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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영, 끝없는 기다림과 준비가 만든 '성공시대'

SBS Sports
기사 입력2012.02.04 10:07
기사 수정2012.02.04 10:07
이미지"제가 무슨 성공을 했나요?".

한화 우완 투수 송신영(35)은 요즘 하루하루가 설렌다. 지난겨울 3년간 13억원+∝에 한화와 계약, 새로운 팀에서 큰 기대를 받으며 새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데뷔해 올해로 14년차가 되는 송신영의 FA 계약은 곧 성공을 의미한다. 그것도 끝없는 기다림과 준비로 만든 성공이다. 송신영은 "내가 무슨 성공을 했는가"라고 반문했지만 그의 성공 스토리는 남달랐다.

▲ 계약금 없는 신인 투수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86년 송신영은 야구공을 잡았다. "원래 운동하는 걸 좋아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 후로 중앙고 시절까지 승승장구하며 고려대에 스카우트됐다. 그러나 대학 시절부터 시련이 찾아왔다. 고교 시절 혹사 여파로 1학년과 3학년 때 아예 공을 못 던졌다. 팔꿈치가 아픈 투수의 가치는 불보듯 뻔했다. 1999년 신인 2차 지명에서 11라운드 전체 88순위. 그 뒤로 지명된 선수는 고작 8명으로 거의 끝순번에 뽑혔다.

송신영은 "우리 95학번은 저주받은 세대였다. IMF 시대에 고졸우선지명까지 생겼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현대에 어렵게 지명됐지만 또 한 번의 고비가 있었다. 계약금이었다. 현대 구단은 송신영에게 계약금을 주지 않았다. "할거면 하고 말거면 마라"는 게 구단의 입장이었다. 1000만원이라도 받고 싶었던 송신영의 자존심은 무너졌고 야구를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집에서 "한 번만 해보라"는 권유로 결국 계약금 없이 현대에 입단했다.

계약금 없는 후순위 신인 투수에 대한 기대치는 낮았다. 하지만 송신영은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를 노렸다. 그는 "2년간 2군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프로에 오니까 거짓말처럼 몸이 아프지 않더라. 대학 때 많이 쉰 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송신영은 2년 연속 2군 개막전 선발로 나오며 그 사이 그에게는 '오락 투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자유자재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다.


▲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

2000년 현대는 정민태-임선동-김수경이 나란히 18승을 거두며 공동 다승왕에 오른 투수왕국이었다. 역대 최다 시즌 90승을 거둔 최강팀. 2군 에이스 송신영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송신영이 1군의 호출을 받았다. 투수는 투수였는데 정식 투수가 아닌 배팅볼 투수. 제구가 좋다는 게 이유였다. 송신영은 "기분 나쁠게 아니었다. 내게는 하나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보통 배팅볼은 마운드에서 내려와 던진다. 하지만 송신영은 "마운드에서 직접 던지겠다"고 자청했다.

그리고 당대 최강 타선으로 불린 현대 타자들을 상대로 배팅볼을 던졌다. 송신영은 "진짜 경기처럼 진지하게 던졌다. 그런데 전준호·이숭용 선배가 헛스윙을 하더라. 커브라고 말하고 던졌는데도 헛스윙했다"고 회상했다. 그 모습을 김재박 감독이 놓칠리 없었다. 김 감독의 눈에 띈 송신영은 2000시즌 종료 뒤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의 마무리훈련에 초청선수로 갔다. 1군에서의 배팅볼이 김 감독의 뇌리에 강한 인상으로 남은 것이다.

미야코지마 마무리캠프에서도 송신영은 인상적인 피칭을 펼쳤다. 오릭스 관계자들은 송신영을 1군 투수로 생각했지만, 당시 송신영과 동행한 류영수 코치는 "우리팀 1군 투수가 아니다. 우리팀 2군 투수 수준이 이 정도"라며 어깨를 으쓱해했다. "코치님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는 송신영의 말 그대로였다. 2001년 송신영은 데뷔 후 첫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며 팀의 기대를 받기 시작했다.

▲ 좌절과 기다림 그리고 준비

2001년 시범경기 중반 송신영은 다시 2군으로 미끄러졌다. 그에게는 좌절이었다. "내 야구 인생이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다"는게 송신영의 회고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2군 개막전 선발로 나와 7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그날 우연히 라디오 방송이 '프로야구 2군'을 주제로 그를 찾았다. 송신영은 "1군에서 기회가 오면 한큐 잡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송신영은 그날 그 멘트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기회는 머지 않아 찾아왔다. 개막 얼마 후 1군이 송신영을 불렀다.

2001년 현대는 투수왕국이 해체되고 있었다. 정명원이 은퇴했고, 정민태가 일본으로 떠났다. 조웅천은 SK로 이적했다. 송신영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찾아 왔다. 역할은 선발이 조기에 무너질 경우 긴급 투입되는 롱릴리프. 그러나 데뷔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좀처럼 등판 기회가 오지 않았다. 송신영은 "1군에 올라온 뒤 12일간 등판은커녕 몸도 못 풀었다. 완전히 2군 선수 취급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길고 긴 12일이 흘렀다. 그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하늘은 송신영을 외면하지 않았다. 4월19일 수원 한화전. 그의 동기 박장희가 선발로 나와 4회 흔들렸다. 그때 김시진 투수코치가 송신영에게 다가 왔다. "스파이크 끈 묶고 준비해". 송신영은 "스파이크 끈을 묶으며 이게 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여 주자는 마음이었다"고 가슴 벅찬 순간을 떠올렸다. 마운드에 오른 송신영은 첫 타자로 왼손 김종석을 몸쪽 꽉 차는 스탠딩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이날 경기가 끝날 때까지 현대 마운드를 지켰다.

5⅓이닝 2안타 무사사구 7탈삼진 1실점. 송신영은 "당대 최고포수 박경완의 사인·미트만 보고 던졌다"고 기억했다. 그해 송신영은 선발·중간·마무리로 나와 47경기 4승2패3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 4.21을 기록했다. 무려 115⅓이닝을 소화한 마당쇠로 1군에 자리잡았다. 시즌 중반 중고 신인왕 후보로도 떠올랐지만, 중간 보직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빛 보기 어려운 보직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던진 투수. 송신영의 야구 인생은 1군 데뷔 첫 해 2001년처럼 11년간 쭉 흘러갔다.

▲ 11년 불펜투수 롱런 비결은

2000년까지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던 투수 송신영은 2001년 이후 가장 자주보는 투수가 됐다. 2001년 1군 데뷔 후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25경기·68이닝 이상을 던졌다. 발목 부상을 당한 2003년을 빼면 매해 40경기 이상 등판하며 70이닝 이상 소화했다. 특히 최근 5년 연속 50경기 이상 나오는 꾸준함을 보였다. 송신영처럼 불펜투수로 오랫동안 롱런한 투수로는 조웅천 정도. 송신영은 그때 그때 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불펜에서 기다리고 준비하며 몸을 만들었다. 팀이 필요로 하면 선발로도 나왔다. 그렇게 11년을 뛰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롱런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부드러운 몸을 타고났다. 그리고 영양제를 많이 먹으며 몸을 보충한다"고 귀띔했다. 가장 중요한 건 투구폼이다. 송신영의 투구폼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부드럽다. 그는 "옛날 야구는 최대한 타점을 높이려 했다. 하지만 야구를 오래할 수 있는 건 결국 무리 가지 않는 폼이다. 지도자 분들을 잘 만난 덕분"이라고 말했다. 고교 시절 혹사에 대한 원망은 없을까. "그때 그렇게 많이 던졌기 때문에 지금의 컨트롤이 완성된 것이다. 제구는 많이 던져야 된다. 원망은 전혀 없다"는 게 송신영 말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약속을 지키는 책임감이다. 송신영은 올해 한화 구단 시무식 이튿날 팀 훈련에 지각했다. 그는 "내 성격상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현대·넥센 시절에는 13년간 한 번도 지각·벌금이 없었다. 그런데 시무식 다음날 나도 모르게 늦잠을 자버렸다.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평소 아침 일찍 약속이 있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자는 성격이다. 밤새서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송신영은 한화 구단과 FA 계약도 약속이라 생각한다. 특히 한대화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크다. 그는 "재작년부터 감독님이 날 많이 바라셨다고 들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대화 감독은 "송신영의 가세로 팀 전력도 강해졌지만 어린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극과 본 보기가 되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송신영은 한 감독의 메시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실행으로 옮기고 있다.


그는 '17년 후배' 유창식과 룸메이트하고 있다. 송신영은 유창식에게 "나는 이 나이에 LG에서 찬규에게도 배웠다. 내가 찬규 나이 때 그렇게 배우려고 적극적으로 했으면 어떨까 싶어 후회도 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창식은 송신영에게 "커브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부탁했고, 송신영은 야간훈련 조명이 꺼질 때까지 유창식에게 커브를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그에게 반복 훈련은 익숙함이다. 끝없는 기다림과 준비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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