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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회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일 2008.11.15 (일)
제목 :  청학동 스캔들 
방송 : 2008년 11월 15일(토) 밤 11:15
               
훈장님의 스캔들
  지난 10월 2일 지방 일간지 사회면 한쪽에는 지리산에 조용히 자리한 마을 청학동에 관련한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내용은 청학동에서 여학생들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 놀라운 사실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 다름 아닌 전통 예법과 유학을 가르친다는 서당, 또한 성추행 추문에 휩싸인 사람이 훈장님이라는 사실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서당은 매스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될 정도로 유명 서당이었고, 훈장 역시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며 왕성하게 활동해 온 명사였다. 성추행 사건은 청학동 서당 관계자들과 마을 주민은 물론 학교, 교육청, 군청에까지 알려졌지만, 사건이 발생한지 2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무런 조치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더욱이 사건이 알려진 후 청학동을 떠나 있던 훈장님은 다시 서당으로 돌아와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훈장님의 진실은 무엇이며 이 사건은 왜 밝혀지지 못한 것일까?

법정에 선 훈장님
  지난 4일, 진주지방법원에 하얀색 전통 한복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이 사람은 바로  청학동 한 서당의 훈장님. 훈장님은 서당 교육을 받으러 온 학생이 도중에 다친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혐의로 형사재판 중이다. 사건의 피해자는 방학을 이용해 서당 캠프에 참가했던 초등학생 준석이(가명)다. 준석이는 지난해 1월, 서당에서 생활하던 중 함께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의 장난으로 왼쪽 팔꿈치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문제는 사고가 일어난 후 서당이 일을 처리한 방식이었다. 준석이 어머니 김수진(가명)씨는 사고 발생 후 아이가 많이 아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병원에 가지 않은 것, 심지어 아이에게 엄마와 통화할 때도 다쳤다는 말을 못하게 한 서당의 사고 대처 방식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제의 서당에서는 준석이가 계속 통증을 호소하자, 사고 후 3일 후에야 병원에 데려 갔지만 결국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준석이 어머니가 분노하는 이유는 서당의 안일한 대처때문에 치료 받을 시기를 놓쳐 준석이의 팔이 현재 12도 정도 휘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그녀가 서당에 책임 문제를 제기하자 서당에서는 오히려 명예훼손이라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의와 도덕을 강조한다는 서당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대처한 것일까?

사장님인가, 훈장님인가?
  청학동 주민 이민수(가명)씨는 누구나 간단하게 서당을 세울 수 있는 지금, 학력이나 한문 실력이 의심될 뿐만 아니라 교육 철학이 없는 훈장들이 세우는 서당이 늘고 있다고 걱정한다. 유교 사상과 우리 민족 전통의 예를 가르쳐 인간성 회복을 내세우는 서당의 교육 이념은 그저 광고일 뿐 서당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을 상대로 돈 버는 사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당에서 훈장을 도와 교육하는 훈사로 수년간 일해 온 서상욱(가명)씨는  종종 있던 언론 보도 때문에 시설은 개선된 점이 많지만 서당의 교육 프로그램은 아직도 수준 이하라고 지적한다. 한자와 인성 교육은 미미하고 거의 레크레이션 수준의 전통 놀이 체험이 전부라는 것이다. 5년째 서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성동(가명) 훈장은 서당이 교육이 아닌 사업이 되어가면서 서당 관계자들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교육의 이상향이라는 청학동의 이미지에 흠집이 날까봐 서당내의 사건과 문제를 감추기 급급하다고 고백한다. 청학동 훈장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청학동의 두 얼굴
  지리산 삼신봉의 동쪽 기슭 해발 800m에 자리 잡은 청학동은 예로부터 속세를 떠나 도를 닦고자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명당으로 알려졌고, 현대에는 우리의 전통과 풍습을 지키며 모여 살던 댕기머리 동자들의 모습이 발견되면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90년대 들어서는 유교적 교육 이념을 내세우는 청학동 훈장들과 서당 교육이 언론에 소개 되면서 서당촌으로 명성을 얻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을 살린 서당 교육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인정받아 받아 활성화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모습도 존재한다.
  현재, 청학동에는 200명 이상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서당 네다섯 곳을 포함해 20여개의 서당이 존재한다. 청학동 서당에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방학을 이용해 2달 내의 짧은 과정을 체험하러 오는 단기학생과 6개월 이상, 길게는 수년간 서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기학생이 그것이다. 장기학생들은 서당에 머물면서 하동군 지역의 공립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청학동에 위치한 묵계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의 반 정도가 서당에서 학교를 다니는 장기학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학동에서는 종종 서당학생들과  주민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학생을 맡고 있는 서당과 학교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평화롭던 청학동에 오히려 서당으로 인해 소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이상향인가?
  문제는 이렇게 서당이 늘어나고, 서당 교육이 제도권 교육에 대한 새로운 교육으로 인식되면서 변칙적인 형태의 교육까지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 서당 설립과 운영에 관계된 법률이 없고, 서당의 교육 프로그램을 점검 할 기관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의 권익은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까? 법이 없다는 이유로 교육청을 비롯한 지자체 등 관계당국의 관심 밖에 놓여있는 서당은 전적으로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학식과 도덕성에만 의존해야하는 상황이다. 방학이면 전국에서 모여드는 학생들을 위해 캠프를 실시하고, 평소에는 도시학교를 떠나 산촌 유학을 온 학생들을 위해 장기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청학동 서당촌은 과연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훈장님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청학동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통해, 언론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힘입어 발전한 청학동 서당촌의 교육 현실을 살펴보고, 청학동이 참다운 전통 교육의 이상향으로 그 모습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본다.   

                                                             PD 한재신 / 작가 신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