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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회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일 2009.08.15 (일)
광복절 특집 그것이 알고싶다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
-후쿠오카 형무소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방송 : 2009년 8월15일(토) 밤 11시 10분

시인의 여동생, 그녀의 마지막 고향 여행 
지난 3일, 무더위가 한창인 북간도 용정 땅에서 올해 86살의 윤혜원 여사를 만났다. 그녀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의 여동생이며, 유일하게 살아있는 형제이다. 1년에 한 번은 고향땅인 중국 용정 땅을 찾는 윤혜원 여사, 그러나 이번 방문은 다른 때와는 다르다. 건강이 좋지 않은 그녀에게 이번 여행은 마지막 고향 방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빠 윤동주 시인의 묘 앞에 설 때마다 그녀는 오빠의 사망 소식을 접하던 64년 전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버지가 오빠 시체를 가지러 갔을 때, 일본인 간수가 말하기를 하루만 늦게 왔어도 시체를 실험용으로 가져갔을 거라고 했대요.’ 하지만 가족들 누구도 오빠의 사망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오빠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궁금하다.


일본, 윤동주를 기억하다. 
일본 교토의 거리에서 서명을 받느라 열심인 주부 곤타니씨, 그녀가 받으려는 서명은 윤동주가 죽기 전 마지막 머물렀던 교토에 윤동주 기념비를 세우자는 것이다. 윤동주 시에 감명 받은 그녀는 욘사마 배용준 보다 윤동주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윤동주의 고향을 찾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도쿄의 가와이씨,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윤동주 시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다. 일본 곳곳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고, 윤동주의 생애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본 교과서에는 윤동주와 관련된 글도 실려 있다. 60여년 전, 27살의 나이로 일본 땅에서 조선인을 일본인들이 기억하고 아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왜 윤동주를 기억하려고 하는 것일까? 


흔적을 찾는 사람들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42년 일본 유학길을 떠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윤동주가 일본에서 보낸 3년간의 행적에 대해선 기록을 찾기 어렵다. 그의 학적부와 성적표, 그리고 판결문만이 그가 보낸 시간을 말해준다. 윤동주가 일본에서 쓴 시도 고작 5편만 발견되었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윤동주의 행적과 자료를 찾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도쿄에 사는 야나기하라씨는 릿교 대학시절 윤동주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내 세상에 알렸다. 동지사 대학의 우지고 교수는 윤동주 체포와 재판에 관련된 자료를 계속 찾고 있다. 윤동주 전집을 일본어로 최초 번역한 이부끼 고씨는 윤동주의 죽음에 관한 글을 자신의 번역 시집에 남겼다. 그들이 찾은 윤동주의 흔적은 무엇일까?


유학생 윤동주는 왜 형무소에 수감되었나
1943년 초여름, 일본 교토 우지강 공원으로 동지사 대학의 영문과 동기들과 소풍을 갔던 윤동주는 건강한 20대 청년이었다. 그곳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던 모리타씨는 윤동주를 친절하고 멋있던 학생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날 우지강 아마가세 구름다리에서 찍은 사진은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소풍 한 달 후인 7월 14일,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 붙잡혀 2년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1945년 2월 16일, 만 27살의 나이로 숨졌다. 운동과 산책을 즐기던 건강한 학생, 그런 젊은이가 수감 된지 1년 만에 절명한 일은 의혹을 남겼다. 그는 도대체 무슨 죄로 경찰에 붙잡혔으며, 실형 판결을 받았을까? 또한, 시인 윤동주가 죽음을 맞이한 후쿠오카 형무소는 어떤 곳이었으며,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시인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를 밝힌다
시인 윤동주는 왜, 어떻게 죽어갔을까? 27살 조선 청년의 죽음에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의 시체를 찾으러 갔던 가족들의 증언은 그의 죽음을 푸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1945년 윤동주의 시신을 수습하러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던 당숙 윤영춘은 당시 윤동주와 함께 잡혔던 송몽규를 면회했다. 그 때 송몽규가 ‘저 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되었고, 동주도 이 모양으로....’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 윤영춘의 증언이다. 송몽규 또한 한 달 뒤 숨졌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형무소에서 맞게 한 주사’는 두 사람의 죽음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름모를 주사... 후쿠오카 형무소를 둘러싼 이상한 사건들
그런데, 취재중 윤동주가 당했다는 생체실험에 대해 구체적인 증언을 들려준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일본인 문학 평론가인 고노 에이지씨다. 그는, 윤동주가 맞았던 ‘이름 모를 주사’는 당시 규슈제대에서 실험하고 있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근거는 있는 것일까? 또,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는 무엇이었을까?
취재진은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 요코하마 전범 재판 기록을 확인했는데 여기에는 일제시대 생체실험에 관한 재판 기록이 남아있다. 그 중에는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제대에서 실시한 미군 대상 생체실험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규슈제대는 바닷물을 이용해 생체실험을 했다는데, 과연 그 실험과 윤동주의 죽음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에서는 일본 땅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어간 비극의 시인 윤동주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해 그 진실을 밝힌다. 

 연출 : 한재신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