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에서 1, 2번 타자를 테이블세터라고 부른다. 공격의 시작점에서 클린업트리오 앞에 타점 밥상을 준비하기 때문. 그러나 그것은 1회 뿐. 경기 진행에 따라 타순에 맞게 공수 교대가 이뤄지는 것이 아닌 만큼 9명의 타자가 모두 이닝 선두 타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테이블세터는 '경기 어느 순간이라도 공격 물꼬를 트는 사람'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의미라면 국가 대표 주전 유격수까지 우뚝 선 김재호(30, 두산 베어스)는 대표팀의 '숨은 테이블세터'다.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김재호는 프로 데뷔 후 태극 마크를 달고 뛰는 것이 처음이지만 대표팀 주전 유격수로 공수에서 활발한 경기 내용을 보였다. 김재호의 B조 예선 5경기 성적은 10타수 5안타(0.500) 1타점 4득점 1볼넷으로 뛰어나다.
김재호가 살아나가면 한국의 적시타가 연이어 터졌다. 누상에 6번 나가 4번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득점 성공률이 무려 66.7%다. 이용규-정근우(이상 한화) 대표팀 부동의 테이블세터진도 있으나 실제로 경기장에서 한국 타선의 물꼬를 튼 이는 김재호다. 9번 타자로서 상위 타선 타자들에게 좋은 타점 기회를 제공한 숨은 테이블세터다.
김재호는 올해 팀 주전 유격수로서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이바지하고 풀타임 3할 타율(0.307), 올스타전 출장, 태극 마크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다 이뤘다. 다음 달 12일에는 오랫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한 여자 친구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내는 김재호는 '김ㅋㅋ'라는 별명에 맞는 웃음을 되찾았다.
“경기를 하면서 제가 안타를 치고 나가면 그 다음 타자들이 또 좋은 타격을 하더라고요. 내심 뿌듯했어요. 제가 살아나가고 나서 대표팀 득점으로도 자주 연결되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태극 마크만 달고 만족할 수는 없잖아요. 끝까지 가서 마지막에 이겨야지요.”
2004년 공수주를 모두 갖춘 유격수로 두산 1차 지명으로 입단한 김재호는 미소와 달리 우여곡절이 많았다. 바라던 유격수 출장이 아닌 2루, 3루 교체 요원으로 출전하며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한때는 트레이드 협상 테이블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기회가 간절해 손목 실금 부상을 숨기고 뛰다 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해 고개를 떨구기도 했던 유망주다. 10여 년을 기다려 자신의 실력에 걸맞는 위치로 오른 김재호는 분명 태극 마크와 어울리는 선수다.
[사진] 김재호 ⓒ 티엔무, 한희재 기자.
박현철 기자 ph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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