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코칭스태프는 이종범을 1군 전력으로 판단하지 않았고, 그에게 플레잉 코치직을 제안했다. 사실상의 은퇴 권유와 다름없었다.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은퇴 문제는 잊을 만하면 나오는 뜨거운 감자이자 딜레마와 같다.
▲ 이종범, 정말 1군 전력이 아니었나
20번째 시즌을 앞둔 이종범은 그 어느 때보다 의욕에 넘쳐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 만큼 배트를 짧게 쥐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나타나듯 스프링캠프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구슬땀을 흘렸다. 성적이 말해준다. 스프링캠프 기간 치러진 연습경기에서 8경기에 나와 19타수 8안타 타율 4할2푼1리를 쳤다. 그 중에는 2루타도 3개나 포함돼 있었다.
시범경기에서도 페이스를 이어갔다. 시범경기 두 번째 경기 3월18일 문학 SK전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경기 후 이종범은 "뛰는 야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부상만 없다면 한 시즌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종범은 시범경기 7경기에서 12타수 4안타 타율 3할3푼3리를 쳤다.
그러나 3월21일 목동 넥센전을 끝으로 선발에서 빠진 이종범은 3경기 연속 결장했다. 이후 3경기를 대타로 나왔다. 3월29일 대구 삼성전에서 8회 대타로 나와 박정태에게 당한 삼진이 그의 마지막 타석이 됐다. 이튿날 이종범은 이순철 수석코치와 면담에서 "1군에서 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선동렬 감독에게 같은 답을 들은 후 은퇴를 결정했다.
▲ 선동렬 감독은 왜
선동렬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많은 기회를 받으며 경쟁해야 팀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이종범이 경쟁한 외야 백업 유망주로는 윤완주와 황정립이 있었다. 두 선수는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각각 타율 5할3푼8리, 4할2푼9리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윤완주가 3타수 무안타, 황정립은 8타수 1안타에 그쳤다. 이용규-나지완-김상현-김원섭을 제외한 제5의 외야수로 이종범을 밀어낼 만한 성적이라 보기에는 힘들다.
선동렬 감독은 삼성 사령탑 시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베테랑 선수들을 상대했다. 김한수·양준혁·박한이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김한수·양준혁은 결국 은퇴의 길을 밟았고, 박한이는 실력으로 자리를 되찾았다. 건전한 경쟁은 팀을 더 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과연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았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은퇴 권유가 납득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종범은 "수석코치·감독님을 만나서 개막 엔트리에 못 들어갈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아, 이제 나를 쓰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2군에서도 뛸 수 있지만 기회를 받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에 '플레잉코치' 제의는 이종범으로 하여금 은퇴 종용과 다름 없었다. 이종범의 후배 김종국과 홍세완도 플레잉코치로 선임됐지만 그 길로 선수 유니폼을 벗었던 전례가 있었다.
▲ 무엇이 정답인가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대우 문제는 잊을 만하면 나오는 뜨거운 감자이자 딜레마였다.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대목이다. 한 현직 감독은 "나이가 많아도 실력이 되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다만 다른 선수들을 확실하게 압도할 수 있는 실력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1~2군을 오르내리는 수준이면 애매하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종범처럼 백업 멤버 수준이라면 베테랑 선수를 중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또 다른 감독은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커나가면서 물러나는 게 답"이라고 했다. 후배들이 실력으로 확실하게 밀어낼 만한 실력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노장이라도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과거 김응룡 감독이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은퇴 또는 이적시키는 과정을 보면 그들을 대체할만한 유망주들을 제대로 키워내며 팬들의 반발도 부르지 않고 팀 전력도 유지했다. 한대화의 자리를 홍현우가 메운 게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의 이만수와 김재박 그리고 박정태와 유지현처럼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은퇴 문제는 언제나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 어려웠다.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대우는 그래서 늘 어려운 문제다. 선수 스스로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결심과 그것을 존중해줄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등 떠밀려 은퇴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초라한 말년은 그들을 보고 자란 팬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는다. 프로 스포츠의 최대 가치는 '승리'이지만, 팬들은 승리를 향한 과정에서 보여주는 스타들의 뒷모습에 울고 웃는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이종범 은퇴 문제는 훗날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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