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5회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일 2010.10.23 (일)
피를 구합니다 - Rh 음성 혈액형의 외로운 전쟁 방송일시 : 2010년 10월 23일(토) 밤 11시 10분 새벽의 전쟁 - ‘급히 피를 구합니다.’ 지난 4월, 아내가 딸을 낳던 날. 남편 황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아기를 낳던 아내에게 찾아온 자궁 근육 무력증, 아내 신씨에게 계속해 하혈이 일어났고 위태로운 상태에 빠졌다.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 급히 수술에 들어간 산모 신씨, 그러나 수술을 위해선 피가 필요했고, 가족들은 수술이 있던 그 새벽에 정신없이 피를 구하러 다녔다. 많은 사람들의 헌혈과 의료진의 노력으로 산모는 생명을 구했다. 위급한 순간에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 황씨 가족의 이야기는 미담으로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남편 황씨는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사흘을 미친 듯 살았습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말 그대로 피 구하기 전쟁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가족이 직접 피를 구하러 뛰어다녀야 하나요? 다른 분들도 저희 같은 경험을 하나요?’ 가족들은 요즘같이 의료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피는 병원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냐며 피를 구하느라 겪은 사흘 동안의 고생담과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소수라는 이유로.. 당연한가 차별인가? - ‘Rh 네거티브’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 급히 수혈이 필요했던 산모 신씨는 ‘Rh-B' 혈액형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B형이긴 하지만 'Rh-(Rh음성)'이라는 꼬리표가 더 붙어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Rh+(Rh양성)’이라 ‘Rh'혈액형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나 환자에게 피가 부족할 때 우리가 ‘ABO’혈액형을 따져 수혈하듯이 ‘Rh’혈액형도 수혈할 때 따져야하는 중요한 혈액형이다. ‘Rh-'인 사람은 ‘Rh-'혈액형을 수혈 받아야 안전하다. 황씨의 가족이 고생한 이유는 수혈 받을 수 있는 이 ‘Rh-'혈액의 여유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Rh-'혈액형 보유자는 대략 15만명 정도, 전체 인구의 0.3% 정도로 추측된다. 이렇게 소수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피를 구하기 위해 겪는 ‘Rh-'가족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은 그저, 우리가 도와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라 생각하고 끝나야 하는 것일까? 유운 아빠의 눈물 -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아들 유운이가 병원에 입원한 것은 지난 3월. 아들 유운이의 병명은 퇴행성 T세포 림프종, 쉽게 말해 혈액암이었다. 치료를 위해서는 항암치료와 건강한 혈액의 꾸준한 공급이 반드시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유운이의 혈액형도 ‘Rh-B'였다. ‘피를 구하느라 피가 말랐습니다.’ 치료를 하는 동안 ‘Rh-'형 혈액을 구하는 일은 너무나 힘겨웠다고 유운이 아빠 전정우씨는 고백했다. 전씨는 국내에 있는 각종 ‘Rh-’ 동호회에 도움을 청하고, 유럽이나 아메리카대륙에서는 ‘Rh-’혈액형이 인구의 15%~20%나 될 정도로 희귀혈액형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며 외국인에게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유운이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아들에게 일반 혈액암 환자처럼 매일매일 풍족한 양의 혈액을 공급해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지난 4월, 입원한지 한 달 만에 아빠는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다. 단순히 피가 부족해 아들 유운이가 사망한 것은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전씨는 환자를 위한 원활한 혈액 공급 시스템이 되어있지 않은 현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국민의 건강과 의료복지에 대해서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은 당연히 국가인데, 자신이 피를 구하러 뛰어다녔던 그 순간 국가가 곁에 없는 느낌이었다는 전씨, 과연 우리에겐 ‘Rh-'사람들 같은 희귀 혈액 관리 시스템은 없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6단계 응급 절차인가? 우리나라의 혈액 공급을 관리하고 있는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에게도 6단계로 만들어진 'Rh-등 희귀혈액형 긴급 확보 단계별 절차'가 존재한다. 그래서 혈액관리본부는 산모 신씨나 유운이의 경우처럼 가족이 그렇게 직접 피를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단적으로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Rh-’동호회가 그 반증의 예다. 여기 동호회에 모인 ‘Rh-'사람들은 품앗이 하듯이 위급한 경우 서로를 돕는다. 보건복지부나 혈액관리본부의 설명처럼 6단계의 응급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여기에서 응급 수혈을 요청하는 글은 없어야 한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동호회 운영자를 사이에 놓고 헌혈자와 수혈자가 연결되는 이상한 형태의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봉사해주는 사람도 부탁하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급하게 혈액 공급이 필요한 순간은 사람의 생명이 위험한 순간과 일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응급시의 시스템 문제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또한 응급 상황에서 필요한 혈액이 얼마나 빠르게, 어떤 방법으로 공급되느냐를 보면 그 나라의 혈액 공급 시스템의 수준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혈액형 긴급 확보 절차는 지금 현실에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Rh-' 혈액형이 문제가 되나요? ‘피를 구하느라 아들 옆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유운 아빠의 이런 안타까움은 모든 ‘Rh-' 가족들의 경험이다. 한 ‘Rh-' 보유자는 의약품인 혈액을 가족에게 구하라고 하는 것은 마치 수술을 받으려면 수술용 칼을 구해오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Rh-'환자들을 치료했던 의료진들도 마음 졸이며 치료하지 않도록 원활한 공급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너무나 소수인 희귀혈액형의 문제여서 이 문제는 풀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처럼 ‘Rh-'혈액형이 소수인 일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Rh-혈액형이 문제가 되나요?’ 일본은 어떤 혈액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에 ‘Rh-'보유자들은 혈액형 자체에 대해 문제를 느끼지 않고 살고 있을까? 우리와 같은 조건의 일본이 그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에서는 희귀혈액형인 ‘Rh-'혈액형 보유자들과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 고통을 덜어주기엔 아직은 부족한 현재의 혈액 관리 시스템을 살펴보고, ‘생명은 언제나 소중하다’는 명제를 지키기 위해 정부와 우리 사회가 더 살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