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7회 그것이 알고싶다
7월 4일의 비극
방송일 2012.07.21 (일)
본 회차는 제작진의 요청으로 VOD서비스가 불가합니다 7월 4일의 비극 ▣ 방송 일자 : 2012년 7월 21일 (토) 밤 11시 10분 # 7월 4일, 한 여인의 쓸쓸한 죽음. 장마가 시작되던 지난 7월 4일. 사흘 전 폭행을 당해 응급실에 실려 왔던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났다. 故최혜란(가명, 30세). 시신은 안치되었지만 그녀를 위한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그녀의 아버지는 하늘이 우는 거라며 오열했다. 유난히 똑똑하고 예뻤던 딸이었다. 최근까지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던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런데 상주로 자리를 지켜야 할 남편이 장례식장에 보이지 않았다. # 증발해 버린 사건 당일의 기억 - 기억나지 않습니다! 피의자는 남편, 정氏였다. 그는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기에 범행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사진처럼 떠오르는 몇 장면이 그날 기억의 전부라고 했다. 제작진은 그 몇 장면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 날의 일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최혜란 씨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계속 내뱉은 단어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은 ‘없어’ 였다. # 제가 죽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랑합니다. 아내는 중국 동포였다. 11년 전, 정氏는 국제결혼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최氏를 만났다. 긴 머리와 큰 눈에 마음을 뺏겼다고 했다. 아내는 젊고 곱고 또 예뻤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무능력한 자신을 대신해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아내는 늘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정氏. 그날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분노케 한 것일까. 그런데! 같은 마을 주민들의 얘기는 전혀 달랐다. 아내는 남편 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부부의 진실은 무엇일까. # 7월 4일에 벌어진 서로 다르지만 같은 비극 경상남도의 한 주유소, 한 남편이 아내를 차 안에서 폭행하기 시작했다. 화를 못이긴 남편은 급기야 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에게 기름을 뿌렸다. 남편이 라이터를 찾는 와중에 아내는 가까스로 도망쳤다. 이유는 놀랍게도 ‘밥’을 차려 놓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남편의 반대로 결혼 후 3년 동안 한국말도 배우지 못한 이 필리핀 여성이 구사하는 단어는 ‘야, 나가’, ‘바보’, ‘X발’이었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 남편의 폭행을 피해 한 이주 여성이 피신해 왔다. 경찰의 안내에 따라 고소장을 작성한 여자는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이번엔 남편이 지구대에 들었다. 아내가 다녀갔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격분한 남편은 아내를 무참히 살해했다. 7년을 함께 살면서 맞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다는 아내. 그녀는 왜 다시 집으로 돌아간 것일까.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왜 다시 ‘무서운’ 남편에게 돌아가야 했던 것일까. 그 이유 속에 매 맞는 결혼 이주 여성의 처참한 현실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죽고 나서야 가정 폭력이 입증되고 죽은 뒤에야 비로소 그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결혼 이주 여성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저 말고 당신을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기를 바래요.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2007. 6. 25 남편의 폭행으로 사망한 故후안마이氏가 사망 전날 남편에게 남긴 편지 中 2007년 19살 베트남 신부 후안마이의 죽음은 국제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미숙함과 야만성을 세상에 드러냈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외교 관계가 경색될 만큼 큰 파장을 몰고 왔고 우리는 통렬한 자기반성을 했었다. 그 후 5년. 달라진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