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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회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일 2011.05.28 (일)
만균 씨의 지워진 25년

▣ 방송일시 : 2011년 5월 28일(토) 밤 11시00분
▣ 연출 : 정준기 / 작가 : 장윤정





# 25년 만의 귀향, 그러나

 1986년 20살 나이로 실종된 이만균 씨. 25년 동안 소식 하나 없어 만균 씨 찾는 걸 포기했던 가족들 앞에 지난 2월 만균 씨가 나타났다. 그러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만균 씨를 만난 가족들은 반가움보다 슬픔과 분노가 앞섰다. 젊은 시절 중국집 주방장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던 만균 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누군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남루하고 병든 모습으로 나타난 것. 그리고 얼굴과 팔다리엔 구타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들로 가득했고 정상적인 사고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만균 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지난 세월에 대해 입을 굳게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만균 씨가 이렇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나게 된 것일까?

# 바다 위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우리는 만균 씨의 잊혀진 25년을 찾아 나섰다. 가족을 만나기 전 만균 씨의 마지막 주민등록상 주소는 전남 영광군 낙월면, 이 곳은 새우잡이 배를 운용하는 선주의 주소지였다. 그렇다면 25년 중 적어도 마지막 몇 년 동안은 만균 씨가 선주와 함께 배 위, 또는 섬 안에서 생활해 온 것은 아닐까? 만균 씨는 왜 선주의 주소로 주민등록을 옮겨 함께 생활해온 것일까? 선주 측에 확인한 결과 오갈 데 없는 만균 씨를 데리고 와 함께 생활하며 보살폈으며, 선원으로 취직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취재 중 계속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되었다. 만균 씨와 마지막으로 한 배에 탔던 동료 선원은 만균 씨에게 상상도 할 수 없을 일들이 일어났다고 말한 채 어디론가 잠적했고, 만균 씨 앞으로 개설된 예금과 보험, 신용카드는 만균 씨도 모른 채 선주측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균 씨 몸에 난 갖가지 상처들은 최근에 구타로 생긴 것 이고, 일부는 영원히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배 위에서 만균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상 혹은 섬 안에서 고립된 채 학대 및 착취, 폭행 등에 시달려왔던 것은 아닐까?

# 선원들의 참혹한 삶을 만나다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해양경찰과 합동으로 만균 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것으로 보이 는 선원들을 만나며 그들의 모습을 통해 만균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선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만균씨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선원들은 자신의 처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꺼려했다. 그러나 취재 중 선원들의 비참한 실상을 알려주겠다는 한 용감한 선원을 만날 수 있었다. 목포해양경찰서에서 만난 이00씨(32)는 악덕 직업소개소 업자의 사기 때문에 선불금과 소개비를 모두 날리고 빚만 잔뜩 진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선원생활을 하는 동안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선불금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 다녀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배 위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폭행과 살상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딱히 갈 곳도 없어 언젠가 다시 지옥같은 배로 돌아가야 할 지 모른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노예.’ 그는 자신과 동료 선원들의 처지를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처럼 만균 씨도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난 세월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조금씩 드러나는 만균씨의 과거

좀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만균 씨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취재 몇 주가 지나서였다. 예  전에 그가 머물렀던 영광의 한 마을에 다시 가보고 나서야 그는 조금씩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배에서 폭행을 당했고,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말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실제로 동료 선원들이 만균 씨를 상습적으로 구타, 감금했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나오기 시작했다. 선주 측 사람들은 만균 씨에게 임금을 전혀 지불하지 않았으며, 만균 씨의 명의를 도용해 금융거래를 해왔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아프거나 다쳐도 병원 한 번 간 적도 없었다. 만균 씨는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버려진 채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마치 굴레에 갇힌 듯 배 위의 비참한 삶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한 채 25년을 위태롭게 버텨왔다. 뒤늦게 만균 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그의 어두웠던 과거의 전모가 밝혀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거에 씌워진 상처를 극복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 없어지지 않는 배 위의 인권유린, 막을 방법은 없는가

한때 세상에 떠돌던, 새우잡이 배에 팔려간 청년들의 비참한 이야기는 한동안 먼 과거의 일  로만 여겨지며 잊혀졌다. 그러나 2011년 바로 지금, 이 땅에선 아직도 선원들에 대한 착취, 인권유린,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수면 아래 철저히 감춰진    채 더 잊혀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를 입은 선원들은 한 번 구출되더라도 결국은 고립   되어 다시 원치 않은 억압의 현장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언제까지 지금도 섬이나 배 어딘가에 갇혀 있을 또 다른 만균 씨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는 만균 씨의 기억 찾기를 통해 사각지대에 버려진 선원들의 어두운 현실을 재조명하고, 이를 해결할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