장에서 거리로 나왔다. 
  
웹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촛불을 지키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대학생 나동혁(25세)씨.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집에 돌아와 새벽에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경찰이 물대포를 동원하고 시위대 일부가 부상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곧장 노트북과 소형카메라를 들고 시위현장으로 달려갔다. 
   촛불시위의 ‘히트상품(?)’이 된 ‘1인 미디어 인터넷 생중계’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기성언론의 보도만으로는 성에 안 차던 시민들은 휴대폰과 무선 인터넷 카메라로 시위 현장을 직접 보도하고 생중계했다. 거리에 직접 나오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도 이들이 전달하는 ‘보도내용’을 보는 방식으로 ‘온라인 집회’에 참여해서 댓글과 토론으로 여론을 형성했다.
   정부가 촛불시위에 쓰이는 양초의 제공자를 찾고 있는 동안, 시민들은 휴대폰과 디카로 경찰의 과잉진압과 시위현장을 찍으면서, 자신이 단순한 자발적 참여자를 넘어서, 스스로 기자,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군화발 진압 동영상’이 공개된 후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지만, 집회현장이 비폭력 평화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촛불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쇠파이프보다 휴대폰이 더 강력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촛불의 외침, 누가 대답할 것인가? 
   초등학생 두 아들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나온 하미정 씨(39). 초등학생이 광우병이 무서워 급식을 안 먹고 시위에 나오고 싶어 하는 현실이 미안하고 안쓰럽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하 씨는 여고시절을 시위와 함께 보냈다. 그녀의 모교는 명동성당 옆 계성여고. 87년 6월 항쟁 당시 경찰에 봉쇄되어 명동성당에 농성중이던 대학생,시민들에게 도시락과 옷가지를 몰래 건네줬던 기억이 있다. 귓속말 소문으로 세상얘기를 듣던 시기였지만, 무언가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디 단체, 어디 소속도 아닌, 자신들의 아이에게 촛불을 쥐어주고, 자신이 옮다고 생각하는 점을 당당히 얘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아이들과 나온 엄마, 아빠들은 이번 촛불집회의 주된 참여자들 중 하나다. 이들의 외침에 누가 대답할 것인가?
   6월 항쟁 21주년을 맞아, 촛불 집회에서 보여준 현재 우리 시민사회의 역량에 대한 진단과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